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영의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이란 용어의 사전적 정의는 "전하기, 전달, 연락, 사귐, 정보, 소식, 메시지, 교통(기관), 통신(수단)"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어휘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전달할 내용이 있고, 그것을 전해주고 받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둘 이상의 개체 사이에서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행위의 주체가 특정 정보에 대한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시간과 상황의 제약속에서 화석화되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커뮤니케이션' 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대화의 단절이나 정보의 단절이란 것은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전통과 단절된 현대의 문화라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을 것이다. 가정에서의 대화, 직장에서의 대화 등은 사회환경의 기초를 형성하며 한 민족의 문화를 이루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곽태영의 "커뮤니케이션" 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곽태영이 작업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주제는 앞서 말한 '커뮤니케이션' 이다. 그는 흙 이라는 소재를 단지 대화를 위한 개인적인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흙을 통해 우리의 전통과 현대문명, 문화와 생활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우리의 정신에 대한 사회적 교감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형식은 옛것의 답습이 아니라 현대적이며, 현대문명을 이야기하지만 난해한 표현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의 작업은 네 가지의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종래와 같은 작업유형으로서 벽면을 사용하는 사각액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네 변을 따라가며 덧붙인 흙판 조각들은 더욱 세련된 조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직사각형의 경직되고 단조로운 느낌을 보완하는 동시에 작품의 가운데에 압인된 옛 목판의 글자와 컴퓨터나 트란지스터 부품의 형태에서 보여지는 선적인 요소와 대비를 이루어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호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는, 사각형 혹은 원형의 주위를 덧붙인 판에 종래와는 다른 변화를 시도한 작업이다. 판의 면적을 확장하면서 가운데 판과 높이의 차이를 주어 평면적인 형태에서 탈피하여 수반과 같은 내부공간을 갖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옹기의 넙전에서 볼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결과적으로는 확장된 공간을 포용하며 단순한 형태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셋째는, 앞서의 조형언어를 적극적으로 실생활에 끌어들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풍만한 볼륨을 지닌 화가의 기능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수년 전부터 꽃과 화기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온 작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서 화기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해석을 볼 수 있다. 화기의 경우 기능성을 통한 꽃과의 결과적 조형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절제된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다.

넷째는, 작가의 내면적 의지가 강하게 투영된 오브제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한결같이 단순한 외형에 함축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민족전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읽을 수가 있다. 전통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며, 이러한 전통의 계승은 과거와 현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물과 같은 것으로 구체적인 형상은 없으나 본질은 있고, 손에 잡을 수는 없으나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전통이 흐르는 물과 같은 속성을 지니면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계속성이란 것을 이미 간파한 듯하다. 과거와 달리 그의 오브제에 등장하는 물고기의 형상은 물과 같은, 전통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일하고 있는 충주의 환경에서 물고기는 자신과 자연을 이어주는 메신저 일수도 있는 것이다. 다듬이돌과 방망이, 그리고 가옥형태의 절제된 외형은 소리와 시간 그리고 시대성을 일깨우는 메시지의 산실인 것이다. 그는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우리의 소리를 들려주며, 그 속에 깃든 우리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곽태영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시각적인 요소가 있다. 옛 목판과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컴퓨터의 부품들을 흙 위에 눌러 생기는 흔적, 그 요소들을 연결하기 위하여 능숙한 손놀림에 의해 그려지는 직선들, 칼과 손을 이용해 만들어낸 작은 흙판들의 감각적인 배치등이 그것이다. 그의 이러한 트레이드 마크는 오랜동안 흙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얻어진 결과인 것이다. 그는 오가면서 주변의 민속품점을 들러 지난 시간을 꺼내오는 취미가 가득하다. 그는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을 우리의 전통과 연결되어지는 현대생활 속에서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곽태영은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다.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로서, 대학에서는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교수로서, 주위의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다정한 벗으로서 그는 언제나 시간을 내어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도예가로서, 흙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고 사랑하며, 무언의 대화를 통해 흙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는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 방법의 일환으로 대화를 통한 메시지의 전달을 택했으며, 이를 통해 서로간의 교감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결국 곽태영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신과 흙과의 교감이며, 과거와 현재의 연결 매체이며, 전통과 현대문명의 만남의 장이며, 사람과 사람의 대화의 창구인 것이다.

1999년 6월 박 경 순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교수)



向-魚Ⅱ

Communication 9903

Y씨를 위한 화기

向-魚Ⅰ

숨쉬는 공간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