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지의 내부 2001 유리창의 흙 설치 9.5×17m
2. 무제 2001 흑도오브제 131개 설치. 설치면적 5×5m
3-1 무제. 2000. 점토. 22×32×32cm
3-2 토생금0103. 2001. 점토, 철봉. 79×20×20cm
3-3 토생금9710. 1997. 점토, 철판. 11.5×48×48cm
로댕갤러리에서는 올해의 첫 전시로 <원경환: 흙의 인상>전을 개최한다. 흙이 지닌 물성을 탐구하는 중견작가 원경환은 도예에서 출발하였지만 일반적인 도예 개념에 따른 용기 제작보다는 순수한 조형세계를 탐구하는데 작업의 목표를 두고 있다.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현대적 공간인 로댕갤러리에서 펼쳐지는 흙 작업(Clay Work)은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기회이다. 한편에는 공간을 압도하는 기념비적인 설치작품이 생흙의 질감과 결합하여 유희와 관조의 공간을 만들고, 다른 편에서는 먹빛을 띤 흑도오브제가 쇠나 나무와 어루어져 상생의 의미를 찾는다. 이 전시를 통해 현대문명에 가리워졌지만 인간과 가장 가까운 자연인 흙에 대해 사유하고 흙이 지닌 미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흙으로부터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과 함께 살다가 다시 흙으로 되돌아간다. “흙과의 접촉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원시적인 창조행위이며 원초적 즐거움” 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흙은 선사시대부터 일상용품과 건축물의 재료로 사용되어 오면서 인간 창작 행위의 밑바탕이자 창조의 원동력으로 편안함과 즐거움을 제공해왔다. 원경환의 작업에서 흙은 창작의 근원이자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점토의 물성에 익숙해질수록 그는 그것을 빚고 가공하여 쓸모 있는 무엇을 만들기보다는 흙의 본래적인 느낌과 표정을 찾아 제시하고자 한다. 달리 말해 인위적인 형태나 기능을 버리고 흙의 물질적이고 질료적인 형태와 질감을 통해 원시에 가까우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흙도소성과 다섯 가지
재료 작가는 전래의 토기나 기와를 굽는 흑도소성법을 응용하고 있다. 추상적인 형태의 조형작품은 가마속에서 불과 그을음에 의해 마치 본래부터 타고난 것처럼 그윽한 검은 빛깔을 띠게 된다. 때때로 그 위에 철이나 나무 등을 결합하여 작품을 만드는데 이는 도자예술의 전통으로부터 변용을 가하여 또 다른 조형예술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의 작업방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점토에 철, 나무 등을 결합한 작품들에는 <토생금>, <목극토> 등르로 제목을 붙여 그의 사고가 동양의 철학적 원리인 오행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즉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긴요한 물과 불에서 시작해서 생활 자재인 나무와 쇠붙이를 거쳐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흙에 이르면서 상생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오행의 원리이다. 그의 작업 점토에 물을 이겨 빚어 낸 형상을 불로 구운 뒤에 나무나 쇠붙이를 결합하고 있기에 오행의 다섯가지 물질적 재료와 원리를 현대미술의 조형요소로 담아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흙의 인상 - 유희와 관조의 공간
점토 덩어리를 얇게 잘라내어 유리창이나 기하학적인 구조물 위에 바르는 흙 작업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즐겁고도 무심한 놀이에 가깝다. 현장 흙 작업의 주된 이미지는 흙이 마르면서 생기는 균열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갈라지는 흙의 표면은 마치 거북의 등껍질이나 가뭄에 드러난 논바닥 같기도 하다. 또 유리창에 바른 흙 표면의 틈새로 스며드는 빛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어둑한 실내를 아늑하면서도 미묘한 관조와 명상의 공간으로 이끌고 있다. 이 작업은 관객에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흙의 인상을 각인시킨다. 원경환은 흘과 불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던 도예에 빛과 공간까지 결합하여 독자적인 흙의 인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손길에 의해 로댕 갤러리 전시장은 불규칙한 평면의 질감과 단순하지만 기념비적인 구조물들이 어우러져 유희와 관조의 공간으로 재해석된다. 1990년대 이후의 근작들과 현장 설치 작업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번 개인전은 1980년대 초반 이리본 유학시절부터 시작된 작가의 탈장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흙의 인상이라는 작가의 주제는 한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흙을 통해서 미래를 보는 작가의 노력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다시 평가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