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진 도예전에

                                                                         신향섭/ 미술 평론가  

 흙은 생명의 원천이다. 흙은 무기질과 유기질의 혼합물이다. 흙은 생명체를 만드는 원천일 뿐만아니라 인간의 조형적인 표현 충동을 일으키는 근원이기도 하다. 흙은 인간이 손의 조작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 고자 했을 때 가장 가까이서 그 같은 의지를 실현시켜준 제료 였다. 여기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인간의 지적인 이해로써 성립되는, 자연물 이외의 인조물의 형태를 갖는 것 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돌이나 나무 따위는 자연물로서의 재료가 지닌 본래적인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는 반면, 흙은 그 본래적인 성격을 완전히 바꾼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흙은 그 어떤 재료보다도 인간의 실생활 및 예술적인 창작활동과 관련하여 가장 긴요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쓰인다. 무엇보다도 형태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로서의 흙은 생활기물로서의 도예 분야에서 탁원하게 기능한다. 단순히 생활기물로서 뿐만아니라 미적표현을 가능케 하는 창작으로서의 도예 및 도조작업이야 말로 흙의 쓰임새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정재진(鄭在振)  은 흙이 지닌 무한한 조형적인 가능성을 탐구해 들어가는 도예 및 도조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예술적 재능 및 그 욕구를 분출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는 의미에서는 도예나 조각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조형적인 아름다운 그 자체만을 문제로 하는 조가고가 달리 도예는 생활기물은 전제로 성립된다는 점에서 순수 예술과 분리시키려는 것이 이제까지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도예나 조각의 개념을 받아들여 순수한 창작, 즉 예술성만을 문제 삼는 작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경향이다.

 그래서일까, 정재진은 그릇으로서의  용도를 전제로 하면서도 특정 목적을 갖지 않는 자유로운 형태의 도조에 가까운 작업을 해왔다. 실제로 1991년 제1회 개인전에서는 "층(層)의 기억" 이란 명제의 연작을 통해 그릇이라기 보다는 조각의 개념에 접근하는 작업을 발표 했었다.

 그는 이때 생활용기로서의 그릇이 가지고 있는 형태 중에서 겹벽, 즉 이중벽의 형태로 제작된 전통도자기에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일반적인 흩벽의 그릇 형태를 탈피하여 겹벽 제작기법을 이용한 창작도예를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앞길을 예고 했다. 첫 번째 전시에서는 그릇의 개념을 충족시키는 작품과, 도조의 개념을 적용시킨 작업으로 구분되는 두가지 형태가 발표되었으며 그 형태는 물레 작업을 기본으로 한 그릇 모양과 판작업으로 이루어진 창작성이 강조되는 직육면체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뒤인 1993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초기의 형태를 견지하는 가운데 한층 형태가 명확하면서도 조형적인 안정감을 보여주는, 자기 확신에 찬 작업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작품 전체가 겹벽, 즉  이중구조의 벽체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형태, 세련된 조형기법 등이 한데 어우려서 독특한 개성을 발휘했다. 특히 양감 및 괴체감이 강조되는 , 도조에 가까운 작품들은 형태의 소박함, 단순한, 우아함을 기조로 하는 세련된 조형감각의 산물이었다. 이같은 작품에서는 속이 텅 빈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괴체감을 실현하고 있었다. 다만 형태의 단순함에서 비롯되는 중량감만을 지각하 수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표면 처리에서 발수제를 사용함으로써 우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지미를 얻고 있다. 다시말해 지극히 세련된 조형감각에 의한 인위적인 형태임에도 불구 하고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 및 자연스러운 표면 처리로써 자연물과 같은 느낌을 살리고 있었다.

 그는 도예의 기법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표현력을 보여주면서 그 자신이 추구하는 양감 및 괴체감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것이다.

 그의 도예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표현력을 보여주면서 그 자신이 추구하는 양감 및 괴체감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것이다.

 그의 도예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중의 하나인 괴체감은 단순히 도조작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릇류에서 더욱 그 응용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번 세 번째 개인전에 출품하는 작품들은 양감 및 괴체감을 그릇류의 형태에 직접 적용함으로써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도자기 형태를 가능케했다. 물론 겹벽의 도자기는 전통 도예의 한 부분으로 이미 그 효용성이 확인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에 새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겹벽 그 자체를 조형적인 과제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겹벽의 전통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실용성을 확대 해석한다. 즉 보온성이라든가 투각의 형태미를 살리면서도 실용성을 중시하여 겹벽의 도자기를 고안했던 과거와 달리 그는 조형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실용성도 고려된다. 그는 겹벽의 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특징을 극대화 시킨다. 가령 그릇에 겹벽을 도입할 경우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　서도 그릇의 볼륨을 키움으로써 홑벽 도자기와는 비교가 왼되는 형태적인 안정감 및 중량감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겹벽의 작품은 안정감 및 중량감이라는 시각적인 효과 이외에도 그를 응시하는 사람에게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주게 된다. 넉넉함과 너그러움과 풍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크기면에서도 실내공간의 한 부분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을 정도 이다. 홑벽의 일반적인 도자기 작품에 비하면 하나의 독립된 제품으로서의 품격은 물론이러니와 안정감이 한층 강화된 상태이다. 그는 실용성 및 장식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그 형태에서도 전통적인 도자기의 선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현대적인 미감을 중시, 가능한한 단순하고 간명한 형태미로 압축했다. 그릇에 부여하는 형태미는 전통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반드시 거기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그는 오직 한국사람으로서의 자발적인 미적 감흥에 솔직히 반응하는 것 으로써 전통성과 자연스럽게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조형감각을 전적으로 신뢰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작업중에서 항아리류의 작업은 배흘림 형태가 많다. 입과 금이 1:1 에 가까운 것도 형태의 단순미를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세부적인 표현에서 독자적인 미적 감각을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입에 턱을 만들어 뚜껑과 일치시킨다든가,  항아리의 배부분에 도드라진 형태의 띠를 두른다든가, 외벽에 구멍을 뚫는 등의 표현을 가미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미묘한 조형적인 기교를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화를 유도케 하는 이런 표현들이야 말로 그말의 미적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입에 턱을 만들어 뚜껑과 일치시킨다든가, 항아리의 배부분에 도드라진 형태의 띠를 두른다든다, 외벽에 구멍을 뚫는 등의 표현을 가미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미묘한 조형적인 기교를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화를 유도케 하는 이런 표현들이야 말로 그만의 미적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외벽에 뚫은 구멍 주변을 띠 형태로 돋우는 기법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심한 기교의 흔적이다. 이러한 외벽의 구멍은 의도적인 장식미의 결과 라기 보다는 이중벽에 따른 소성작업에서 생기는, 내부공간의 팽창열을 밖으로 발산시키는 필요한 기공(氣孔)의 조형적인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그는 그릇으로서의 기본 개념에 충실하는 한편 현대적인 감각에 의한 형태의 재해석으로 현대도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부단히 모색하고 있다.

 그의 도자기가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그 실용적인 가치에 있다. 기존의 도자기는 대부분 제작되는 과정에서 이미 그 효용성이 결정된다. 어떠한 용도로 쓰이는가를 결정함으로써 그 형태 또한 그 용도의 범위 내 에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는 이러한 일반적인 관례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특정한 용도를 부여하지 않는다.

 단지 무엇을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상용이라는 두 가지의 포괄적인 의미만을 부여한다. 어떤 쓰임새가 있는 지는 그릇의 소유자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어쩌면 그의 도예가 추구하는 것은 범용성인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또 어떠한 용도로 쓰이더라도 적당히 어울릴 수 있는 다기능의 도예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는 형태미에서 전통적인 도자기의 외형, 즉 윤곽선과 단순함. 안정감.양감.중량감에 덧붙여 정서적인 측면에서 너그러움과 여유 그리고 친숙미를 담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