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합토, 동유 1280℃ 81×42×7㎝ 2000
7 조합토, 동유 1280℃ 69×34×30㎝ 2000
8 조합토, 동유, 철유 1260℃ 85×57×40㎝ 2000
9 조합토, 철유, 백유 1260℃ 70×43×31㎝ 2000
10 조합토, 동유 1280℃ 76×31×11㎝ 2000

모태(母胎)의 생명공간(生命空間) 혹은 회고적 정서의 탐색(探索)
최정윤의 두 번째 도예전에 관한 사색
글/ 장동광(일민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최정윤은 도예의 방법을 통해 전통의 자취나 회고적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것은 빛 바랜 청동(靑銅)의 빛깔이나 혹은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미적 형태에 관한 모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삼족호(三足壺)의 형태적 변용을 시도하였다. 이 삼족호의 변형을 통해 기형작업은 물레성형의 기법의 한계인 좌우대칭을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굽을 세 개의 다리로 처리하면서 새로운 변용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표면처리를 위한 유약(釉藥)의 많은 실험을 통해 청동기 표면과 같은 깊이 있는 색감을 얻고자 시도하였던 것이 첫 개인전의 주된 특징이었다. 사실 ‘삼(三)‘이란 수는 인류 공통적으로 인식되어 온 ‘완전함‘ ‘조화와 균형‘ ‘신성함‘의 상징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구려 때에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조(三足鳥)는 신성한 새로 창조를 통한 인간의 희원(希願)이었던 것이며, 태양숭배의 대리적 형태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최정윤은 이처럼 본격적으로 도예에 입문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제기(祭器)나 기형의 의미와 상징성, 그리고 형태적 특성을 탐구하면서 이를 도예의 기법으로 새롭게 조형하는 데에 몰입해 왔던 것이다. 그가 대학원 시절부터 치열하게 탐구해 온 ‘삼족기의 형태 변용‘이라는 과제는 바로 그의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도예작품의 근원(根源)이자 새로운 탐색의 중요한 동인이었던 셈이다. 나아가 이번 개인전의 작품들은 이러한 착상과 작업의 결과물인 동시에 그가 생각하는 전통적 기물이 가진 미의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적 시도를 보여주는 구체적 실례인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하는 최정윤의 도예작품들을 통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은 최정윤이 취하고 있는 도예,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다른 도예가와 조금 다른 점은 ‘절충적‘이라는 사실이다. 최정윤에게 있어서 도예는 하나의 방법론이며, 그가 재현해 낸 형태는 하나의 조형적 대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그의 도예작품의 제작태도를 볼 때 도예작품이 반드시 기능적, 실용적 기능을 담보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와 있음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어러한 자유로운 조형정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태속에는 부분적으로나마 퇴화된 기형의 존재양식들이 남아있다. 항아리의 형태, 주기(酒器)의 입구와 같은 요소들이 이러한 점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점에서 최정윤은 도예의 공예적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혹은 그 작업의 출발점을 공예적 형태에 근거하면서 이를 변용한 조각적 형태, 그 심미적 기능에 천착하는 데에 골몰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최정윤은 조형적 재료나 매재가 가진 관심을 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소한 그가 공예적, 역사적 기형에서 그 근간을 두고 어떻게 새롭게 승화시킬 것인가에 주된 관심을 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소한 그가 공예적, 역사적 기형에서 그 근간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관심사를 전복시키는 근본적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최정윤의 이러한 실험과 모색의 과정이 공예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지 아니면 확장된 개념으로서 도예의 조각적 형식미를 지향하게 될 지 지금으로서는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도예가가 회피할 수 없는 흙(자연)과의 접촉과 이의 조형적 본능을 단지 공예적/실용적 기능에 의해 ‘닫힌 조형체‘로 조율해야만 하는 가는 여전히 공예의 예술적 지평과 관련하여 우리 모두가 숙고(熟考)해야 할 점으로 남는다.
다음으로 최정윤의 도예작품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회고적 혹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유추하게 만드는 기제인 ‘유약의 발색효과와 질적표현‘이다. 그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도 그러했지만 여러 번 반복적인 침윤(浸潤)에서 배어나오는 유약의 발색효과에서 보듯이 부식된 듯한 청동 혹은 갈색조의 빛깔이 특징적이다. 그가 즐겨쓰는 ‘녹색‘은 깊은 심해(深海)의 침묵과 오랜 세월의 퇴적을 말하여 주는 듯하다. 삼족기의 변용적 표현에서도 잘 살펴볼 수 있듯이 철기의 질감이나 부식된 듯한 빛깔은 마치 발굴된 유물(遺物)의 표정처럼 우리의 시선을 자극한다. 어찌보면 발굴된 유물의 색감을 재현한 듯 하지만 실상 그가 유약 발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도예의 방법을 통해 체현(體現)할 수 있는 회고적 시간의 문제인 듯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기형의 변형된 형태나 흙의 소지(素地)의 조합을 통한 마티에르의 표현을 통해 지금 여기서, 과거의 상(像)을 유추하게 한다는 점이다. ‘현존(現存)의 지각체험‘이 그의 도예작품에서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는 또한 가마의 불속에서 유약이 녹아 내리는 흐름의 잔흔(殘痕)들, 즉 불에 의한 자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이것은 그가 기형의 제작이라는 인위성과 흙과 유약이 불과 상응(相應)하면서 생성되는 자연성을 긴밀히 통합시키고 있는 점인 것이다. 이 통합을 통해 그는 현존의 시간성과 과거의 회고하게 하는 역사의 반추(反芻)적 상황을 동일한 지평선에 놓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라는 시간의 변별성을 자신의 도예작품을 통해 순환의 관계에서 보게 하거나 공시점(共時點)의 상황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최정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형의 방식이 수평과 수직구도를 함께 공존시키거나 독립적 형태로서 자립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모태적 생명공간을 연상시키는 팽창하는 듯한 볼륨감과 이와 대비되는 긴장된 직선으로 전체형태를 조율함으로써 극도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대립적 관계 즉 여성적 풍만함과 남성적 곧은 직선을 하나의 형태 안에 공존시키는 방식으로, 음양(陰陽)을 통합시켜 하나의 우주적 에너지로 바라 본 동양사상과 연관된다. 일원적 통합의 관계, 음양의 조화, 대립적 형태를 공존시키는 방식은 추상화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복희여와도‘의 현대적 조형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따라서 최정윤에 있어서 곡선적 풍만함은 수평적 구도와 관련되고 있으며, 직선적 구도로 상승하는 기형의 데포름은 수직적 구도로 처리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관계성은 다시 대지와 하늘, 모성(母性)과 부성(父性), 평화에의 염원과 상승적 의지와 같은 어휘들을 떠올리게 한다. 필자는 최정윤의 조형적 사고 속에는 이러한 두가지 관계성의 통합을 통해 우주적 에너지가 하나의 생명공간으로 승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파악되며, 우리의 심상(心象)을 향해 공명(共鳴)하고자 하는 의지가 깊이 내포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정윤의 도예작품은 여성적 모태공간과 같은 풍만함을 직선적 긴장감으로 조율함으로써 어떤 알 수 없는 생명의 에너지, 그 신비스러운 생성(生成)의 호흡을 우리에게 전해준다고 하겠다. 최정윤의 도예작품은 밖으로 열린 공간과 내부적 공간이 상호 교류하고 공명(共鳴)을 갈구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롭게 발아(發芽)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넌지시 상기시켜 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최정윤은 열정과 실험정신을 가지고 도예작업에 몰입하고 있는 젊은 도예가 중에 한 사람이다. 그가 삼족기(三足器)의 변용작업을 거쳐 생명의 모태공간을 형상화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궤적은 그의 발전적 미래를 짐작하게 하는 출발점의 선상에 있다. 또한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주로 기형의 데포름을 통한 새로운 조각적 형상성에 관심을 피력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활용기로서의 도예작업 또한 병행하고 있다. 그의 생활용기로서의 도자기 역시 한국적 감성과 자연스러운 유약의 발색이 그의 작업적 지향점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자연스러운 선, 황갈색의 회고적 빛깔, 전통적 제기(祭器)양식의 현대적 변형 등 그의 생활도자기 역시 한국적 미감이 풍부하게 살아 있다. 이 흙과 유약이 상호조응하여 회고적 정서를 자아내는 접시의 바탕에는 그가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그린 듯한 자연스런 그림이나 흙의 터치가 회화적 화면을 연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장식성이나 작위성과 같은 의미들에서 멀리 벗어난 그의 생활도자기들은 이러한 지점에서 그야말로 ‘실용(實用)과 미(美)‘가 하나로 통합된 예술적 관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도예가 삶과 문화의 반영으로서 그 조형적 지평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에 기꺼이 동의한다면, 그의 현재 작업을 도예의 탈장르화나 도조(陶彫)적 경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내재해 있다. 그것은 전통의 현대적 해석 혹은 도예의 방법론을 현대미술의 조형적 개념과 연관지어 새로운 조형방식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건, 작품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내리든 그는 흙과 유약, 그리고 불과 상생적(相生的)관계를 탐구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미적 질서와 전통에 기반한 새로운 형식과 조형체로서의 현현(顯顯)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