평론

생명과 소망으로의 나무

-이현숙의 두 번째 개인전에 부쳐-

언제나 어떤 완전한 삶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삶으로부터 자신을 일깨워 줄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무엇이 우리에게서 저 내면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를 "나의 노래"로 부를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얻어지는 나의 노래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공허한 허상에 불과한 것이 되리라.

굳게 닫힌 저 거리의 무수히 많은 건물, 그것보다 몇 갑절 더 많은 닫힌 마음의 사람들, 이들이 감동받는 신비로움. 이 신비로움은 자신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어 오는 이들에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된다. 즉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자기 자신의 인식이라고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을 넘어선 미지의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사람들이 이 지구라는 행성에 자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최초의 미술품도 그들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대개 어떤 신성시되는 상징을 만드는 일이 우선되고 그 상징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통해 자신을 엄습하는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이 항상 뒤따르곤 했다. 이렇게 "신탁"을 받은 자연물은 대개 나무, 돌, 물, 동물 등과 함께 자연신의 대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나무(神木)는 "세계의 중심" "세계의 축" 천상, 지상, 지하계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중심으로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는 보고가 세계 도처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신성"과 "풍요","생산"을 의미하며 때로는 복숭아 나무처럼 귀신을 쫓기도 하면서 "생명의 기원" 으로서의 상징은 세계 공통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서양에서도 나무는 크리스트교 신화에 나오는 '위대한 어머니'(太母 The Great Mother)가 지닌 혹독한 지배욕, 파괴력과 아울러 그가 내포하고 있는 무궁한 재생과 신생(新生)의 충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무이며 이는 나무가 가지고 있는 '재생의 힘의 상징' 인 점에서 동서양이 공통되는 것이다.

갈등과 죽음과 희생의 나무는 이를 통한 창조적 변환의 힘으로 이어지는데 도작가(陶作家) 이현숙의 작업 전개과정도 이렇듯 나무의 상징 작용과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초기의 작업은 마치 '재개발 건축' 현장이나 '폐허화된 도시' 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외견상 '견고하고 광채를 발하는 도시'라는 첨단의 사회 환경이 얼마나 많은 순수와 열정을 좌절시키고 이룩된 것인가를 직설적인 어법으로 고발하면서 포장되고 굴절된 현대인의 삶의 저변을 환기시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그러니 이번 그의 변신은 외견상 매우 놀라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이러한 사회적, 인간적, 생태학적 관심이 언젠가는 "치유의 대안"을 내놓으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기대에 답하듯 장시간의 침묵 끝에 "생명 현상"과 "기원"의 대상인 신수(神樹)가 해와 달과 별과 어우러지면서 "자연"속에 밀착되어 하나의 풍경을 연출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서고 있다. 구 도자의 삶을 연상시키는 한 그루의 뿌리깊은 나무는 대지에 굳게 뿌리박고 하늘을 지지하며 서있다. 우리의 선조들의 삶을 지켜내려 온 당산 나무처럼.

또 그곳에는 작가의 신념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생명 현상들의 대표적인 상징들이 유동적이며 리드미컬한 산야 위에 우뚝 서 있음으로하여 이들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다. 따라서 우리 민간신앙의 새로운 현대적 시각에서의 접근법으로까지 읽을 수 있는 이러한 이현숙의 변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외형적 변모도 변모이려니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삶' 을 도자라는 예술의 원형에 대입하여 보여주는 삶에 대한 그의 경의는 삶과 그 삶의 주변부를 이루는 모든 자연현상과의 일체를 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융(Jung, C.G.)에 의하면 나무는 모성 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근적 상징을 예시하고, 그것이 지닌 양성적(兩性的)성격을 강조하면서 나무를 리비도(Libido)의 상징으로 보았다. 나무는 심리학적으로 성적인 충동이라기 보다는 인간 심성의 '정신적 에너지', 생명력, 지향성을 상징한다. 또 창세기의 선악과를 지닌 나무도 지식의 나무와 또 하나의 영원한 삶의 나무라는 2개의 나무 이미지로 양면성을 띠고 있다. 즉 인간이 태어난 곳인 동시에 조상의 넋이 사는 곳, 다시 말해 가족의 역사가 있는 나무(Stamm Baum)이다. 상승과 하강의 나무, 천상과 지하계를 포괄하며, 전진과 퇴행, 외향과 내향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무는 곧 자기 자신 또는 본연의 자기 상징을 이룬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여 출생, 갈등, 고통, 시련, 그리고 이의 극복과 성장, 새로운 재생을 향한 전환, 이러한 것은 곧 자기 실현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할 때 이번 전시에서 접하게 되는 이현숙의 분신들은 극적인 삶의 치열함이 허허로운 풍경으로 변화하면서 우리의 삶과 생명 현상에 대한 경의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글 / 정 준 모 (인디펜던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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