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은 손

「말하는 손」은 말이 없다. 잔잔한 이야기는커녕 소근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데모와 같은 행위라 하는 편이 낫다. 하나의 목적을 향한 행진 말이다. 즉 말하는 손은 말없는 외침이다. 일률적인 모습을 한 이 많은 손에는 하나의 생각만 존재한다. 자유, 빠져나오기, 짜여진 틀 부수기 등이다. 그러나 하나의 외침을 대변할 정도로 형상이 육중하거나 단단한 건 아니다. 모두가 흰 장갑을 낀 채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전부이다.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기에는 어쩐지 미안하기 때문일까?

손은 모두 흰색이다. 흰색은 물질이나 실체로서 모든 색깔이 날아가 버린 세계의 상징과 같다. 이 세계는 우리들로부터 너무 높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아무런 음향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흰색은 죽은 것이 아닌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 흰색은 갑자기 그 의미가 이해될 수 있는 침묵처럼 음향을 가지고 있다. 칸딘스키의 흰색에 관한 견해이다. 물론 김성연의 흰색과는 별개의 것이다. 김성연은 표면에 문자를 전사해 넣는 방법으로 언어를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그는 흰색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 색채와 언어와의 관계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덕분에 모든 언어는 모노 톤으로 흐른다. 그래서 어떤 사연이든 절절하지도 애틋하지도 않다. 극적인 효과가 철저히 배제된 채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감정이 삭제된 언어는 자신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다.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성격은 늘 억압되어 있는 자아를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선은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사회적 경제적 여러 요구들로부터, 또 여러 제도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세계는 인간의 기본적인 충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교양 있고 문화적인 자태를 갖추기 위하여 자신의 본능을 잘 누를 수 있는 기술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것이 외부세계와 자신을 잘 경합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이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이성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가를 호시탐탐 엿본다. 기회만 있다면 모든 규제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자유란 없다. 인간은 적이나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일하고 생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협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심리적 측면에서도 자유란 그렇게 용이한 것이 아니다 주변세계를 의식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란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니까. 김성연이 무채색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일거라는 생각이다.

손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특히 김성연에게 손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거나 압축된 의미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친밀한 심부름꾼으로써의 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연성을 주장하는 개성은 가질 수 없다. 손의 모습이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인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손은 말하고 싶어한다. 이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과 인간들로부터 분리된 실체로서 자기자신을 알아내기 위한, 자신을 주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김성연은 그러한 손을 통하여 억압된 자신을 조금씩 위안하고 있다. 그의 손은 말하는 손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손이다.

김 숙 경/ 미술평론가



Hand 250×150×250㎜

Hand 350×70×350㎜

Hand 150×150×300㎜

Hand 240×170×1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