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속의 풍경들

강선학 (미술평론가)

 

그릇 속에 출렁이는 풍경,내가 처음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 받은 인상이다. 안 경숙의 이번 작품전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심플하지도, 실험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구태의연하지도 않다. 그에게서 새로움을 기대하기보다 도리어 소박한 표현 속에 실험과 전위와 의미를 찾아 나가는것이 걸맞다. 그의 소박함이 부박한 현실에서,실험과 과장으로 덧칠된 표현에서 잔잔한 읽을거리와 함께 생활에서 느껴지는 일상적 인상들의 소중함을 일러준다.

나선형으로 주둥이를 향해 올라가는 선은 기형을 만들 때 가장 자연스럽게 경험되는 것이다. 그것은 도자기 제작에 있어 전형적인 모습이다. 굽을 깍기 전이지만 굽에서부터 주둥이까지 물레를 돌리든, 쌓아올리든, 틀어올리든가 닿는 마지막 지점은 주둥이의 입술이다. 그것은 기형을 만드는데 있어 완결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유약과 가마의 소성과정이있지만 기형 자체의 성형은 주둥이에서 끝나고 완성된다. 그런데 안경숙의 경우는 이 주둥이의 완결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완결을 기형의 완료형으로보다 일상을 옮겨보아내는 시선을 두는 곳으로 삼으려 한다. 그곳에는 완결된 기형을 감상하게 되거나 물건을 담아 놓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산과 언덕과 나무와 구름과 작은 마을이 있는 풍경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기형의 경험이 아니라 그릇같은 일상의 평범한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소박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실험이나 새로운 기법이나 해체적인 이념을 읽어내기 힘들다. 그런 점이 그의 작품에서 안이함으로도 읽히지만,그가 추구하는 것이 별난 실험에 바탕을 두기보다 자연스러운 자연 순환을 제시하고자 하는 데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연을 바라보고,그것을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자기가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나타내고자 할 따름이다. 그런 의지에는 별난 실험성보다. 과격한 이념보다 일상의 소소한 경험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고 소박하다. 그 소박함이 때로 작가로서 진지함이나치열함을 보여주지는 못할지라도 그 자연스러움은 완결이나 무거움이나 엄숙함보다 스케치하듯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입장으로,그런 몸짓으로 보인다. 완결을 유보하는 대신 그릇에 닿는 많은 시선을 만들어 준다.

길을 따라 산을 오르듯,물레가 도는 방향으로 시선이 이끌려 올라 가면서 산길과 들길을 걷고, 산능선을 지나, 구름과 길과 나무와 하늘을 만난다. 그러다 그릇 속은 어느 듯 분지로 변하고,안온을 주는 작은 마을의 공간으로 바뀐다. 일상으로 가득한 풍경이 그릇 속의 물처럼 출렁인다. 그게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일견되는 것들이었다. 너무 일상적이고 소박하고 거칠다는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작품 앞에서 괜히 심각해지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심각하지 않다. 심각하지 않다고 해서 실험적이거나 진지함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릇의 주둥이를 미완으로 남겨 놓는 것으로 형체의 완결을 피하고 풍경화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투각과 스케치 기법으로 깎고, 그리는, 입체와 평면을 두루 구사한다는 것은 그릇이라는 일상적 용기라는 한계에 대한 전위적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스케치가 뛰어나다거나 투각으로서 조형성이 각별하다거나 그릇이라는 상투성을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보다 여성이 만나는 가장 손쉬운 도구인 그릇을 통해서, 그리고그 위에 평범한 풍경을 스케치하고 투각하는 것으로,세계를 이해하고 일상이 세계임을 느끼려하는 점이 도리어 돋보인다. 그릇이 완성품으로 취급된 것은 오랜 옛날부터이지만 그릇에다 스케치풍의 풍경을 그려 넣고효과를 위해 투각하거나 선조를 시도하는 소박한 기법이 도리어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일상을제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실험성이나 전위적 사고니 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관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부담을 떨어버린 편안함이 그의 세계이다.

 

설레이는 마음, 20*20*37 cm

작은 마을 1,2, 38*20*40, 46*27*37

구름과 함께, 45*45*15

마음속의 풍경, 18*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