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0*32*56
5. 25*40*17
6. 30*45*20
7. 26*30*37

자화상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노후여. 임영조의 시 <억새>에서 흙을 만진 지 이제 10년이 되어TEk. 그사이 많은 서성거린 시간을 제외한다면 나는 이제 갓 걸음마를 배운 거다. 젖은 상태라면 어떤 형상도 빚어낼 수 있다는 흙의 마력 때문에 이것저것 무턱대고 만들어 갖다 붙였따.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동안 세상의 껍데기만 훑어내고 있었던 거다. 모든 것이 내 몸을 통하여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동안 자꾸 남에게 보이는 데 집착했었다. 사회, 시대의 조류라는데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싣고 싶었던 거다. 학교를 졸업할 때쯤, 심한 열병을 앓았다. 요즘 몇 년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다주 조금 눈을 떴다. 제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도자가 결국 흙과 유약과 불의 끝나지 않을 기나긴 싸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진정 가슴으로만 만지고 사랑할 수 있는 형상을 표현하고 싶다. 나는 나를 끊임없이 짓눌렀다. 나는 나를 강하게 질타했다. 긴장된 명상이 강요되었다. 과거, 기억의 조각들이, 어느 시점의 나를 만나고 있었던 거다. 바로 그 ‘나’를 찾으려는 노력이 나 자신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게 했다.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라. 응답하라. 도자는 어느 장르보다 기술적인 구속력이 강하다. 흙을 쉽게 만질 수는 있어도, 결과 앞에서는 흙의 솔직함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다. 기다림을 모르는 조급한 성격 탓에 주저앉기가 몇 차례인가. 한 작품에 몇 겹의 유약을 씌우기도 했다. 대여섯번 가마 속에 들어갔다 나오고…. 매끄러운 유약을 발랐다가 결국 흙의 질감을 다 드러내고야 말아TEk. 언제나 그럴 것이다. 작품을 내보이는 이 시간에 아쉬움이 가장 많다. 과연 어법은 섰는가. 아직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