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이 세상일은 다 알아 버렸다. 천상으로의 길은 닫혀 있다. 눈부시게 보고 구름 위에 자기를 닮은 자가 있다고 공상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 대지 위에 꿋꿋이 서서 자기 몸 둘레를 천천히 둘러보는 게 좋다. 이 세계는 유능한 인간에게는 숨겨져 있지 않다. 영원의 경지에 방황할 필요가 있을까? 확고히 인식한 것은 자기 것이 된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의 每日을 보내면 된다. 유령이 나와도 너의 길을 가라.....? '

현실에서 인간이 표면적으로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에 관한 개체적인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개체와 사회 사이의 타협의 소산으로 해당자의 개성과 관련에서 자체적인 현실과 같은 것이며 그것의 완성에 홀딱 반해버리기 마련이다. 가령 우리가 페르소나를 분석하는 경우 가면을 벗기고 보면 개성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집합적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서 페르소나는 집합적인 마음의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것이다. 결국 페르소나는 '현실적인 것' 은 아니다. 페르소나는 겉보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우리는 페르소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날마다 꿈을 꾸기 때문인 것이다. 꿈의 세계에서 우리는 개인 속에 두 개의 '주체' 즉 두 개의 인격의 존재를 감지하게 된다.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의 두 개의 인격의 존재에 대한 소박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 또 다른 존재-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탐닉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그것이 페르소나가 갖는 매력이고 곧 꿈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의 작업에서는 가면(a Mask)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어떤 개인으로부터 독립된, 표정과 이름이라는 언표가 제거된 익명적인 존재로서의 개체이다. 이 익명화된 개체를 한정된 공간-개체와 사회사이에 놓여진 공간-에 던져 놓고 무수한 物들-키보드, 언어, 쿠키, 반복되는 숫자, 나무토막, 물감 등-로 에워싼다. 이러한 物들은 두 개의 인격의 존재 중 어떤 한 편에 놓여진 꿈들의 파편이며 방향이 없는 욕망의 현현에 관한 표현이다. 나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가면의 이면에 놓여 있는 진면의 생생한 생명의 환기를 꾀하고 있다. 페르소나에 힘입어 활력을 갖는 듯한 환상의 추구로부터 상처받은 진면과의 양분된 모습에서 일체의 심리적 조건을 치유하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PERSONA
생태계의 넓고 심연한 세상을 들여다보노라면 참으로 경이로우리 만치 거짓된 진실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거짓된 진실'이란 말이 성립 가능한 관계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일종의 진실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가령 거짓된 진실의 경우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성을 잘 알고 있다. 피라미드 구조의 사슬모양에서 정점에 위치한 포식자들은 그들의 강성 때문에 행동이 항상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기만 하는가 생각해 보라. 사냥감에게로 접근하는 맹수의 행동은 야성적이기 보다 비굴에 가까울 정도이다. 살금살금 기며 짐짓 사냥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행동을 취하다 표변하여 달려드는 사냥 법이 대개의 공식이 아니었던가.

이런 포식자의 사냥 술에선 무작정 송곳니를 드러내고 날카로운 발톱만 휘두르는 것으론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 어미 사자가 아들 사자에게 충고하기를 가면을 쓰고 진 면을 가리운 채 사냥감에게 우선 접근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은 거의 필연에 가깝다. 안타까운 일은 사냥감 역을 맡은 피라미드의 하위에 위치한 종들은 포식자의 가면을 늘 진 면으로 파악하여 절대로 그들의 종들을 멸종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아이러니이다. 가면은 가면을 쓰는 자에겐 은혜를 그를 바라보는 자에겐 알 수 없는 어리석음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우린 동물의 세계에서 표정을 꾸미며 가면을 성취하는 과정을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단지 훌륭한 가면효과 정도일 뿐이다. 인감세계의 가면은 더욱 그 기능과 제조기법, 양상, 형태적 특이성 등이 다양하다. 낯빛을 꾸미는 정도의 가면은 고등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선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인간의 가면은 그것이 소망과, 소영(所影), 기도(企圖) 혹은 일어날 일에 대한 기원까지도 수용한다.

-작가노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