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상상 또는 현실 - 바다

새벽, 바다 위에 어둠이 단단하다. 빛은 수평선 위에서 휘어지고 꺽인다. 어둠이 똬리를 틀고 잇는 바다. 빛이 조금씩 스며들면 단단한 어둠이 허물어진다.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어둠은 잔 바람에도 흔들리며 황급히 바다 속으로 빠져든다. 파도가 조금씩 출렁이면 바다 속에 고래들이 몰려든다. 출렁이는 빛은 그들 속으로 사라진다. 빛은 머금고 고래들이 흔들린다. 바다 속에서 고래들은 길리 된다. 마침내 해변에 다다른 고래들은 사막으로 가는 길로 향한다.

#002 상상 또는 현실
사막의 길은 금새 사라진다. 바람을 따라 이리저이 흔들이는 길, 한 걸은 내디디면 발자국은 지나온 길을 지우고 어느새 눈 앞의 길도 모래더미 소으로 빠져든다. 사막의 길 위에서도 길을 잃는다. 사막의 밤은 언제나 빛을 새긴다. 사막의 길은 어둠 속에 있다. 그 빛을 받아 받아 비로소 사막의 길은 길이 된다. 고래들은 몸 속의 빛을 품고 길이 된다. 이제 모래길은 사라져도 고래들은 멈추지 않는다. 신기루를 넘어, 사막의 길은 계속된다. 찬란히 빛나는 어둠. 사막을 건너온 고래들은 수많은 신기루를 가슴에 품어내고서야 마침내 오아시스에 당도한다. 오아시스의 물은 푸르다. 사막의 바람을 맞으면 더욱더 푸르게 출렁거린다. 오아시스의 바닥에는 초원으로 뚫린 길이 있다.
#003상상 또는 현실 - 초원

고래들이 돌아왔다. 이제 고래는 더이상 물에서 헤엄치지 않는다. 그들의 지느러미는 조금씩 날개로 변한다. 오래 전 옛날, 바다로 간 고래들의 팔이 지느러미로 진화되었듯이...... 초원 위를 나는 고래떼는 빛을 발산한다. 고래들의 눈길로 초원은 빛을 품는다. 고래들은 또 다른 초원을 찾아 떼지어 날아간다. 출렁이는 고래의 비행을 따라 흔들리는 초원. 고래들이 떠난 후 초원의 빛은 사람들의 안으로 파고든다. 지친 고래들이 그 속에 머문다. 그들은 요동치는 고래를 위해 여행을 준비한다. 그들은 빛이 되어 출렁이는 고래와 초원을 품고 잊혀진 길을 찾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