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한국공예학회 춘계 학술 대회)

[수공적 모드(handcraft mode)의 가치에 대한 성찰] - 이  재  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산업화라는 패러다임은 맑시즘에서 집요하게 지적하는 바와 같이 노동의 가치 자체를 소외시키고 폄하하기 시작한 단초가 된다. 실제로 지난 20세기를 회고할 때 노동이 더 이상 역사의 주체 혹은 추동력이 되지 못하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노동과 유희에 기초한 수공(手工) 혹은 수공적 모드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퇴화나 소멸의 길을 걸어 왔던 것 또한 자명하다. 노동의 소외, 곧 수공의 소외는 미술사에서 보듯, 결국 미적인 영역에서조차 분명하게 나타났다. 20세기 들어 공예 활동이 다른 예술활동에 비해 침체된 것도 바로 이러한 노동에 대한 왜곡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의 세계는 전환기적 패러다임 코드가 지배하게 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가공할 변혁은 세계관과 감정구조, 미의식, 도구적 양식, 소통양식, 소비성향, 취미 등의 모든 사회적 기능들에 있어 미증유의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모더니즘 이후의 제반 담론들이 진단하고 있는 전환기적 사회 현상들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급격한 변화가 적지 않은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로 산업사회 역사를 통해 왜곡된 질서와 불균형을 바로 잡고자 하는 방향성을 드러내고 있는 긍정적 상황이기도 하다.
   오늘의 패러다임을 압축하자면 디지털 코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전자 신호체계를 넘어 인류의 시간과 공간을 단축한 원리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은 동시대인들에게 거의 신앙과도 같은 상태이다. 이러한 디지털 코드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상대적으로 아날로그 코드의 쇠퇴가 예측되었다. 그러나 상황과 기능에 따라 부분적으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요구되고 있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아날로그', '느림', '자연' 등의 화두가 역사적 당위를 갖듯이, '수공' 역시 동시대인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코드이자 모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다시 "수공의 미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시 고찰해야 할 때이다. 시대적 패러다임에 맞는 가치, 특히 미적 가치는 무엇인지를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한 장르의 사활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공적 모드의 미적 가치를 고찰하기 위해 우리는 저명한 사회학자 루이스 멈포드(Luise Mumford)의 <예술과 기술>에서 인용하고 있는 두 개의 신화를 먼저 경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두 개의 신화

   루이스 멈포드는 인류의 문명을 받쳐주고 있는 두 개의 축을 신화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오르페우스 신화이다. 주지하듯 전자는 인간에게 불(도구, 기술)을 가져다 준 이야기이며, 후자는 죽음까지 극복한 음악(예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멈포드는 서구 역사를 통해 전자, 즉 도구적 이성만이 존중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상기하면서, 양자는 항상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전자만이 생산적이며, 후자는 소모적이고 향락적이라는 도식적이고 그릇된 인식이 극복되어야 하는 의미로도 통한다.
   그런데 그 균형은 한 사회나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인성 발달 측면에서도 이 양자는 필수적이다. 이 양자는 서로 상호 보완하는 가운데 한 개인을 전인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중요한 근간이다. 상호 보완이라는 의미는 이렇다. 단순히 약점을 보완해 주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서로 목적과 수단을 교차시켜 가며 피드백을 유지하는 유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이 요구된다 하겠다. 과학과 기술의 진정한 발달은 결국 예술의 창조적 기능이 발휘될 때 가능하며, 예술 또한 과학 정신에 입각한 자기반성과 검증에 의해서만 진정한 발전이 기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사회적 모순과 병리현상이 만연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과학과 기술 지상주의에 의해 야기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그 1차적 책임은 과학 기술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넋두리 같은 지적인 러다이트(luddite)적 푸념에만 머물 수는 없다. 이렇게 과학기술의 문제로만 책임을 전가한다면 예술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오직 정치적 조율에 의해서만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백신과도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학 기술 자체의 독주나 모순을 제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예술 내부에 없었기 때문은 아닌가. 지난 20세기를 회고해 볼 때 예술 자체의 내적 성장과 진전, 그리고 예술이 현실세계에서 가진 권력이 또한 적지 않았다. 요컨대 예술 자체의 기능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가. 많은 포스트모더니스트 담론의 식자들이 비판한 바도 대체로 과거의 예술들이 기능적 외연의 확장에 실패했음을 지적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예술, 혹은 현대예술이 게임이나 그 밖의 것으로 변질되어 스스로 자정하기 힘든 한계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예술의 기능들 가운데 치료적 기능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현대인들의 생활양식에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적지 않은 반성의 여지를 안고 있다. 이상주의 공예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도 역설했듯이 박제화된 예술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유기적이고 건강한 교감의 예술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를 진지하게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 점에서는 공예 역시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수단이나 방법만 있었을 뿐 역사와 사회 안에서 삶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목적으로서의 공예가 과연 있었는가.
   우리는 오늘의 사회와 역사 안에서 건강하고 유기적인 공예의 성립을 위해 다시 그 본질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동', 혹은 '수공'이라는 문제 말이다.

 

2. '노동'이 미적일 수 있는가?

   전통 철학에서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이다. 산업화 이전에는 그것이 정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육체의 소산이란 점 때문이며, 산업화 이후에는 생산성이란 측면에서 기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을 미적인 것으로 보려는 미학적 시도도 사실은 거의 없었다. 물론 전통철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철학, 특히 맑시즘에서는 노동을 인류 발전의 원동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입장들이 노동의 가치를 진정하게 발현시키는 데 기여한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후기현대에 나타난 노동의 다양한 속성과 형태에 대해 섬세한 가치부여를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존 듀이의 예에서 보듯, 프라그마티즘과 같은 현대철학에서 노동에 대해 다양하고 섬세하게 성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라그마티즘이 다양한 갈래를 가지고 있어 하나로 일괄하여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프라그마티즘이 노동과 유희의 미적 가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경험론의 입장에 있음을 상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예술 자체를 경험으로 동일화 혹은 환원시키고 있다. 프라그마티즘의 태두인 윌리암 제임스는 "실천적 경험에 있어서 현금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유명한 명제에 입각해 보자. 궁극적으로 어떤 노동 자체에 미적 경험의 요인이 직접적으로든 혹은 간접적으로든 산출된 현금가치가 어떤 것이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듀이도 미적 경험은 박제화된 혹은 제도화된 미술관 같은데서 산출되기보다는 우리의 살아 숨쉬는 생활의 현장에서 더 싱싱하게 경험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현실 속에서 목격되고 체험되는 노동은 여러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아름다운 노동, 혹은 거룩한 노동, 기품이 넘치는 노동, 활력적인 노동 등이 있는가 하면, 추한 노동, 비굴한 노동, 무기력한 노동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노동은 전통적으로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프라그마티즘의 이러한 노동에 대한 입장은 노동 자체를 목적적인 것으로도 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노동은 무엇을 생산하는 활동이기 이전에 생명체의 운동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아울러 그 활동의 주체가 직접적으로 얻을 경험의 질과 양을 여러 가지로 구분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가 작품의 결과보다 더 예술적 혹은 미적일 수 있음을 생각해 보자. 행위의 과정이 발생시키는 경험의 내용은 그 화가의 모습을 보는 일에서, 그리고 행위의 주체인 화가의 내면에서 얻어진다.
   현대미술의 여러 양식들 가운데 노동과 유희, 즉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전통적으로 구분되어 온 목적과 수단의 이분법을 교란시키거나 재정립시키고자 하는 사례는 비단 프라그마티스트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매체이론가인 마셜 맥루헌의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명제(<미디어의 이해>)가 바로 그것이다. 수단으로서의 매체가 목적으로서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보편적 현대미술의 양식으로 자리잡은 해프닝, 이벤트, 퍼포먼스 등도 바로 이런 범주에서 목적과 수단의 전도양식이 적용되고 탐구되는 사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최소한 노동 혹은 행위자체가 적어도 잠재적으로 경험의 주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미적 경험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비교적 상세한 연구가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제기된다.
   노동이라는 개념을 다룰 때 우리는 '놀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적 철학에서 노동과 유희는 구별되고 있다. 노동이 외적 필요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라면, 유희는 내적 필요에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희는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노동을 위한 휴식 정도로만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희는 <호모루덴스>의 저자 호이겐스의 창조적 해석에 의해 유희의 인류사적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노동과 유희 양자를 적절히 결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수공적 모드'이다.

 

3. 수공적 모드의 미적 가치

   수공적 모드의 주된 요소는 노동, 기술, 예술성이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여기서 일단 보통의 노동 행위, 혹은 기술 등의 일반적 요소는 듀이가 말하는 1차적 단계(primary phase)에 속한다. 바로 이러한 1차적 단계는 일상에 속하면서 잠재적인 미적 경험들을 내포한다. 듀이가 바로 예술을 다루기 전에 1차적 단계의 풍부한 자재력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모더니즘 이후의 연구자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삶의 정상적인 과정과 미적 경험의 연속성을 회복하기 위한 "(Art as Experience, ch.1) 듀이의 미학적 목적은 자연, 세계, 일상 등의 광범위한 1차적인 단계들이 역동적이고 생생한 에너지로 가득 찬 것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잠재적인 미적 세계가 "의도적으로 다듬어지고 발전된 단계"(intentionally cultivated phase)가 바로 예술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현실에 제도적으로 존재하는 예술만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듀이는 당연히 그 가운데서도 조건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듀이는 미적 가치를 산출하는 미적 경험을 '극치'(consummation)라 부르고 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가장 완성된 국면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극치의 상황이 없는 예술은 당연히 배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공적 모드는 듀이 도식의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수공적 모드는 일단 '1차적 단계'를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다듬어진 단계'가 적어도 수공 창작의 주체에게 내포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수공은 노동의 행위가 여타의 경우와는 차별되는 데서 미적 경험과 가치를 부여한다. 그런데 우리의 미론은 거의 그것의 빛나는 결과에만 주목해 왔다. 그 수공 과정 혹은 창작과정에서 발생되는 만족스런 미적 경험은 결과로서의 작품(제품)을 통해 얻는 경험과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의 우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창작으로서의 수공과정이 사회적, 일상적으로 보급되고 확장되는 문제를 과제로 생각해야 할 때이다. 촉각적 수공 행위가 적어도 치료현장이나 교육현장에서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발달에 중대하다는 사실은 심리학 일반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촉각은 시각에 비해 무의식에 근접해 있다. 촉각적 경험이 잠재적 심리상태에 훨씬 더 강한 자극과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떤 행위의 성취는 몰입의 심도에 의해 결정된다. 경험의 완성적 국면이라는 '극치'가 노동이자 유희로서의 '수공의 과정'에 나타난다는 것은 적지 않은 미학적 의의를 갖는다. 이는 생산과 소비, 창작과 수용이라는 기계적 도식을 재고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시장 내에서 상품이 될 수 있는 요소는 거의 결과에만 집중되어 있다. 물론 예술이 자본의 구조 속에서 재화적 확실성과 구체성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자본의 예속적 상황이 건강한 예술의 기능을 제한하고 기형적 발전만을 강요한 것이다. 현재 많은 공예활동 안에 수공의 과정들이 가치를 창출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공예는 많은 유형으로 끊임없이 분화되고 있는 것이 필연적이지만, 종래의 수동적 소비자들은 적극적 참여자로 탈바꿈시키는 프로그램이야말로 선결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생산의 참여자라는 사실보다는 유희의 참여자로서 말이다.
   최근 들어 우리 상품유통 시장에 DIY가 회자되고 있다. 모든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간편한 소비가 주도하는 마당에 소비자 스스로 공작에 참여케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반어적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DIY 시스템이야말로 소비자가 수공적 유희와 게임에 동참하여 스스로 성취감을 갖게 함과 동시에 경제적인 실익을 안겨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다. 스스로 참여하면서 소비자가 되고 수혜자가 되게 하는 시스템의 전환은 예술과 공예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4. 공예의 새로운 범주들 - 마치면서

   공예를 정의함에 있어 어느 사이 공예는 예술의 시대적 추이에 따른 종속변수가 되어 있었다. 결국 오늘의 공예를 예술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의 권력을 회화나 조각이 장악한지는 벌써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말부터 쓰나미처럼 몰려온 패러다임의 대변혁은 기존의 예술에 위협과 희망을 교차시켜 주고 있다. 그리하여 지난 세기초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조와 담론들이 이제 별다른 화두나 주도적인 방향도 없이 답보 상태로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술 자체의 변화보다는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공예의 개념들에 대한 재정립이 이루어질 필요가 대두된다.
   무엇보다 공예는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대안적 예술'(alternative art)이라는 개념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예술이 아무런 방향 정립도 못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의 담론적 독재 자체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적 코드가 디지털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예술은 그 보완재로서 일정한 역할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예술 자체가 너무 고도의 자본화와 디지털화가 진행되어 버렸다. 스스로 아날로그적 속성과 역할을 역설하기에는 너무 앞질러 갔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대중들의 경험 밖으로 너무 많이 이탈한 그 궤도를 돌려 다시 돌아오기에 벅찬 발걸음을 하고 있는 예술에게 수공적 모드는 자연스러운 소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오늘의 공예는 또한 '참여로서의 예술'이 가능한 새로운 양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이래 우리의 삶의 공간에서 생활과 공예의 자연스러운 유기적 상호관계가 단절되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민 대중의 참여가 없는 예술의 미래는 없다. 이미 시민대중의 눈과 귀는 거의 각종 미디어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과 같은 쌍방향 소통의 체계로 열려 있는 매체의 세계는 예술에서 소외된 대중들의 참여의 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술이 우리의 삶과 단절되어 있는 데 비해 비교적 공예는 생활과의 거리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DIY 사례에서 보듯이, 일반 시민들을 참여자로 하는 예술의 바람직한 모델이 공예에서 가장 먼저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공예는 끝으로 '행복한 구원의 예술'로서 기능해야 한다. 오늘날 자본의 고도화, 과학기술의 첨단화는 인류에게 미증유의 불안과 공포를 주고 있다. 모든 사회 구조가 빠른 속도를 강요하고 있을 때, 적어도 예술은 '느림'과 치유와 행복한 구원의 손길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의 메시지는 거대한 그물망으로 담아지지 않는다. 소박하고 섬세한 그물망이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예술 일반은 너무 그물의 코가 크게만 넓혀져 있다. 우리의 생활의 공간과 시간 속 어디서나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접근되며 위안을 주되, 결코 예술이라 참칭하지 않는 겸손함이 절실하다. 과학의 발달은 이제 허황된 꿈꾸기를 즐겼던 소수의 SF 예술가들이 예언했던 대로 가고 있다. 아이러닉하게도 그 예언이 적중하면 할수록 수공적 모드의 절실함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끝.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