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예사를 정립하기 위해 구체적인 기록과 자료를 현대사적 시각에서 정리한 책이다. 또한 전통도예를 미학적 시발점으로 하여 현대와 호흡하는, 나름의 독자적이면서 보편적인 조형언어를 창출해 나가고 있는 도예작가 14명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개하였다. 이들은 한국의 현대도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통도예와 현대도예라는 말이 만들어진 배경은 아주 간단하다. 서양의 도예미학과 기법이 들어오면서 한국에서는 이를 서양도예라 부르지 않고, 현대도예라 불렀다. 동시에 한국에서 전해 온 도예미학과 기법을 전통도예라고 불렀다. 서양화처럼 서양도예라 하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도 전통성과 현대성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이 결코 아니다. 전통에 뿌리를 두고 새로운 표현양식, 기법, 재질을 깊은 사색과 시도를 통해 수용하여 우리 나름의 독자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조형언어를 창출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전통의 열린 개념이다. 이를 올바로 이어갈 때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성의 세계, 인류 문화의 창조적 계승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한국은 불행히도 현대도예라는 말이 사용되면서 전통도예는 그 반대편의 것이 되었다. 즉 원형 모방을 뜻하는 전승과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는 전통도예의 세계가 지닌 다양성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가야, 신라, 백제, 고구려, 고려, 조선의 도예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각각이 지닌 독창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다 한반도라는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정서와 정신이 발견된다. 전통도예의 세계는 시대가 바뀌는 현재, 현재마다 전통성을 품에 안은 채 독창성을 발휘해 왔다. 그것이 각 시대의 현대도예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도예는 중국의 것과 다르고, 일본의 것과 다르고, 또 서양의 것과 다른 것이다. 중국은 중국의 현대도예가 있고, 일본은 일본의 현대도예가 있다. 물론 서양 또한 서양의 현대도예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대도예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의 기획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에 한국의 현대도예가 가져야 할 정신과 기본이 되어야 할 도예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를 밝히고자 한다.





*저자 : 정동주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시집 <농투산이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장시 <순례자>로 '제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서사시 <논개>를 비롯하여 <생존일기> <이삭줍기> <논두렁에 서서> <그대생각> 등 7권의 시집을 낸 뒤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하소설 <백정> <단야> <민적>,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 <신의 지팡이>, 역사자로집 <까레이스끼 또 하나의 민족사>, 한국문화론 <소나무>, 평전 <논개>가 있으며 <신의 지팡이>, <까레이스끼 또 하나의 민족사> <논개>는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 들어가며

Ⅰ.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

1. 토기의 사회사
2. 흑도黑陶,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의 특징
3. 청자와 백자 문화
4. 그릇 만들기에 쓰이는 연모와 그 본딧말
5. 우리나라의 물레대장들

Ⅱ. 찻그릇의 역사

1. 토기시대의 찻그릇
2. 고려시대의 찻그릇
3. 조선시대의 찻그릇
4. 오늘날의 찻그릇
5. 전통도예와 찻그릇 만들기의 과제

Ⅲ. 현대 찻그릇 작가와 작품론

1. 전통의 대지 위에 흐르는 새로운 강
소나무의 늠렬한 푸름을 노래함 ― 우송 김대희
연꽃 속의 소식을 묻노니 ― 연파 신현철
달 물결로 찻사발을 빚는 흙의 신 ― 월파 이정환

2. 뜨거워 어찌할 수 없는 마음덩어리
어느 흙십자가의 뿌리 ― 김지선
흙 속에서 길을 찾다 ― 임만재
보이지 않는 것 만들기 ― 홍성선

3. 시간과 공간이 비치는 거울
매화꽃 피우는 불길은 차갑다 ― 우동진
강물에 비친 대 그림자 ― 서영기
갈고닦으면 늘 새롭다 ― 유태근

4. 느림과 만족, 그 은밀한 순정
늦깎이의 붉은 순정으로 빚은 온유함 ― 여상명
느리게, 그래도 길을 잃지 않고 도달한 사랑 ― 김성철

5. 흙을 닮은 사람 혹은 그 마음
현대성, 시간, 그리고 시련의 흔적 ― 김갑순
평범함의 표정 ― 이일파
산그늘로 빚은 그릇 속 강렬한 빛의 언어 ― 김종훈

참고문헌
14인의 도예작가





*찻그릇 문화와 회복을 위한 노력
우리나라 사람들이 토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약 8천 년 또는 6천 년 전부터라고 한다. 토기 가운데 항아리와 잔이 가장 먼저 대량 생산되었다. 그리고 일찍이 시작된 차 마시는 문화는 많은 찻그릇을 필요로 했고, 불교문화와 접목되면서 고도의 정신성을 담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차 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찻그릇은 단지 명맥만 유지해 왔는데, 이마저 일제 감정기의 ‘한국 도예 말살 정책’으로 전통기법은 회복 불능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 도예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해 몇몇 사기장들은 많은 노력을 하였고, 이제는 새로운 발전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도예작가 14인 이야기
소개된 14인은 해방 이후 한국 전통도예사에서 2세대, 3세대로 분류되는 이들 가운데, 각 세대를 대표하거나 또는 상징하는 작가이다. 그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 찻그릇의 현재 모습과 미래를 진단한다.

김대희 : 그의 작품 전체에서는 멋이 전통으로 승화되어 매우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그는 청자, 백자의 원류를 찾아갔다. 청자와 백자는 단순히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훨씬 이전 토기시대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고, 한반도를 넘어 중국 그리고 더 광활한 문명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상상력의 무한을 뜻한다. 그는 청자와 백자의 다양성을 확인하기 위해 젊은 날을 보냈고, 나이 쉰 살이 넘은 지금도 중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닌다. 청자와 백자의 심오한 세계는 그대로 내면에 싸여 김대희의 청자와 백자가 탄생한 것이다. 편안하고 단아한 느낌이 전해진다.

신현철 : 최초로 그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조형을 찻그릇에 용용하였다. 전통도예와 현대도예의 장점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한국 도예의 단점으로 지적된 창조성 결여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집요하게 시도하고 있으며, 종교적 신비감을 승화시키는 꽃과 잎의 응용은 결코 간단치 않은 내용으로 꽉 차 있다. 전통도예 기법과 현대도예 기법의 절묘한 접목은 찻그릇의 미학적 진화이다.

이정환 : 그의 찻사발은 들뜬 색조를 극복하고 있는데, 그가 생각한 한국의 미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조에서 그 정서와 자연의 모습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옛것에 얽매이지 않고 크기와 선에서 자연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지선 : 그는 ‘발鉢’이 ‘과장과 억지가 없는 자연에 순응하는 형태’라는 가장 중요한 점과, 우리의 도자문화에서 발은 빼놓을 수 없는 전통적 형태로서 현대에도 발전되어야 할 주제라고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임만재 : 그의 찻잔은 구김살 없이 천진난만하게 흘러내린 선과 전, 마치 높은 경지에 다다른 수행자의 미소처럼 군더더기 한 점 없는 원숙한 형태와 색채가 돋보이고 고졸미가 느껴진다.

홍성선 : 물레선에서 긴장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다분히 복잡한 감정들인데도 서두른다거나 애매한 흔적보다 느긋하면서도 매우 신중한 손길이 드러나 있다. 아직 세상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활달하고 자연스런 선과 질감이 돋보인다.

우동진 : 현대의 자유분방한 모든 도예적 표현은 미학적 측면에서 고찰하면 결국 사발沙鉢에 접근한다고 말하는 그는 찻사발의 심오한 세계를 꿰뚫고 있다고 판단된다. 흙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 광물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실험을 거쳐 결국 연질백자를 만들었다. 부드러우면서 깊은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서영기 : 그의 그릇은 평범하고, 단순하다. 형태의 친근감, 색채의 안정감, 친근감과 안정감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적절한 실험성이 불러일으키는 재미, 낯익되 천박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기교 등은 깊이와 폭을 지닌 평범함이고 단순함이다.

유태근 : 그는 현대도예의 표현과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전통과 현대는 투쟁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다양하고 역동적인 표현을 통해 서로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지평을 열자고 한다.

여상명 : 그의 찻그릇을 보면 평상심이 생각난다. 그것은 토기적 특성 때문이다. 토기에서 느껴지는 원시성, 평온함, 생김새의 다양성과 신선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는 눈을 편안하게 한다.

김성철 : 그는 흙이 품고 있는 색깔의 신호를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약토藥土라고 부르는 흙을 연구하고 있는데, 약토를 이용해 만든 유약은 그릇의 몸흙과 한몸이 되는 장점이 있다. 즉 몸흙이 유약을 골고루 잘 빨아들여 몸 태깔이 생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유약 색깔이 자연스럽고 깊은 느낌을 준다.

김갑순 : 풍부한 양감을 지닌 찻사발의 후덕한 형태, 도자기가 지니는 선의 미의식이 집약되어 살아나는 고요 속의 꿈틀거림, 포효하는 파도를 껴안으며 바다를 달래는 굽의 당당함은 매우 보기 드물다.

이일파 : 그는 화려하기보다 소박하고, 쓰면 쓸수록 편안해지는 그릇을 만들고자 한다. 그의 찻그릇은 평범하고 서민적이다.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이 같은 요소를 체계적으로 줄여 나간다면, 그의 찻그릇은 우리 차 문화에서 나름의 몫을 할 것이다.

김종훈 : 그의 찻사발은 흙의 자연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기 위한 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직접 손으로 파낸 흙으로 그릇을 만들다 보니 똑같은 것이 별로 없다. 생애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릇을 만들려는 작가로서의 정신세계를 탄탄히 구축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