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성-그 원천적 생명력

1. 도예과 김성진의 첫 전시는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관심사이다. 그것은 흙작업에 대한 그의 연륜 못지 않게 작가로서의 진솔하며 겸허한 자세가 있기 때문이며 특히나 귀향하여 대학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전시에 선보이고자한 작품들은 그가 고향-삼척에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그가 탐색했던 근작들은 그 주제가 명료한 가운데 첫 전시에서도 이를 투영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대상속에 개체로서의 수목이 아닌 「숲」이며,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상도 개체로서의 사람이 아닌 「군상」을 선택하고 있음이다. 숲은 정적이며 군상은 동적일 수 잇는 상반된 주제이나 이러한 대비적 관계성을 그의 해법에서는 대지 위에 서 있는 생명체로서의 유기적인 형상 속에 내비친 내적인 힘을, 다시 말해 자연과 인간과의 결부된 동질적 의미를 조형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유기적인 형상 속에 내재된 내적 힘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행되는 일종의 균형상태(Equilibrium)를 이루는 것으로서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계가 시각화되어 나타나는 공간적 형상이 된다.

2. 김성진의 자연, 특히 숲의 형상적 이미지는 흙작업과 연관한 인간과의 관계를 보다 구체화시키기 위해 그의 첫 전시의 주제로 도입하고 있다. 이는 그가 선택한 숲은 그 스스로가 시골의 정서로 살아온 자연인이기 때문이며 그의 삶에 운명 지워진 일종의 순환질서 속에 순응하며 회귀하고 있는 까닭 때문일 것이다. 반복된 설명이지만 그의 고향으로의 회귀는 곧 자연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우리는 동질한 선상에서 그의 작업을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자연을 단순히 묘사, 재현하기보다는 피상적인 외형과 구분되는 의미를 찾아내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자신의 인상, 감정, 심상에 따라 재창조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작업에 임했으며 그 결과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성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따라서 도예가 김성진의 「숲」의 이미지는 고향으로 회귀된 생의 노정을 형상화한 조형적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자연의 질서와 법칙 속에서 조형요소를 추출하여 숲에서 받은 이미지와 미적체험, 마음속에 느낀 감동 그대로를 다양한 표현방식에 의해 재구성하고 있다. 대상의 모습을 변형하거나 대상의 본질은 축약적으로 표현하여 감정을 비형상적 형태로 표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형상들 속에서 세월에 따른 풍상과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 시간의 흔적들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의 관찰, 즉 시각을 통해 무엇인가를 포착한다는 것은 수동적 기록이 아니고 능동적 관심사인 동시에 선택이 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가 관찰하여 느낀 것은 자연의 객관적인 면으로 일시적인 형상이지만, 그가 여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속성을 내포시키고 있다.

3. 김성진의 숲에 대한 형상적 전개는 군집적 수목의 공간감을 확장한 유기적인 또는 역동적인 생명감을 도이고 있으며 군집이 때로는 개체로서, 또는 집합체로서 유동성을 도이거나 직립된 구성체가 되어 과묵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 모두는 시적 환타지아를 이루며 인간과의 교감을 위한 손짓을, 뜨거운 태양을 포용하는 열정을, 또한 계절의 변화와 풍상에 순응하는 내적인 힘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숲」에서 보이는 생성과 변화는 무언의 질서 속에서 외적 형상과는 또 다른 내적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고 있다.「숲」의 내적인 원천적인 힘을 곧바로 생명력이며 이 내적 힘에 유기적이라는 말은 생명체와 연관한 작가 김성진의 흙작업에 대한 조형적 변용(Metamorphosis)이다.

 작업의 주된 기법은 점토판에 의한 성형(Slap Building)으로 전후면과 좌측면에서 시각적 변화를 이룬다. 그의 근작에서 판 작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것은 판의 속성을 꿰뚫은 조형적 버라이어티를 인지한 때문이며 평면적 형상들이 조합에 의해 입체를 이루거나 공간감을 확대시키는 구성적 변화에 흥미를 갖기 때문이다.

 유약은 동, 철, 티타늄 계열의 낮은 채도에 백Mat유를 분사시유하여 입도조절하고 일종의 점묘법의 효과를 구사함으로써 그의 조형적 이미지를 표출시키고 있다.

4. 도예가 김성진의 삶의 족적 그리고 그의 도력은 그의 나이만큼이나 다채롭다. 이 일련의 드라마를 단지 몇줄로 집약할 수 없는 얘기이지만 어느 작가가 이만한 풍상을 거쳤으며, 어느 작가가 이 과정을 인내하고 고뇌하며 진솔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이 역경 속에서도 흙작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자신의 삶을 성숙시키는 가운데, 제 5회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 작품 「律(률)」로서 우수상을, '89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에서는 상공부 장관상을 수상하여 추천작가로서 오늘의 그를 구축해 나아가고 있다. 10여년간을 그와 함께 이따금은 소주잔을 대하며 또 때로는 흙과 불을 얘기하는 가운데 그의 인간적인 체취와 진솔한 면모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의 작업노트에는 「겸허함이란 흙이 지닌 본성이다」,「흙은 새로운 고통을 준비하면서 사유를 위한 충동질을 하는 것」,「흙을 통해 자신을 보려는 것과 자신을 통해 흙을 보려는 그 상념의 차이는?!」,「우리가 하고 있는 행위는 생의 공허를 흙으로 채우려는 짓거리...!!」등을 메모하고 있다.

5. 김성진의 「숲-군상」바꾸어 말해 「자연-인간」은 그의 작의 자체에서 생명력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의 작업 속에는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이 새겨져 있고 자연으로의 회귀와 섭리에 순응하는 신앙적 의미마저 대입시키고 있다. 또한 생명의 소중함이나 경건함 나아가 삶 속에 이루어지는 사랑을 통한 인간관계를 가시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숲」은 진한 향기보다는 부드럽고 신선한 아름다움이, 「군상」들에서는 상실된 현대인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그 모든 무언의 메시지를 우리 모두에게 전해주고 있다. 오늘 우리는 우리만이 아닌 또 다른 모두에게 그 메시지를 전해 주어야만 한다.

1996. 10                                                 

한 길 홍    서울산업대 교수,  도예가      

FOREST 8-A, 36×38×47 cm

FOREST 11-B, 47×26×69 cm

FOREST 14-A, 57×22×59 cm

FOREST 9, 75×29×52 cm

FOREST 10, 61×29×40 cm

FOREST 13-A, 48×26×46 cm

FOREST 8-C, 55×22×67 cm

FOREST 11-C, 64×35×46 cm

FOREST 9-B, 60×36×53 cm

FOREST 23, 60×26×66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