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비밀과 창조의 고통

-김태원의 도예전에 부쳐-

 도예가 김태원의 작품을 대하게 되면 나는 갑자기 일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미적 향유의 아늑함이나 유희적 즐거움이 아니다.

 흙이란 재료가 줄 수 있는 친근감이나 부드러움은 더더욱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무디어진 일상화된 상상력과 사고를 뒤흔드는 형상들의 강렬한 상징성과 도전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항아리나 사람의 머리, 투박한 몸체 그리고 단단한 삼각추 등에 달린 두 개의 뿔 모양, 엄숙한 느낌을 주는 눈감은 동양인의 얼굴들, 단아한 모습의 둥근 그릇에 담긴 주름지고 일그러진 얼굴들 그리고 둥근 원형 등은 작가 김태원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상징들이다.

 그 중에서도 뿔과 침묵하는 얼굴의 이미지와 상징성이 가장 강렬하다.

 이러한 상징들 혹은 그것들이 조합되거나 변형되어 나타나는 형상들은 나에게는 엄숙하고 극히 절제된 형상미를 전해준다. 그는 인간과 사물의 본질이 드러날 수 있는 어떤 원형을 표현하는데 치중한다. 그래서 그는 유희적 기교를 즐기지 않는다. 간혹 <임파선의 선율>-시리즈에서처럼 동적 음악적 유희가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표현이 극히 절제적이다. 이러한 엄격성은 그가 한 번 찾은 테마의 원형을 변형시킬 때도 나타난다. 그는 테마의 본질적 파악에 필요한 미세한 뉘앙스를 표현할 경우에만 약간의 변형을 시도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김태원은 강인하고 엄격한 창작정신을 소유한 청교도적 도예가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 김태원의 창작정신은 자신과 세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하여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내려는 그 집요함과 치열함에서 진면목을 나타낸다. 그의 최근 수년간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가 추구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지구의 진화 Ⅰ.Ⅱ> , <지구의 인지과정Ⅰ.Ⅱ.Ⅲ.Ⅳ> , <나의 생의 감정> , <침묵, 꽃상여> - 시리즈 등에서 김태원은 처절할 정도로 집요하게 생명과 존재의 문제에 대하여 고뇌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의 주제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문제의식의 상이한 표현에 불과하다. 그는 여기에서 감추어진 존재의 비밀을 알고자 목말라 한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철저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는 머리와 물체를 뚫고 나오는 두 개의 뿔을 통하여 생명의 신비를 표현하거나, 작가 자신의 얼굴이나 사자의 마스크를 통하여 침묵 뒤에, 그리고 "나"와 모든 현상 저편에 있음직한 존재의 비밀을 인식하고 삻의 의미를 파악하여 표현하려는 거인적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신의 비밀을 훔치려는 프로메테우스의 행위와 비견된다. 존재의 심연에 도달하려는 그의 간절한 목마름과 표현의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그는 영원히 그 해답을 찾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의 최근작 <침묵, 꽃상여> - 시리즈가 그의 이러한 심경을 대변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단아한 원형의 그릇 속에 담긴, 점차로 소멸해 가는 듯한 그 엄숙하고 침묵하는 얼굴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을러니. 그러므로 침묵은 그가 창작정신과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찾아낸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리라.

 전체적으로 보아 김태원의 작품들은 주제의 중후함과 표현의 추상성 때문에 어려운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상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인류의 보편적 문제들을 동양적 혹은 한국적 모티브로써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토템> - 시리즈에서는 한국 고대의 토용을, <임파선의 선율> - 시리즈에서는 한복 입은 여인의 춤동작을 그리고 많은 작품들에 나타나는 동양적 얼굴은 우리 자신들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도예가 김태원의 작품들은 산업사외의 바쁜 일상 속에 파묻혀 자신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보다 본질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고 사색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미적 창조작업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표현하려는 한 젊은 예술가의 고뇌와 치열한 창조정신과 마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는 일상적 테두리를 벗어나 한 번쯤 진지하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사람들에겐 좋은 대화의 장이 되리라 믿는다.

1996. 5                                         

신상전(독문학, 덕성여대 교수, 문박)

생명력-1, 55×41×36cm, 1991

생명력-2, 81×53×16cm, 1992

생명력-3, 62×65×39cm, 1992

생명력-4, 82×35×23cm, 1992

생명력-5, 110×85×31cm, 1991

희노애락, 61×29×24cm, 1992

나의 생의 감정-1, 1993

꽃상여-3, 38×10cm, 1995

나의 생의 감정-2, 88×70×34cm,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