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 에로스의 표현

 

                                                         고충환 (미술 평론가)  

 

 이세훈의 작품은 기(器)의 쓰임새에 줂한 도예의 전통적 의미보다는 그 자체로 작가의 세계관념을 반영하는 표현매체로서, 독자한 의미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즉 순수 회화 혹은 조각의 존재를 정의하는 오리지널 리티(일품성) 개념의 연장선에 있다. 작업은 물레와 성형이라는 전통적인 매개 과정을 배제하는 대신,거의 조각 일반과 구별되지 않는 과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복수 제작과 쓰임새 혹은 기능성이라는 도예의 전통적 개념과는 거리가 먼, 본래 개념의 의미 지평이 확장된 것이다. 그것은 흔히 순수도예 혹은 도자 조형 혹은 도조라는 이름으로 종래 도예와의 차별성을 꾀하고 있다.

 이렇듯이 도예의 의미 지평이 확장된 것과 마찬가지로 조각 역시 진작부터 도예 혹은 도자에 근접한 표현영역의 증대를 모색해 왔다. 일테면 테라코타 혹은 유약의 부분적인 차용이 그러하다. 사실상 조각과 도예는 다같이 흙 혹은 흙에 준한 매체를 소재로 한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 표현 영역의 겹침은 진작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회화 역시 타블로의 경계를 넘어 오브제를 차용하거나 설치 형식의 디스플레이를 취하는 등 점차 입체화 하는 추세에 있다. 특히 오브제의 차용과 마티에르 효과의 모색이 회화과 도예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디 도예 뿐이랴 이러한 사실은 소재에 의한 장르 구분이 무의미 할 수도 있음을 지시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특정 소재를 매개로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식 혹은 세계관념일 것이다. 작가의 세계 표현과 회화과정이,혹은 조소과정이, 혹은 도예 과정이 일치할 수 있다. 이따금씩은 이 모든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요구될 수도 있다.

 한편, 순수에 대한 개념과 관련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순수란 말 자체는 자기 이외의 어떤 외부적인 것도 포함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현대 미술의 문맥 속에서 그 말은 작가 이외의 어떤 외부적인 목적성 혹은 기능성도 포함하지 않는  자족적인 (예술)표현을 의미한다. 이 말은 예술의 자율성 개념과 연관된다. 도예의 문맥 속에서 순수란 말은 흔히 기 특유의 기능성 혹은 쓰임새를 떠나 회화 혹은 조각의 특수성에 접근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관념은 재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왜냐하면 순수란 사물의 본질에 근접한 표현 또한 지시하기 때문이다. 순수는 회화  혹은 조각을 내포하는 큰 개념인 예술의 본질에 근접한 태도 혹은 표현과 마찬가지로 기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도 역시 성취될 수 있다. 기가 내재하고 있는 기능성 혹은 효용성 대신 그것의 추상적 조형적 형상을 상기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사실은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기 고유의 기능성 혹은 효용성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렇듯이 도조는 종래 기의 복수제작 혹은 쓰임새 대신 일품성과 오리지널리티, 자족적인 구조,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표현등 예술 일반의 특수성을 취한다. 이따금씩은 기능성과 예술 표현의 중간에 위치하기도 한다. 그것은 예술 일반과 마찬가지로 개인사를, 개인의 의식 혹은 특정의미를 반영하는 서술구조를 취하거나 순전한 조형적 형상의 추출에 주목하거나 한다.

 이세훈의 작업은 단일의 형식으로 귀결되기 보다는 다양한 표현형식이 공존하고 있다. 작업은 대략 도판작업, 초현실주의 혹은 상징주의 특유의 이미지즘의 표현, 풍경조각, 추상화된 기하학적 양식의 표현, 기념비적인 형상의 표현, 소재 자체의 물성에 주목하는 태도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양식 혹은 표현이 단일의 형식을 취하거나 한작품 내에 공존하거나 한다. 일부 예를 제외한 일테면 소재의 물성에 주목하는 태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작업의 주요 모티프는 여체에 대한 관념의 표현이 되고 있다. 여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재현),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등 여체 혹은 그 관념의 변주를 펼쳐 보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특히 초현실주의 고유의 정서가 대부분의 작업을 지배하고 있다.

실제로 미술 사에서의 초현실주의가 성적 관념의 표현(에로티시즘)과 밀접한 관련을 내재함을 상기 할 때 ,작가의 여체에 대한 변주는 초현실주의의 특유의 에로틱한 정서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다.

 도판작업은 도판위에 부조를 새기거나(재현), 해체한 인체를 재구축 하거나 (입체파를 연상시키는) 도판위에 페인팅을 가하는 (회화의 직접적인 차용) 등의 형식을 취한다. 도판위에 부조를 새긴 작품은 그 크기와 재현적 형식이 마치 비석 혹은 기념비를 연상시킨다. 도판을 잘라 붙인 일련의 작업들이 여체 모티프가 애초의 재현적 묘사로부터 추상화 혹은 양식화된 표현으로 점이 되는 점진적인 추이를 가시화 하고 있다. 선 묘 혹은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양식화된 여체의 표현이 실제 모티프를 추상적 이미지로 압축한 듯한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초현실적  정서의 표현이 작가의 작업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거의 추상화된 여성의 토르소를 표현한 여인 이미지에서 얼굴이 가슴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러한 사물의 전치(데페이즈망)가 그 형상으로 하여금 에로틱한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 삼각형으로 축약된 어깨선과 그 위에 기둥처럼 서 있는 목, 여성의 가슴으로 대체된 얼굴의 둥근형상과 털을 암시하는 머리 다발로 구성된 전체 형상이 그 자체로 남근을 상기 시킨다.

여성의 토르소 이면서 동시에 남근이기도 한 양성구유(한 몸에 남녀 양성을 포함하고 있는)를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초현실주의 화가들로부터 이러한 양성 구유의 표현을 찾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마도 무의식적 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그들의 관념에 양성구유의 표현이 부합했을 것이다.

 사물의 전치는 여인의 상체가 바이올린으로 대체되고 있는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다. 거꾸로, 여인의 둔부와 하복부를 이룬 완만한 곡선이 그 자체로 바이올린의 하반부를 대체하면서 전체적으로 바이올린의 온전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렇듯이 바이올린은 여체로, 여체는 바이올린으로 점진적인 변태를 진행시키면서 서로의 내부를 향해 침투하는 상황자체가 에로틱한 정서를 유발 시킨다. 악기 자체가 여성을  , 자궁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바이올린류의 현악기의 외형이 갖는 여체의 곡선을 상기시키는 선과 구멍이 내재한 의미를 상기할 때, 이러한 상징성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결코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물의 저치를 통해 에로틱함의 정서를 상기시키는 예는 머리 부위가 꽃다발 혹은 꽃봉오리로 대체된 여성의 토르소에서도 확인된다. 여체의 사실적인 표현과 매끈한 표면 처리, 그리고 익명성의 표현이 에로틱한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 익명성의 표현이 에로틱함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여성의 얼굴을 대체한 가슴과 꽃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인의 개체성 혹은 개별적 존재를 담지 하는 얼굴과 표정을 에로틱한 기호 일반으로 (가슴과 꽃) 보편화 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 표현되어진 형상 자체를 어떤 개별적인 존재로서보다는 에로틱한 기호로 읽혀지게 한다. 실제로 꽃 봉오리가 꽃잎을 여미고 있는 모양새가 자궁을 상기시킨다.

 이렇듯이 자궁을 보다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꽃이 미치는 여타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 유약으로 표면 처리한 형상을 가마에 구워낸 다음 토치램프로 열을 가해 상화 유약을 녹여 냄으로써 매끈한 표면과는 다른 독특한 발색과 질감 효과를 얻고 있는 점이다.

 이렇듯이 사물의 전치는 무의식적 세계 표현을 추구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주요한 전략이 되고 있다. 화가들은 사물의 전치를 통해 에로틱한 정서를 증폭시키거나 에로틱한 기호와는 하등의 관련도 내재하지 않은 사물에 에로틱함을 부여하거나 한다. 초현실주의적 표현은 눈을 형상화한 메시지에도 반영된다.

 형상의 중심이 되고 있는 눈은 곧 사물의 본질, 신 , 자아를 상징한다. 눈은 자궁과 함께 세계의 중심 혹은 근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유약 처리된 눈동자의 표현이(미세하게 빛을 반사하는)사실적이다. 아마도 이러한 생생한 표현이 도예의 주요한 메리트가 될 것이다. 풍경조각은 언덕 혹은 낮은 구름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형상위에 여체를 포치한 작품에서 확인된다. 형상위에난 빨간 선이 길을 연상 시킨다. 길은 실제하는 길의 차원을 넘어 삶의 여정이라는 알레고리로 그 의미가 증폭된다. 어떤 구체적인 정경을 , 상황을,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작가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시적 서정성이 간취된다.

 이렇듯이 작가의 작업에서는 모티프의 사실적 재편에 충실한 작업군과 함께 상대적으로 추상화된 기하학적 양식의 표현 역시 만날 수 있다. 작품마다 약간씩 그 표현을 달리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각지거나 둥근 정형의 이미지화 비정형의 유기체적 이미지가 만나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추상적이라고는 하지만 이 작업 역시 여체라는 특정 모티프(실제하는 이미지)를 변주한 연장선에 있다. 여체 독립상의 표현이기 보다는  성(性)의 표현이 되고 있다. 정형의 기하학적 이미지는 여성을, 비정형의 유기체적 이미지는 남성을 상징한다. 형상 내부에 난 구멍이 자궁을 상징함은 물론이다. 핵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는 원형 이미지와 형상 역시 여체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자궁을 연상 시킨다.  양비론적 이미지(남성과 여성)가 서로를 향해 침투하는 정경을 형상화 하고 있다. 양비론적 이미지는 단순한 성적 표현을 넘어 음양(陰痒)의 원리를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성적인 원리가 음약의 원리를 배태한 씨앗이라는 일반적 관념을 상기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이 이 작업은 양비론적인 상징적의 미를 압축한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순전한 추상적 조형적 욕구의 표현일 수도 있다.

 두 개의 구조물을 결합한(구축적 관념을 반영) 추상화된 여체를 표현한 작품이 기념비적인 형상을 상기시킨다. 아마도 이러한 기념비적 인상은 형상의 직립성과 양식화된 표현에 기인 할 것이다. 가운데 난 구멍이 세계의 중심 혹은 근원으로서의 자궁을 상징한다 이외에 작가는 구체적인 모티프(일테면 여체 같은), 혹은 어떤 정경의 재현(일테면 여체 같은) 혹은 어떤 정경의 재현(일테면 풍경조각이나 양비론적 표현 같은)을 떠나 소재 자체의 물성에 주목하는 태도를 반영하기도 한다. 흙덩이를 가감없이 제시하고 있는(실제로는 도판을 붙여 만든) 3개의 정방형 형상에서 작가는 흙 자체의 물성과 표저엥 주목하고 있다. 어떤 의미내용의 표현보다는 제작과정에서 얻어지는 재료의 현상 자체를 조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