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통한 생명의 조형언어 확장"

Ⅰ.

 오늘날의 현대도예는 다양한 미적 개념과 표현기법으로 새로운 조형언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본고는 먼저 현대도예 표현양식과 성격을 3가지로 구분하여 그 흐름을 이해하면서, 이윤경의 세 번째 도조 작품 전에 나타난 조형언어의 확장과 그 변화를 읽고자 한다.

 현대도예의 첫 번째 유형은 전릉도자와 같이 기(器)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것과 이를 변형시켜 시대적 성격과 작가개성을 담고자 하는 작업이다.'60년대 이후 우리의 도예는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의 재현이 이루어지면서 전승도자의 틀을 잡아 나가게 된다. 이후 많은 도예가들은 과거에 이루어졌던 도자기의 모방이 아닌 시대적 성격과 개성을 담아내는 도자예술을 추구한다. 비록 이 같은 경향을 추구하는 한국의 도예가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나, 이제 이들에게 있어서 전통은 명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되면서 우리 현대도예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두 번째 유형은 물레성형과 유약, 소성작업을 기본으로 기(器)에서 벗어난 조형작업이다. 소위 도조(陶彫)라고 불리는 이러한 작업은 구상파 추상의 조형성 탐구가 우선이다. 새로운 미의식과 독창적 형태를 추구하는 이같은 경향은 현대도예에 있어서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제 도예가들은 도예라는 말 대신 도조나 혹은 흙작업, 조형작업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도예의 개념을 바꾸어 놓는 이러한 유형은 흙에 대한 애착을 갖고 조각과 같이 견고한 볼륨의 구성재료, 순수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때로 실험적 도예가들은 유약이나 소성과정을 무시하면서 개성적 조형언어 모색에 몰두한다.

 세 번째 유형은 두 번째와 같은 성격이나 좀더 '자유로운 표현'의 설치작업이다. 이는 흙이라는 기본 재료와 유약, 소성 기법 뿐만 아니라 기능성과 실용성이라는 도예의 기본 개념에서 완전히 떠난다. 이러한 작업에 도예라거나 도자조각이라는 기존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순수 조형성과 개념미술, 설치 작업에 가까운 '자유로운 표현'작업은 필요하다면 흙뿐만 아니라 나무나 돌, 청동, 플라스틱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한다. 순수 조형성을 추구하였던 도조(陶彫)나 오브제, 흙작업 등과 같은 표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시대적 환경과 미의식의 변화에 따라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Ⅱ.

 이윤경의 도조작품은 두 번째 유형으로 흙을 통한 순수조형성의 모색이다. 그는 흙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생명'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미의식을 담고자 한다. 그의 실험적 도예는 회화나 조각처럼 순수 조형미를 나타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흙을 통한 자유로운 사고(思考)를 펼쳐 보이고자 한다. 그의 도조작업은 흙의 조형언어로 도예의 틀을 부셔버리고 새롭게 탄생하고자 한다. 이것은 '생명'과 '삶'을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5년 가까이 해온 그의 도조 연작 등은 도예가 가졌던 표현의 제약이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한 결실들이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제작된 <기둥(Column)>과 <가족(Family)>연작은 그 구체적인 예이다. 여기서 그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흙을 통한 생명과 삶의 생성과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흙을 통한 생명과 삶의 진솔한 표현이 우리들에게 작은 갈등을 주었으며, 이러한 주제와 리드미컬한 연속적 볼륨의 조형적 실험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현대도예의 새로운 조형성 추구이며, 절대적 미(美)의 탐구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흙을 통한 순수 조형성 탐구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초기 그의 작품은 추상적 단순한 형태와 흑백의 무채색으로 구성의 아중성을 중요시하였다. 즉, <기둥>에서는 긴장감을 주는 수직 구조로 바닥의 수평과 대립되며, 내용면에 있어서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의 탄생과 소멸, 밝은 면과 어둔 면, 지상과 천상, 현실과 비현실, 신과 악 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와 의미는 <가족>연작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표면에 조각된 인간 형상들은 추상적으로 나타났으나 대립된 두 개의 상징적 세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즉, <기둥>과 같이 <가족>연작애서도 유기적 형태의 역동적 움직임이 강조되면서 생명의 탄생인 동시에 삶의 모습이 진솔하게 그려졌던 것이다.

Ⅲ.

 이번 이윤경이 세 번째 개인전에서 연작 형식으로 보여주었던 <세상 밖으로(Come into the World)>는 <기둥>과 <가족>과 같은 주제의 작업이다. 즉, 흙을 통한 '생명의 탄생'과 '삶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생명'과 '삶'을 주제로 흙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이며, 인간의 원초성과 실존의 확인인 것이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오랜 시간 끈질기게 파고드는 작가 의식이 돋보이고 있다.

 <세상 밖으로,1994∼96>에 나타난 '생명'에 대한 동일한 주제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조형적 변화이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준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과 릴리프 형식은 흑백의 대비나 형태의 단순화로 더욱 자유로운 작가의 표현의식을 느끼게 한다. 릴리프 형식은 사각형이나 삼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여러 개 화면이 분할되어 나타난다. 변형된 직사각형의 화면에 하나의 부조물을 붙이거나 2개, 혹은 4개, 5개 등 여러 개의 부조물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사각의 공간에 놓여진 작은 릴리프들은 생명 있는 개체처럼 고유한 자신의 성격을 나타낸다. 흑색과 백색의 대비된 구성이 돋보이며, 흰색 바탕에 찍혀진 작은 점들로 이름 모를 개체들의 '생명'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세상 밖으로> 릴리프 연작들은 개체의 독립된 성격을 살리면서 상호 연관성을 중요시한다.

 한편 <기둥> 연작과 연결된 단순화시킨 3개의 원통 작업과 릴리프 연작에 나타난 조형적 변화는 유기적 형상과 기하학 상태의 결합이다. 원통에 릴리프로 나타난 유기적 형상과 기하학 형태의 결합이다. 원통에 릴리프로 나타난 유기적 형상은 <가족>의 이미지와 동일하면서 더욱 단순한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다. 또한 릴리프 연작에는 사다리 형태나 변형된 사각형에 기하학 형태의 작은 사각형이나 삼각형을 반복시켜 겹치게 하고, 그 위에 유기적 형태가 등장한다. 입체 작품과 달리 릴리프는 기하학 형태와 구성이 강조되고 있다. 마치 현실적 삶의 테두리를 상징하듯 반듯한 사각형과 삼각형이 겹쳐지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현실적 환경의 상징으로 테두리가 만들어진다,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유기적 형상들이 애처롭게 보인다. 과거의 작품에 비해 왜소해진 유기적 형상들은 슬픈 표정들이다. 흐느적거리는  추상적 형상이 역동적 움직임을 잃어가고 있다. 기하학 형태와 엄격한 구성이 강조된 <세상 밖으로, 1994∼96>는 감성보다 이성적 표현으로 차갑게 느껴진다.

 기하학 형태위에 전개되는 유기적 형상인 작은 구(球)와 그곳에서 벗어나는 기다란 주기들은 감성적 표현으로 '생명'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그 줄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작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생명'이라는 주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게 하는 유기적 형태의 변화와 바탕의 기하학적 구성은 새로운 조형적 특성이다. 이러한 조형적 실험은 <세상 밖으로>나오려는 색다른 실험으로 자율적 생명을 얻기 위한 또 다른 모색으로 보인다.

 입체적 공간의 축소 작업인 <릴리프> 연작은 기하학 형태의 순수함과 조형 질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나, 전에 비해 조형적 힘이 약해진 느낌이다. 즉, 자율적 생명을 구하였던 <가족>연작 보다 <릴리프>에선 이성적 엄격함으로 자율적 질서가 잘 나타나는 대신 역동성이 부족하다. '생명'과 '삶'의 주제를 일관성 있게 추구한 이윤경의 작업은 이성이 개입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비록 <릴리프> 작업에 나타난 조형적 힘이 전에 비해 약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새로운 조형적 아름다움이 확인될 때까지 그는 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윤경은 이같은 조형적 변화로 생명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 균형과 불균형의 혼돈을 정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려 한다. 그는 흑백의 무채색과 기하학 형태의 차가운 구성으로 '생명'과 '삶'을 다시 그리고자 한다. 엄격한 기하학 형태의 질서와 초자연적 힘을 담고 있는 유기적 형상의 감성이 조화로운 결합으로 그 생명의 뿌리는 더욱 깊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96.2                                     

                                                      유 재 길/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Come in to the world #101. 89×70×11cm, 1995

Come in to the world #111. 141.5×141.5×15cm, 1995

Come in to the world #109. 143×83×8cm, 1995

Come in to the world #107. 120×85×16.5cm, 1995

Come in to the world #105. 73×184×10cm,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