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Container Mixed-Media. Stoneware. 1240℃ 1200×2200
4 Container A Glass Melting furnace Frit Glaze. 1100℃
5 Plate Mixed-media. Stoneware. 1240℃ Engobe. 600×1400
8 1996. Glass Gallery "Retrospect"
9 2000. Untitled, Plate, A Glass Melting furnace
10 1997. Mixed-Media, sound

-기능성과의 함수관계
항아리는 그것이 예술일수도 있고 공예일 수도 있고, 조각이 될
수도 회화가 될 수도 있으며, 남성적인 것도 그리고 여성적인 것도 될 수 있다고 평론가 존페로가 말한 바 있다. 항아리로 대표되는 도예의 세계는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의 도예는 그것이 과거와는 다른 자율성과 지위를 획득하였음을 암시하는 지적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본격적인 공예비평에 참가했던 페로에게 공예는 더 이상 예술계의 ‘2등 시민‘이거나 B급 예술이 아니었다. 페로는 공예와 미술간의 차이나 구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진정한 예술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장르는 순수미술이 아닌 공예 영역이므로 이제 공예의 지위를 당대의 ‘대안예술‘이라고까지 추켜세웠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주의적 가치관과 복고적인 예술관이 유행하였던 시절을 배경으로 전개된 페로의 주장이지만 결론에 이르러 그는 공예만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언급한다. 즉 진정한 공예의 모습은 심미성과 기능주의를 겸비하고 있는 공예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항아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것으로든 평가받을 수 있지만 결국 기능성을 겸하고 있을 때 다른 예술과도 차별화된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이러한 결말은 오늘날의 공예가들을 다시 혼란스럽게 만든다. 동시대의 대표적 비평가가 선구자인 버나드 리치의 그릇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릇의 모양을 흉내낸 오브제같은 공예를 언급하는 듯도 하며, 대량생산품으로서의 공예를 지지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결국 공예와 미술의 차이는 없어졌다고 말하는 그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실용성은 공예를 공예답게 만들고 가치를 부여하게 만드는 기준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현대 도예가들은 그릇의 모양에서 벗어나 실용성을 거부하며 개성있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데서 현대도예의 돌파구를 찾았다. 추상표현주의 도자의 도화선이 된 피터 불코스가 선배세대인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의 동양적이며 실용적인 도예의 규범을 깨트리고 새로운 규범을 세우기 위해 갖가지 모험을 벌인 것이나 현대미술의 흐름을 쫓아가 파르게 달렸던 많은 후대도예가들의 작업은 결국 실용성과 자신과의 간격이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를 통해 작품이 미술과 접근하고 있는가를 가늠해 왔다.

-상징화된 용기

그렇다고 실용성이외의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될 조한기의 항아리는 실제로 쓰여질 수 있는 기물을 모티브로 제작되긴 했지만 기념비적인 스케일로 상징화된 상황을 모여준다. 특히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항아리인 ‘장군‘이 도열해 있는 전시장은 마치 진시황의 저승군대, 토용들의 위용을 보는 듯하다. 장군은 원래 술이나 물을 담던 분청으로 조선시대 초부터 제작되었다가 점차 옹기나 나무로 만들어지고 크기도 커지면서 용도도 거름을 담아 옮기는 농기구로 변해갔다. 이러한 장군의 폭넓은 쓰임새는 근대화 이전 한국의 농경 문화를 상기시킨다. 분뇨를 담은 장군을 지게에 둘러메고 밭을 향하던 농부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옛날 농가의 풍경이었다. 배설물을 생장의 거름으로 쓰던 순환의 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군의 기억은 곧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성일 것이다. 현대공예의 생성과정을 분석하면서 비평가 폴 그린홀은 장식성, 토속성, 노동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지적한 바 있다. 그의 세가지 요소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초까지 그 특성을 인정받게 되면서 현대공예의 개념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설명 중 조한기의 작품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공예의 버나큘러적 속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린홀에 의하면 버나큘러란 “공동체의 문화적 생산 즉 집단적으로 만들어지고 이야기되고 형성된 물건이다. 이는 문화와 같은 성격을 갖는데, 비개인적이며 사회구성원 그룹에 의한, 외부의 어떠한 영향에도 오염되지 않은 집단적인 생산품을 말한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전개는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생활문화가 기반을 잃고 획일화된 공장제품들이 주변을 차지하게 만든다. 버나큘러는 이런 상황에서 독특한 가치를 발휘하는데, 한 문화의 전통과 정체성을 가늠하게 만드는 기준과 토대가 된다. 조한기가 제시하는 밑그림도 이것에 기반한다. 본래부터 추상적인 형태인 그릇에다 어떤 상징성을 담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상상력을 요구하지만 조한기의 ‘장군‘이라면 독특한 버나큘러에 기반하기 때문에 우리들 누구라도 쉽게 그 용도를 알아본다. 그런데 그러한 장군을 전시장에서 만난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마치 뒤샹의 변기가 스캔들을 불러일으키며 끝내 앙데팡당전에서 전시가 취소되었듯이 그의 ‘장군‘도 일종의 거부감을 전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관습화된 버나큘러에 새로운 개성을 이입시키는 것이다. 신체 사이즈를 넘어서는 거대한 사이즈에 수직으로 새워 둔 장군의 그의 말처럼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도 하고 악기처럼 통념을 위배시키는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무한히 펼쳐진다. 그의 작품 중에는 유리를 녹여 담는 용광로를 통째로 소송한 것이 있다. 작가가 어느 날 방문하게 된 한 유리도가니 공장에서 발견한 충격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며 너무나 수월하게 빚어 올리던 3백Kg짜리 유리 도가니, 초벌도 안된 그것을 밧줄에 묶어 끌고 다니며, 3백Kg짜리 도가니를 벽돌 쌓듯 포개 올려 소성하는 모습 등은 흙의 전문가로 생각한 자신에게는 ‘엽기적‘일 만큼 충격적인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도가니들을 몇 개 사다가 싸구려같은 원색 유약을 처하여 소성해냈다. 기성품에다 다시 작가의 흔적을 올리는 것은 일종의 앗상블라쥬이지만 그것은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의 교환이자 도자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일종의 버나큘러의 극대화이다. 조한기는 작품과의 대화 몰입한다. 그것은 흙과 불의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작가의 진지한 작업태도에서 비롯된다. 힘들게 만든 그릇이 냉파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된 상황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오히려 냉파나 파손되는 낭패를 당하고도 그러한 고통이 오히려 전환의 기회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연, 혹은 사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그는 창조자로서의 작가가 누릴 권능을 양보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이 만든 작품과 교감을 통해 작가의 영역을 넘어선 또 다른 실체로서 미의 정형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용기들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워놓은 컨테이너가 된다.

안 인 기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