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옹기의 현대적 변용

최광진 (호암미술관 큐레이터)   

 우리나라는 예부터 도자기의 나라로 한국의 예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도자기이다. 도자기는 곡물을 저장하고 음식을 담기 위해 토기가 만들어진 이래 그 기술적 발전이 거듭되어 고려청자와 분청사기,그리고 조선 백자에 이르러서는 세계 도자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요즈음도 간간히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 등 세계 미술시장에서 우리 도자기는 고가에 판매되어 그 우수성이 입증되기도 한다.

 그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대자연에 순응하고자 하는 한민족 특유의 심성이 도예의 탄생조건과 일치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도예는 다른 장르와는 달리 예술가의 재주 외에도 자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흙과 불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번 작업이 시작되면 흙이 말라가는 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작업을 진행 시켜야 하며 이때 흙과의 대화를 통해 작가의 의지와 흙의 속성이 타협점을 찾으며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런 뒤에 불이라는 대자연의 엄정한 심판이 뒤따른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땅을 일궈 곡식을 수확하는 과정과도 흡사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는 자연에 이미 존재해 왔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과 순박함이 깃들어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우리민족 특유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그 특성을 잃어가고 있고 , 장르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도자의 조각화(도조)가 성급하게 이루어졌다. 영역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우리의 전통을 망각하고 기초없이 맹목적으로 시대 조류에 휩쓸리거나, 흙만이 가질 수 있는 도예의 독특한 맛이 사라져 가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젊은 도예가 최예일의 작품들은 우리의 전통과 그것의 현대화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과 더불어 젊은 작가들에게서 보기 힘든 진지한 장인정신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던져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복잡한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충남 금산군으로 내려가 힘든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들은 옹기모양의 큼직하고 수더분한 형태들이다. 그가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1991년당시 제작한 도조적인 작품과는 상당한 거리가 느껴지는데, 그가 기존의 방법을 버리고 전통기법으로 돌아간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선택한 용감한 결단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그는 1994년 울산 옹기마을에 내려가 서종렬 선생으로부터 전통 옹기기법을 전수 받았으며, 이러한 기반 위에 현대적인 조형미를 가미하고 있다. 그는 옹기를 만들때처럼 흙을 손으로 꼬아서 쌓아 올려 1미터가 넘는 작품도 이음새 없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나서 소나무로 만든 나무 몽둥이(부채)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 항아리 표면을 두드리며 독특한 질감과 문양을 만든다. 이때 생긴 요철 위에 다시 백토 상감을 입힌 후 마지막으로 철사로 드로잉을 하여 작품을 완성 시킨다. 즉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든 옹기의 푸근한 형태 위에 분청기법을 가미하여 회화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1996년 울산에서 열린 제2회 개인전에서부터 보여지는데,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의 모양에는 원형, 사각형, 삼각형의 기본 형태들이 그려져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원은 원만하고 부드럽고 따뜻함을, 사각형은 규와 모를, 그리고 삼각형은 예리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겉모습은 둥글고 원만하여 부드러움을 갖추고 속모습은 규와 모, 그리고 예리함을 겸비한 이상적인 성품을 갖고자 노력한다."마음을 어떻게 먹고 사느냐에 따라 기쁨과 슬픔, 행복이 좌우됨을 느꼈다." 라는 그의 말에서 작품제작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의 발을 가꾸고자 하는 "심전경작(心田耕作)"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그의 관심은 결국 마음의 문제에 닿아 있으며, 자신의 모난 성격을 대자연인 흙과 불의 관계를 통해서 다스리고 나도 자연도 아닌 중화된 새로운 개성체를 창조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 있어서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하나의 수행이자 자신을 정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다소 고지식하고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그의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신선해 보이는 까닭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새로움만 추구하는 요즈음의 세태에 대한 역겨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부터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진 독 모양의 옹기들은 부엌이나 광, 대청들을 넘나들었고, 때로는 장독대 위에 놓여져 자연과 훌룡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 꾸밈없고 수더분한 형태들은 평범하면서도 익살스럽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아랑과 덕을 환기시켜 주었다. 최예일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푸근함과 수더분함, 대범함과 풍요로움은 바로 요즈음처럼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잊혀져 가는 시골의 장독대의 향수를 자극하게 하며, 현대인의 마음 구속에 자리 한 마음의 고향으로 회귀케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