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명력과 교감 

  김광면이 꾸준히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자연의 생명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미지가 약간은 추상적으로 변형되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친근한 유기적 형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가 중요하게 다루는 점은 자연이 겉으로 드러내는 外樣만이 아니다.  문제는 자연에 편재해 있는 생명력 그 자체다.  물론 자연은 생명 자체를 외양으로 드러내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단지 자연은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위장을 한다.) 따라소 유기적 자연의 형태는 그 이미지 자체로 가시화된다.  그래서 덜 이미지 면에서 그것이 어느 정도의 수용이 이루어 지면서도 대부분 변형이 되곤 한다.  그 이유는 생명체 개체의 문제이기보다는 種 혹은 전형성애 더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80년대 말 자연적 생명의 문제를 표현할 때의 작품들은 주로 단순한 塊體 구조 속에 볼록하게 돌출하거나 혹은 가시형으로 돋은 것들이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서식하는 듯 숨어 있었다.  대체로 알이나 열매, 씨앗 등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구체나 환면에 동물의 촉수나 모발, 가시 같은 것들이 서술적으로 부가되어 있는 것이다.  90년대 작업에서는 보다 점토의 특성을 결합적으로 반영시킨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손끝을 거친 흙의 자연적인 형상을 보다 중시한다는 것이다.

  '나의 작업에는 생명력, 즉 자연으로부터 유추된 형태나 상징적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점토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체화 시킨다.  손 끝에 닿는 흙의 감촉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형상을 찾아낸다.  흙을 흙답게 함으로써 기술을 넘어서 생명력을 얻으며, 그것을 작품 속에서 적절히 안배하여 또 다른 생명으로 탄생시킨다.'(작가노트)

  그래서 그는 점토에 손맛을 많이 담고 있다.  손의 동작이 개입되어 일으키는 변형이란 다름 아닌 표현의 介在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그는 흙 속에도 숨어 있는 생명을 찾기 위하여 손의 감촉을 중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그의 애니미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흙이라는 무기물 자체를 생명 혹은 생명과 연관된 것으로 보려는 태도 말이다.  그래서 작가 자신의 생명이 확인되는 것도 바로 흘과의감촉에서 확인되는 것이며, 그 손을 통해 빚어지는 형상 역시 생명을 가진 그 무엇이도록 하고자 하는 바는 흙 스스로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자율성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제작된 작품들은 크게 네 가지 작품 유형을 보이고 있다.  앞에서의 손맛이 강화된 변형 혹은 왜곡된 이미지의 부류가 첫째이며, 둘째는 전의 작업에서 많이 등장한 둔중한 구체나 괴체와 유사한 부류, 셋째는 전의 작업에서 돌출한 부위들만이 더 활발한 형태를 갖는 부류, 넷째는 여러개의 일정한 유니트의 단위면에 네거티브로 파이거나 혹은 그것에 은닉해 있는 생명체 이미지들의 부류 등이 그것이다.  첫째의 경우는 얼마 잔까지 단체전 등에서 선보여진 것으로 어떤 혼돈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들의 함몰이 눈에 띈다.  자연 속에서의 생성과 소멸의 순환성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 문맥일 것이다.

  한편 둘째의 부류는 종래의 알이나 과일(호박 등), 소라 등의 형태를 띈 것으로 단순하면서도 볼륨이 크다.  바깥의 이미지와 안에서의 (혹은 단면의)이미지들이 서로 상이한 가운데 생명의 포용력과 방어적인 속성을 전하고 있다.  셋째의 경우는 약간 돌출이 심하고 다양한 형태들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는 버섯, 고동, 씨앗, 포자 등의 형태가 다양하게 보여지고 있는데, 약간은 공격적인 속성을 느끼게 하며, 직립의 상승적인 走光性을 드러내고 있다.  끝으로 넷째의 부류는 땅 속의 생물체들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땅이나 나무 속에 박혀 성충이 되기를 기다리는 애벌레의 모습이 상당히 기호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더러는 애벌레의 자리가 빈 채 남아 있고 하여 구성적이기도 하며 자연과 생명의 안과 밖이라는, 그리고 음지와 양지라는 이중적인 문제와 함께 생명의 편재성에 대한 메시지가 심도있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김광면의 작업에는 흙다움에 충실하고 있으며, 표현 대상의 면밀한 관찰과 사유가 토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관찰이란 물론 생물학적 관찰과는 종류가 다르다.  자연과 사물 전체를 감각적으로 관찰하고 조형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아울러 흙 자체의 물성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데서 오는 거친 맛과 손맛의 조화도 작가 성취의 한 장이 될 것이다.  자연의 생명 현장에 대한 단순한 관찰자나 기록자가 아니라, 스스로 교감하고 또한 생명의 발현자가 되고자 하는 작가 미의식의 성취 말이다.

                                                        이  재  언(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