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재의 近作에 관한 생각

1.

 일반적으로 도예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공예로서의 도자기를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토기, 도기, 사기, 자기 등 흙과 유약과 소성온도에 따라 그 명칭과 속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는 그릇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을 우리는 陶藝라고 지칭해왔다. 그것은 물(水), 불(火), 흙(土)의 질료적인 속성과 그를 만지는 사람의 기술, 그리고 집요한 장인정신이 혼연일체를 이루어 공예예술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왔다.

 최성재의 도예작품도 제작진행방법에 있어서는 위의 일반적인 도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통적인 도자기가 일품성이 강조된데 비하여 최성재의 그것은 어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내용물을 캐스팅 기법으로 다량 제작하여 설치하는 것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가 사용한 기법(테라시질레타:그리이스에서 도자기 제작시 사용하던 표면이 검은색으로 드러나는 유약으로 여러번 소성 가능한 기법)만이 보기 드문 특징을 띄고 있다. 이 기법으로 그는 소성을 여러번 해서 그가 원하는 표면질감을 얻는다.

 그러나 최성재의 작업은 이러한 기술적인 것이나 기법적인 면에서 설명하기에는 그 내용이나 형식과 소통어법이 이전까지의 도예와는 다른 지점에 있다. 그의 작품은 실용성을 담보하는 그릇도 아니고, 또 그릇이나 항아리의 절대조형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또는 物性을중시하여 흙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릇이라는 '기능성'과 미적인 '조형성'에서 벗어난 '내용'으로 인하여 이미 공예의 범주에 있지 않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는 현대미술에서 흔히 등장하는 추상적인 관념적 주제가 있고, 또 그만의 상징이 있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가 일반적으로 합의한 장르 개념을 거부하고 시각미술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드러날 때 명료한 소통은 어렵다. 사람사이에 언어로 대화할 경우조차도 그 내용이 개인적 감정이나 관념적인 추상일 경우, 혹은 자기만의 어법으로 표현할 경우 그 내용의 전달은 어렵다. 즉 인간의 의사소통은 불명료한 상징적 체계를 갖고있으며 多義的이고 임의적이며 주관적이다. 그리고 작품이 이미 완결되어 하나의 텍스트로서 자신의 형식으로 그 내용을 상징할 때, 그것은 관객과의 조우에서 많은 불일치를 이룬다. 이 아포리아(Aporia)는 어쩌면 현대미술의 번성된 생식기이며 동시에 그 생식을 거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근대이전의 미술은 소재의 객관적 재현이라는 시각형식을 취함으로 소통체계에 있어서 그리 난해함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보다 다양하고도 관념적인, 그러면서도 개념적인 소재들을 마찬가지의 주관적 형식으로 제시함으로 작품의 解讀과 誤讀을 동시에 성립시키는 조선을 만들었다. 작가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그만의 세계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 재현을 통한 소통을 우선하는 과거의 방법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성재는 이러한 아포리아를 인정하고 주제를 전적으로 소통시키려는 것을 포기한 채 관객이 스스로의 눈과, 지식과, 감성으로 그의 작품을 읽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소재들을 관객의 기존시각과 상관없이 조합하는 것이다. 다만 그가 의도한 내용에 이르기 위해 흙을 새롭게 다루는 것을 연구하고, 작품의 설치와 디스플레이에 뉘앙스(예를 들면 수직과 수평, 벽과 바닥, 반복 같은 설치방법이나, 작품의 발색이나 질감 등을 유사한 분위기로 이끌고 가는 경우 등)를 만들고 할 뿐이다. 나머지 소통의 문제는, 해독이든지 오독이든지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의 기능이며, 그 작품을 보는 관객의 권한일 뿐이다. 이럴 경우, 뒤에서 얘기되겠지만, 그의 작품은 그가 의도한 주제(生成과 消滅의 반복과 순환에 대한 그의 관념)와는 달리 보다 지엽적인 환경문제, 죽음, 도예개념에 대한 새로운 도전 정도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생명들에 대하여, 죽음, 그것은 물로 바뀐다. 물에 대하여, 죽음, 그것은 흙으로 바뀐다. 그러나 흙에서 물이 나오고 물에서 생명이 나온다."

                                헤라클레이토스, <자연에 대하여>

 최성재의 이번전시 주제는 '생성'과 '소멸'의 비분리성과 변화, 순환성에 관한 그 자신의 추상적 관념이다. 그것은 생명과 죽음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주제와 객체, 혹은 물질과 정신에 관한 것일수도 있다. 이를테면 불교의 영혼회귀나 윤회사상, 도가의 자연에 대한 주관적인 관념론 같은…

 최성재에게 있어서 이러한 주제는 그의 정서라든가 작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기실 최성재가 도미하기전인 92년도의 개인전은 이러한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성찰보다는 도예형식 자체에 관한 의문과 회의를 더 중점적으로 작업으로 나타냈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그의 작업을 그때와 비교해보면 작품제작이나 설치방식 등의 유사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그 내용과 주제를 우선하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작품을 더 두고 보아야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거의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음은 틀림없다. 우리와는 사고방식과 생활이 엄청나게 다른 곳에서의 3년이 근본적으로 작업과 사유에 대해 다른 생각을 그에게 요구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난번의 전시에서 보여준 전통성과 토속성에 관한 일정정도 관심이 그 깊이를 더해 가는 것일까.

 그런데 최성재의 근작들은 이러한 관념성을 드러내기엔 매우 일상적인 사물들을 그 소재로 한다. 이는 그가 의도한 내용에 대한 단서를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들여 낯설지 않게 소통을 시도하려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재들의 배열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면서 서로 다른 어법을 형성한다.

 첫 번째는 물고기와 플라스틱 합성세제병(空·生 2)/사람얼굴과 양동이(독백2)/우유를 담는 용기와 뼛가루를 담는 골혼 (空·生 1)등 상호연관성 없는 소재를 병치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사물들이 가진 전혀 다른 속성의 연관과 차이를 관객들에게 제시함으로 관객들이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따라오게 할 수도 잆고, 관객 스스로의 해석으로 자기 주제를 얻을 수도 있게 한다. 우선 <空·生 2>라는 작품을 보자. 플라스틱 세제병과 물고기를 수직으로 설치한 이 작품에는 다른 서술이나 제시는 없다. 이 수직의 작품 배열은 고요하고 무언가 엄숙한 분위기를 담아내며 그가 취하는 내용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지극히 간단하 이 상황설정은 그러나 소재에 국한시켜서 그 의미를 파악하려 하면 전혀 엉뚱한 내용이 된다. 즉 소재에 의미를 두면 이 작품은 쉽게 환경문제에 연관될 것이다. (이 진술도 그는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런 소통의 한 형식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만의 내밀한 내용을 상징화한 것이므로, 그것은 매우 섬세한 관람과정을 거친 이후에라야 어느 정도 감지된다. 즉 플라스틱 용기는 비어있을 수도 채워질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병'이라는 사물을 볼 때 우선적으로 자신의 기분이나 기호에 따라 그것을 판단한다. 이 병에 대한 기능이나  상태, 개념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가능성이 최성재에게 있어서는 사물을 보는 하나의 태도이다. 마찬가지로 물고기는 죽어있을 수도 살아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때 세제병과 물고기의 연결은 쉽게 죽음을 연상시킨다. 플라스틱병과 물고기는 현재에 있어서는 생성과 소멸의 단서가 되지만 어쩌면 먼 시간 이전이나 이후에는 아무런 관계도 아닐뿐더러 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는 생성할 수도, 또 하나는 없을 수도 있다. 이 생성과 소멸의 연속성 혹은 불투명성을 대상에 고착된 관념사이로 살짝 드러내 보이며, 최성재는 한 사물에 고착된 이미지나 개념을 부정하며 그 관계성이 새롭게 연결되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제시된 대상이 관객 자신의 사고작용으로 새롭게 해석되기를 기대하는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병의 형태를 플라스틱 세제병으로 선택한 것을 보면 환경문제로 보는 관객에게는 그렇게 읽히도록 의도한 것 같다. 이 어법은 <空·生 1>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유통과 죽은 사람의 뼛가루를 담는 골혼의 규칙적 간격의 반복과 대비는 산 것과 죽은 것의 관계를 연속적인 것으로 동일시한다.

 두 번째는 같은 접시를 땅에 놓거나 벽에 걸어놓음 (空·生 3)이나, 형태는 같으나 비문의 내용이 다른 비석 약 20여개를 같은 간격으로 반복해서 설치(독백 1)하는 방식이다. 이는 사물들이 놓여있는 위치와, 시간, 장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것을 주시한 것이다. <독백 1>을 보면 자신이 구체적으로 체험했던 경험과 인상을 소재로 하여 사물의 비규정성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碑石'이라는 사물이 제시되면 우리는 무엇을 연상할까? 위가 둥글고 아랫부분에 받침대가 있는 비석의 형태, 고고학적 이미지, 비명, 무덤, 일단 나의 연상은 이렇다. 그리고 상당수의 한국사람들도 그럴 것 같다. 최성재도 과거에는 그랬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은 그런 관념이 없다. 여기에 관해서는 그의 체험이 쉽게 이해를 돕는다. 최성재는 캐나다 유학시절 동네어귀에서 많은 비석을 보며 무심코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비석이 묘비가 아닌 이정표임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자신의 고정관념에 당황했었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 이열로 늘어서 있는 비석이 벼슬의 등급을 표기한 사실도 새롭게 떠오르고, 또 다른 비석의 내용과 기능, 그 성질이 서로 다름도 떠 올랐을 것이다. 물론 캐나다에도 묘비는 많고, 그도 거기에서 그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비석에서 죽음이라는 네가티브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캐나다 사람들은 단순한 이정표를 먼저 떠올리는 차이를 그는 확인하게된다. 그것은 크게는 문화의 차이이고 작게는 각 개인의 정서나 감정에 의한 개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사물은 명시된 본래의미(Denotation)로서 그야말로 돌로 된 비석임은 어디에서나 공통적이다. 그러나 공시적으로 확대 연관된(Connotation)것은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공통분모 아래 죽음, 기록, 행적, 표지판, 서열 등을 상징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물에 있어서 언어적 개념이나 이미지조차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3.

 설치미술은 보다 명료한 주제의 소통을 위해,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작가의 순발력을 위해 평면이나 입체를 아우르는 적극적이고 유격적인 작품구성형식이다. 관객 또한 설치된 오브제들을 통해서 간접적 방식이든 직겁적 전달방식이든 빠르게 그것들을 감지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말하면 작가에게나 관객에게나, 재료를 위시한 복잡한 논리전개를 피해서, 빠른 소통의 회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최성재는 점토를 이기고, 모델링하고, 소성하고, 표면처리하고, 다시 설치하는 과정을 거치는 공예적인 장인성이 과연 유효한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도예가 갖고있던 공예적 속성을 부정하며 보다 확장된 내용과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설치방식까지 취했으나 여전히 재료자체를 장인적인 습관으로 공예화 하는 자기모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관념들을 순발력 있게 개념화시키는 작업이 과연 이런 무겁고 부담스러운 공예적인 匠人性제작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도예라는 예술형식의 근원적 매력을 십분 인정하지만, 작가가 동시에 너무나 여러 가지를 취했을 때 그 전달되는 내용이 날카롭지 않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가 작품 소통의 여러 개연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정교한 소통을 위한 자신의 전달회로는 준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내용을 중요시하는 경우, 형식은 내용을 비수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작품을 보조하는 패션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진하(나무기획 큐레이터)

독백 2, 각각 20×16×13cm, 1996

일상, 각각 8×14×41cm, 1996

일상 7, 각각 6×146×106cm, 1996

空 生 1, 각각 100×30×29cm, 1995

空 生 2, 각각 6×11×25cm, 1995

독백 1, 각각 74×38×15cm, 1995

空 生 3, 각각 지름 42cm,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