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적 자유로움과 그것이 만드는 따뜻함
-김혁수 도예전에 부처-

학창시절 '고무한지'만한 도자기를 본적이 있다. 욕조로 써도 될 만큼 큰 것이여서 '도대체 저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굼했다. 그래서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묻는 것이 결례이거나 묻는 사람의 격을 낮추는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1. 물레를 이용하여 무엇인가 만든다는 것은-간단하게 말해서-회전 원심력을 만들고 그것을 적절하게 제한하여 형태를 축조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 형태는 회전 원심력이 제한되는 곳에서 원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원은 회전원심력의 제한에 따라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 공간으로 원을 중첩시켜 확장한다. 제작자는 평면의 원이 의도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환언(換言)하면, 물레작업의 본령은 공간으로 확장하는 원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것이다. 원은 물레로 하는 모든 작업의 특장(特長)이자 특단(特短)이다. 원의 공간적 확정이라는 것이 물레로 무엇을 만드는 행위와 본래적 요소라 할 때, 부가되는 조형적인 요소가 확장된 것이 원의 표면처리 문제이다. 원이라는 물레의 본래적 요소의 제한성 때문에 표면처리의 문제가 기(器)의 질료적 특성과 작가의 '손'과 관련한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물레작업은-다종 다양의 변종들을 포함하여-원의 확장이라는 형태적요소와 그 확장된 표면처리라는 질료적/색채적 요소가 양립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다.

2. 김혁수는 아직까지 여덟 번의 개인전을 통해서 물레를 이용하지 않는, 이기(利器)와 관련되지 않은 작업들을 주로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조형'작업이라고 말하는 것을 전시를 통해서 제시하곤 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이 김혁수류의상형화된 특성을 제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일정한 조형적 형태라든가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고 -늘- 자유로운 혹은 새로운 조형적 표현 가능성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속에서 '여행의 자유'를 제작행위의 근간으로 삼고있는 듯 싶다. 예술이 가지고 잇는 제작행위의 자유로움이라는 가치를 '나의 것'이라는 사회적-변별적 가치보다 우선하는 행위는-자본주의하의 작가에게는-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케 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일견(一見) 치명적일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자신의 작업태도로 채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자유로움에 대한 태도가 그가 가진 '예술이 예술다울 수 있는' 본령임에 -역시-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 김혁수는 도예의 본래적인 요소는 그릇-확장된 원의 진료로 무엇인가 담을 수 있게 만든 것 -들을 보여준다. 그가 이번에 보여주고 있는 기(器)들은 자유로운 예술의지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 안에서 자기 자신을 특정한 하나의 견해나 태도로 한정하지 않은 것이 표현에 대한 가능성 혹은 영역을 확장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기(器)와 그렇지 않은 것의 관계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상정한다거나 무리짓는 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나 정체에 관한 문제를 넘어서 '하고 싶은'것을 '제대로'하려는 의지의 소산이 이번에 김혁수가 보여주는 그릇들에 담겨져 있는 작가적 의지라 할 수 있다. 그는 그릇에 대해서 '옳게'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하는데, 아마도 그 '옳게'라고 작가가 여기는 것의 일단(一端)을 보여주는 듯 싶다.

3. 이번에 김혁수가 보여주는 기(器)는 3차원으로 중첩되는 원이라는 형태적 요소와 그 표면처리라는 문제에서, 두루 만족할 수 있는 특징이 '따뜻함'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형태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가 중첩해 만든 원의 형태는 넉넉함이라고 말할 만한 완만함과 약간의 긴장으로 조성되어있다. 굽에서 볼록한 배로 가는 곡선은 형태를 확장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 각도를 둔각(鈍角)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그 둔각은 주둥이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각도를 유지하지만 주둥이에 이르면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비례의 적절한 파격, 예를 들면 주둥이를 아주 조금 길게 혹은 짧게 만든다는 식으로 넉넉함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파격이 조금 심하거나 마무리가 부족할 경우 주둥이에 약간의 장식적인 요소를 만들어 적절한 따뜻함으로 형태를 제한한다. 물레작업의 또 하나의 요소인 표면처리에 있어서는, 형태라는 요소에서보다 '따뜻함'이라는 김혁수의 특질적 요소를 더욱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사용하는 검정유약이나 녹색유약은 견고하고 차가운 금속성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채도가 한 단계 낮아져서 흙이라는 질료가 가지고 있는 포용가능성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그릇들의 볼록한 배에는 유약이 잠식할 개연성이 있는 '흙맛'을 내보리려는 의도와 자연스러운 리듬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태토(胎土)가 드러나는 빗살과 화장토의 맺힘이 만들어져있다. 이 빗살들은 질료 본원의 요소에 대한 드러냄과 작가의 '손'이라는 측면을 두루 만족시키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게다가 그의 하얀 그릇들도 태토의 색과 화장토 그리고 표면에 처리한 무채색의 유약들이 적적하게 드러나 흙이라는 질료와 화장토의 흙다움, 그리고 유리질의 유약이 작가가 만든 표면의 자유로운 필선들과 함께 '넉넉하고 따뜻하다'라고 여겨지게 한다. 그의 그릇들을 보고 돌아오면서, 그가 제공한 자료를 통해서 그가 전에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의 자료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따뜻함이라는 요소가 그가 가진 작가적 특질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족(蛇足): 나는, 그의 집에서 학창시절 보았던 것만큼 커다란 고무함지만한 도자기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며, 이번에는 만들었는지 '만든사람'의 말을 들었다.


2000년 5월 김영민 (예술학)



24×24×47cm 청자토/흑유 1260℃ 산화소성/가스가마

35×35×29cm 백자토/흑유 1260℃ 산화소성/석유가마

24×24×45cm 청자토/지당유 1265℃ 산화소성/석유가마

35×35×36cm 백자토/녹유 1260℃ 산화소성/가스가마

27×27×45cm 청자토/화장토 1260℃ 산화소성/석유가마

45×45×27cm 백자토/녹유 1260℃ 산화소성/가스가마

26×26×36cm 백자토/흑유 1260℃ 산화소성/가스가마

33×33×41cm 백자토/흑유 1260℃ 산화소성/가스가마

28×28×43cm 청자토/청코발트유 1265℃ 산화소성/가스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