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필요한 도자예술의 모색
-기하학 형태의 조형작업에서 생활도예로의 변신-
흙과 유약, 그리고 불의 예술인 도자(陶磁)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갖춘다. 오늘날에는 도자의 기본형태나 색채뿐만 아니라 도예의 기본개념까지 변하고 있다. 도예가의 사고(思考), 역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많은 도예가들은 "흙의 중요성"과 "원초적 순수한 표현"으로 확장된 현대도예를 생각한다.
이제 이들은 공예와 비공예의 영역이나 역할 논쟁에서 벗어나 시대성과 예술적 가치가 담겨있느냐 하는 예술론에 집착하게 된다. 즉, 자신의 작품이 공예이기 보다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공예가들은 기능성이나 실용성을 생각하여 제작한다고 해도 순수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작가의 독자적 사고(思考)가 담긴, 즉 자신의 철학과 미의식이 담긴 공예를 생각한다.
대학원에서 산업도자를 전공한 권은숙의 과제는 바로 자신의 독단적 사고가 담긴 도자예술을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현대의 발달된 산업화 시대에 기(器)의 다양한 디자인이나 개성적 도자예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용성과 심미성을 갖춘 기(器)"를 제작하고 싶은 것이 자신의 소박한 욕심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은 결심에서도 도예의 심미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컵이나 접시, 병을 비롯하여 탁자와 의자, 장식용 벽걸이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용적 오브제들을 만들면서 작가 자신의 개성이 담긴 예술을 꿈꾸는 것이다.
초기 권은숙의 작업은 기(器)의 형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점차 원통이나 원주, 사각 입방체 등 기하학적 형태의 조형적 실험에 몰두한다. 당시 그의 작품은 기능성보다는 사각의 입방체나 원구를 변형시켜 단색조의 표면과 함께 조형적 미의 모색이었다. 원주나 구, 직육면체등 좌우 대칭의 균형탐구나 비대칭의 표현적 조형작품을 제작하면서 순수 조형의 많은 변화를 실험하였다. 거의 초기 도예작품은 기하학 형태의 조형적 아름다움과 양감이나 모노크롬의 포면에서 주는 시각적, 촉각적 조형작품이다.
이 같은 도예의 조형작업 이후 '90년대 중반 작가는 커다란 변신을 꾀한다. 즉, 조형작업을 산업도예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는 종래의 단순하고 규격화된 용기에서 벗어나 비정형(非定形)의 기(器)를 제작하기도 하면서 산업도예와의 상관관계를 찾는다. 미를 위한 미의 모색에서 생활을 위한 미의 탐구로 전환한다. 획일적인 '기능'이나 관념적인 '조형'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조화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구체적인 예가 된다. 이것은 대부분 생활을 위한 도예작품들이다. 초기 추상적 형상과 달리 근작들은 대부분 자연현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기능성을 강조한다. 달팽이나 거북이 형상의 벽걸이 장식을 비롯하여 소라와 나무, 그리고 단순한 추상형태의 의자와 탁자 등이 만들어진다. 미니멀한 추상형태와 자연적 형태가 강조된 기형(器形)에는 때로 강한 원색의 밝은 색상이나 추상 이미지들로 액션 페인팅 기법에 의한 추상화가 그려지면서 접시나 받침대, 의자, 탁자 등에서 작가의 풍부한 감성적 표현이 나타난다.
강렬한 원색과 자연적 형태의 실용 도예작품에 있어서 매끄럽지 못한 마무리와 전체적인 완성도에 문제가 있으나 언제까지나 순수 조형작업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여야 한다. 과감한 자기 변신과 끈질긴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쓰임새가 있는 현대도예의 실험적 작업에 비판보다 자극을 주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해야 한다.
불과 흙의 예술인 도예에 있어서 우리 시대에는 무엇보다 새로운 조형성과 실용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도예가들은 마음과 머리, 그리고 손의 기능을 균형있게 잡아나가야 한다. 이제 자신의 주변에서 소재를 찾고 도예의 생활화를 꿈꾸는 작가들의 노력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조형 실험을 바탕으로 산업도자와 생활에 필요한 도예작품에 몰두하는 권은숙의 노력과 자기변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이고 가장 난해한 도자예술의 특성을 살리면서 생활에 필요한 도자예술의 모색은 그의 과제이면서 우리 모두의 숙제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유 재 길(홍익대교수, 미술평론가)
Human and Nature, 35×37×73cm
Human and Nature, 64×44×94cm
Human and Nature, 64×44×92cm
Nature, 66×18×37cm
Human and Nature
Human and Nature, 43cm
Human and Nature, 43c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