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된 감정과 선

캔버스 같은 분위기, 정확하게 구획된 조형성, 은근한 색 등으로 채워진 이명아의 작업은 흐트러짐 없는 정갈함과 말쑥함 때문인지 어떤 개념을 규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렇다고 수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식의 개념은 아니다. 차가운 이성보다 감성이, 딱딱한 규율보다 자유가 그의 작업에서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아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흙이라는 물성의 인식에 있다. 이것은 현대도예에 참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다.

현대도예란 곧 조형작업으로 말고 있는 요즘에 이명아의 도예 역시 그렇게 낯설은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묻곤한다. 도예와 조각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흙으로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도예라고 부르는 것일까. 조각가들은 흙을 사용하지 말란 법이 어디에 정해져 있는 것일까. 그런데 조각가들은 흙을 종종 사용하고도 도예품이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 이명아의 적업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 바란다. 그러면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이명아의 작업을 대하면 그의 흙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흙이라는 재료, 곧 물성에 대한 그의 관심을 알아채기 위하여 너무 빨리 그의 작업 앞을 지나가지 말라는 부탁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흙이 바로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그러한 흙을 통하여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무궁무진한 자연, 무한대의 자연이 그곳에 있다. 즉 흙이라는 물성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 이명아는 그것이 현대도예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도예일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정확하게 그어진 직선과 면 나누기는 긴장, 순환, 탄생등의 갖가지 감성을 만들어내는 모태이다. 언뜻 보기에 밋밋한 평면에 불과하지만, 실상 이명아의 작업은 평면이 아닌 입체임이 분명하다. 그저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실선 하나도 실상 오목하게 전개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환경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은근한 색, 그것은 이명아가 선택한 색이다. 그는 현란한 색을 쓰지 않는다. 왜일까.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시대별로 나름의 유행이 있고, 나름의 가치가 있으니 새대성을 무시할 수만은 없으니 그렇다.

직선, 이명아의 작업에서 직선을 뺀다면 무엇이 다름 차례로 등장될까. 어떤 것도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만큼 그의 작업을 선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선으로 말하기,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하겠다는 것일까? 선으로 만들어진 도시풍경, 아니면 컴퓨터 문화, 그것도 아니면 썰렁한 도시인의 마음? 그것은 감상자가 정할 일이다. 작가가 모범답안을 만들어 놓을 일이 아니다. 공감되는 것이 있다면 반가운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서로 각자의 방향으로 느끼면 된다. 문제는 똑같은 감성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있으니까.

                                                           김숙경/미술평론가

무제, 65×140cm, 1995

무제, 62×93cm, 1995

야경, 45×45cm, 1995

야경, 45×45cm, 1995

창, 44.5×45×8.5cm, 1995

지붕, 26.5×53.5cm, 1995,   커피, 26.5×53.5cm, 1995

무제, 65×140cm,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