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라쿠심포지움 코리아 2001[3]
다시 찾아온 라쿠
리처드 허쉬
60년대 초기에 라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진행되었고, 일본에서의 라쿠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은 증대되었다. 그래서 일본 라쿠의 역사가 대단히 자주 발표되기 시작했고, 서구언어로 잘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라쿠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되어지고, 단순화되어졌다. 때때로 잘못된 정보가 많이 발표되어졌다. 이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오늘날 일본에서조차 라쿠가 여전히 약간의 신화와 신비감에 쌓여있기 때문에, 여러 사실들이 다소 애매하고, 불명확한 점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라쿠가 차명장인 센-노-리큐의 창작품이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모모야마 시대에 그는 와비-노-차도로 알려진 미철학을 발전시켰고 집대성하였다. 단순함, 조화, 억제 같은 선사상들이 그의 차철학 안에 포함되어졌다. 사용하기 위한 용구들을 만들기 위해, 리큐는 이러한 특성들과 본질들을 나타내는 기물들을 만드는, 타고난 기질의 장인들을 찾아내고 후원하였다. 리큐와 함께 작업하였던 그러한 장인은 나중에 라쿠 쵸지로로 알려졌다. 리큐는 쵸지가로 형태, 외양, 색에 있어 엄격한 사항들을 갖춘 찻잔들을 만들 수 있도록 가르쳤다. 쵸지로는 리큐가 원하는 찻잔들을 만들어내었고, 자신의 훌륭한 감각들과 위의 엄격한 사항들을 통합함으로서 이 제작을 달성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리큐와 사이의 이러한 대화가 미술사에서 좀더 중요하고 영속적인 대담들 중의 하나로 발전되었다. 이들이 만들어내었던 차용구들은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정적이며, 억제되어진 것이고, 수수한 동시에 세련됨을 나타낸다. 이러한 협동은 미학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 두가지 다에서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것이었다. 처음에 이러한 물건들은 일반적으로는 리큐도자기로 불러졌고, 나중에 라쿠도자기로 불러졌다. 이들의 유산은 400년을 넘어 훌륭하게 지속되어온 전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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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제 라쿠심포지움 코리아 2001" 자료집에서 발췌하였으며
이 자료집의 판권은 비슬문화촌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