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숙 작품전"에 부치는 글

 컴퓨터 메카니즘과 광역 고속 정보망으로 특징 지워지는 이른바 후기산업사회라는 시대적 조선 안에서 '흙을 만진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컴퓨터야말로 공예사적으로 보아 최근의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공예의 역사는 문명사 곧, 도구의 역사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흙을 가지고 단지 놀이하여온 것과 물 따위를 담는 器를 만들어 온 것과는 같은 조형행위라할지라고 그 영역이 다르다. 도자공예의 예술성은 말하자면 器의 조형요소에 개입되는 비례라든가 질감, 크기, 색채 등의 美的고려에 의해 성립된 것이며, 이러한 양면성 - 도구성과 예술성 - 은 타 공예와 더불어 근대의 산업디자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도예는 전통도예 안에서 자연스레 조화되어 있었던 양면성이 산업혁명 이후 분리되어 순수조형에로 점차 접근해간 추세 위에서 그 위상과 성격이 부여되는데, 여기서 과거의 오랜 도예사적 조건과는 달리하는 현대도예의 특수성이 운위되며 이 시대에 흙을 만진다는 행위의 의미가 다시 물어지는 것이다.

 도예가 한진숙의 두 번째 개인전에 출품된 도예품들은 그 자신의 개인적 변천과정의 맥락과 연관 안에서 살펴볼 때, 현대도예가 지니는 특수성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우선 흥미롭다. 한진숙의 초기 작품들은 원통형을 모티브로 하는 순수조형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이른바 미술공예적 대학교육의 영향관계 안에서의 일반적 양상으로 생각될 수 있겠다.

 첫 번째의 커다란 전환은 첫 개인전 그 이듬해에 찾아오는데, 작가 자신의 발언에 의하면 그것은 생활세계의 근본적 상황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새로운 성찰의 결과 마치 조각예술가와도 같이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한진숙의 의미추구는 일련의 '허수아비'연작을 통하여 사람들의 외면적 표정과 몸짓 그리고 행동들이 이면의 본모습 곧 진실과는 다르다는 작가 자신의 예민한 통찰과 집요한 추적으로 수행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공예작가가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그가 공예가인가 예술가인가 하는 정체성(Identity)의 문제가 야기되고, 옯다 그르다를 떠나 동시대 현실 안에 실체로서 자리잡고 있다 하더라도 엄밀히 보아 결코 온당한 현상은 아니다. 조형실험 그 자체 만이라면 공예일반 역시 공유하는 조형성에 의거하여 수용될 수 있겠지만, 의미체로서의 조각예술의 언어성에까지 치고 들어갈 권리를 공예가 갖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새로운 전환에의 강렬한 내면적 요구에 직면한 작가는 도예사적 전통과 본질을 다시 성찰한 듯하고 이번 전시는 그 결과물들이다.

 전시 작품들에 일부 명제가 부여되고 있고 오브제적 성격이 다소 남아 있지만, 그런 요소들에 앞서 일차적으로 '쓰임새'를 작업의 바탕에 깔로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바다일기'라는 陶壁작품의 경우, 그것은 명제에서의 암시에 의한 회화예술적 기능(언어적 기능)보다도 장식적 기능을 우선적으로 갖는다. 그리고 파도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다양한   들도 器로서의 기능성에 염두를 둔 것들이다.

 고도화된 산업시대에 원시적 방식의 도구적 器를 단순히 계승하는 것이 도예 본질에 충실하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디자인 영역에 주임무를 빼앗겼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흙'과 '손'과의 유구한 친화력까지를 내어준 것은 아니지 않는가, 현대도예의 자리지킴에는 오히려 엄숙한 어떤 소명이 주어져 있다.

 전시 작품 전체를 통하는 조형적 통일성의 부분적 결여 - 예컨대 아침바다의 태양의 형상이 주는 이질감과 몇몇 소품의 기계적 딱딱함, 色 地에 의한 바탕색들과 절단면의 파스텔조와 대비는 완성도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을 획득하지 못한 듯 보여진다-가 눈에 띄지만, 순수 조형에만 매달리어 도예적 본질을 거의 이탈한 듯 보여지는 그간의 풍토 안에서 도예작업의 올바른 의미와 자리를 되새기고 모색하는 작가적 성실성과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더욱 완성되고 정련된 다음 전시를 미리 기대해 본다.

백영재(미학, 효성가톨릭대 강사)

Diaries of the sea

Distant Seascape 1

Distant Seascape 2

Diaries of the sea

Between the waves 1

The vessel that felt the wave

The vessel that felt the surface of the sea 1

The vessel that felt the surface of the sea 2

The vessel that felt the surface of the sea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