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재의 「도시공간」- 그 시적 판타지아

 

1. 창작을 하는 사람에 있어 작품은 그의 생명이며 분신이다.

 그 생명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느끼고, 그 분신을 통하여 삶의 희열과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것이다. 중견이 들어선 도예가 이웅재는 참으로 왕성한 의욕 속에 몰입하여 탐색 해왔던 창작의 결산인 「도시의 공간」연작 20여 점으로 그의 첫 전시에 선보이고자 한다. 여기서 나는 이웅재의 작품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그의 인간적인 면모랄까, 아니면 흙을 통한 인간승리와 같은 일련의 드라마틱한 얘기를 전해야겠다.

 

2. 이웅재가 흙과 인연을 한지가 20여년이고 보면 그의 도력과 성장궤도가 여느 작가들과는 판이한 양상속에 순탄치 않은 과정이 있었음이 예감된다. 실상 그가 '70년대 초에 변산 위군섭의 한국청자연구소를 시발점으로 하여 전통도자의 조각기법을 익히고, 그 후 1976년에 한양여자전문대학에서 자그마치 15년간을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도공으로서 기능인으로서 경험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을 두루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웅재의 진면목은 그가 처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도전에 있다.

 그 어눌한 성격에 말재간도 없는 충북 옥천 촌사람에게도 무서운 인내와 집념이 있었기에 또 다른 한계에 도전했던 것이 서울산업대학교가 되며, 그 4년 간의 과정에서 현대도예에 대한 이해와 창작세계로의 근접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도예에 대한 열정과 인생역정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그는 다시 한양대학교 교욱대학원에 도전했으며 학위논문 <銅이 釉藥呈色에 미치는 影響>으로 학문적인 성과와 결실을 거두기도 하였다. 게다가 1990년부터 한양여전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으니 그의 삶의 족적에 대해 흙과 더불어 함께 한 그 의지와 집념은 우리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는 분명 도공으로 출발하여 기능을 익히고 조형에 접근하였으며 실험과 연구에 의한 기술개발과 더불어 창작활동을 통하여 유수한 공모전과 단체전 등에 쉼 없이 참여하여 기량을 연마해왔다.

 

3. 「도시의 공간」을 주제로 한 이웅재의 첫 전시는 바로 이 모든 과정의 결산이며 집약된 노고의 대가이다.

 그가 택한 주제는 인간이 살고 있는 도시의 제구성체들에 대한 존재적 의미를 건강한 시각에서 포착한 것이며 그 속에 생명력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데서 비롯된다. 작품 속에 내재된 높고 낮은 아파트의 군집형상, 공해로부터 찌든 속에서도 파릇한 새싹을 피우는 가로수들, 어둠의 세계를 밝히는 침묵하는 가로등들을 통해 삶의 굴레 속에서 인간이 생존하고 부딪히고 느끼는 감정들을 대입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이웅재의 시각에서 비쳐지는 도시의 공간과 상황은 문명과 산업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도태된 인간상실, 인간부재의 현존적 상황을 표출한 것으로 문명의 집체라고 하는 이 거대한 도시의 판타지아를 연출해내고 있다.

 그의 조형은 사각의 콘크리트와 같은 구조체로 출발하여 변화 있는 전개형식으로 eud적인 공간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수직의 직렬에 의한 크고 작은 개체들의 연결형식은 모뉴멘탈리티를 느끼게 하며 또한 대칭구도로부터 이탈현상을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아파트는 일원적 형태감에서 벗어난 열린 공간 사이로 넓게 확장된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어 형식미의 대범성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일종의 견제와 확산이 될 수 있는 조형적 상관관계를 자연의 이미지로부터 차용한 몇 가지 요소에 의해 균제의 미를 보강하고 있음을 본다.

 그의 작업에서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Segartlrdml 이성분계에 의해 나타나는 표현효과로서, 백유 위에 조합안료를 분무하여 일종의 물방울처럼 맺힘 효과를 나타나게 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작품전반에 비중을 두어 제시하고 있다.

 

4. 이웅재의「도시의 공간」연작은 종전 양식에 비해 획기적인 변화이며 자신의 감성에 일치하는 내재율이 주관적 해법에 의해 새로운 조형언어로 발전된 것이다. 그의 조형적 접근과 모색은 무엇보다 풍부한 경험과 감성적 표출에 의해 현대의 도시를 투영시키고 있으며 사물의 미추에 대한 표현의 결과로서, 콘크리트에도 아스팔트 위에도 생명력이 담길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인간적인 사랑과 순수한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처럼 그의 삶은 흙에 의해 영원한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이 어두운 도시의 값진 보루가 되어 거대한 공간 그 속에 자리하고 있다.

 

1996. 5. 1

서울산업대학교 교수

도예가 韓 吉 弘

 

도시의 공간-15, 360×125×520

도시의 공간-14, 370×130×730

도시의 공간-12, 430×120×550

도시의 공간-10, 460×120×470

도시의 공간-9, 290×120×500

도시의 공간-8, 290×120×570

도시의 공간-7, 390×260×1410

도시의 공간-6, 300×125×510

도시의 공간-5, 490×125×1460

도시의 공간-4, 470×120×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