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도자의 동서교류전, 주식회사 아리타 비.오.시 발행
번역: 박수아/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는 자기제작기술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것은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유럽세계에서, 왜 동양의 자기가 이토록 열광적으로 환영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토양이 되는 것이다. 진기한 문물의 일종으로서 동양의 자기는 그 이국취미와 훌륭한 품질로 인해 매우 귀중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자기는 동양에서 온 진기한 보물의 하나로서 일부 풍요로운 귀족계급에 의해 수집되었다. 동양문물이 수집되어 장식된 찬장 안에서, 자기는 이국적인 산호나 조가비와 같은 자연물에 필적할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인공물이었다. (자기를 통칭하는 포슬린(Porcelain)이라는 명칭 역시 어떤 종류의 조개의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기는 정밀한 세공으로 장식된 금은세공의 액자 안에 수납되어 자랑스럽게 장식되기도 하였다.
  17세기까지 유럽에 들어온 자기의 대부분은 포르투칼인에 의해 판매되었는데, 서양에서는 포르투칼만이 유일하게 극동지역의 무역루트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1592년 얀 하이헨 환 린스호텐(당시 세계유수의 무역항이었던 포르투칼령 고어에서 수년간 근무했던 네덜란드인)은 극동지역의 포르투칼령을 순회할 때 「동방안내기」를 기술하였다. 이 여행기가 출판됨으로써 네덜란드인은 동방의 무역루트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595년 스페인 왕 필립 2세가 네덜란드 선적의 상선에 대해 포르투칼의 모든 항구의 문을 닫아걸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인은 동양의 문물을 입수하기 위해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 결과로 네덜란드는 동양아시아로의 상선을 수집 파견하고 독자적인 교역의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역개시 후 수년 간 상상도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시기를 극복한 네덜란드는 1600년대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망 확장을 위한 실마리를 확보하며 서서히 무역에 있어 포르투칼의 독점체제를 파괴해 갔다. 즉, 1602년의 VOC(네덜란드 연합 동아시아 회사)의 설립이,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서의 네덜란드의 무역에서의 성공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소위 중국제 카라크 자기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한 무역이 개시될 때부터, 교역품 중에서도 취급고가 급증했던 상품이었다. 네덜란드 항을 통해 연간 수 만개에 이르는 자기가 유럽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러한 방대한 양의 자기 수입으로 네덜란드의 고급자기시장은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컬러풀한 그림으로 알려진 마욜리카도기로 대표되는 네덜란드의 도자산업에 동양의 자기가 들어옴으로써 시장경합은 보다 심해지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공방 중에는 폐쇄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곳이 있는가 하면, 유럽의 전형적인 기형과 장식의 도자기, 예를 들어 타일이나 약항아리 등의 제품에 한정하여 생산을 계속하는 가마도 있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도기의 부족분은 중국제 카라크자기로 보완되게 되었다. 이전까지 마욜리카도기를 생산하던 대다수의 공방은 중국자기를 모방한 염가품, 요컨대 중국제자기에서 유용한 디자인을 단순화하여 소박한 그림을 그린 그릇을 제작하는 것으로 당면한 문제의 활로를 찾으려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양 자기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네덜란드도공도 있었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종래의 제품에 새로운 제작기법을 도입하였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석유도(錫釉陶)였다. 이것은 수입품인 카라크자기의 외관상의 질감을 가능한 한 충실히 재현하려 한 것으로, 석유도를 제작했던 도공은 흰 바탕에 남색으로 그린 이 도기를 “Hollants Porceleyn" 즉 「네덜란드 자기」라고 칭했다. 겉모양은 그럴싸했지만 자기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이 신제품의 개발은 1620년경에 델프트에서 이루어졌고 이후 수십년에 걸쳐 남색 그림이 그려진 석유도기가 활발히 생산되었다. 새롭게 탄생한 도기는 생산된 지명을 따서 「델프트 도기」라고 칭해지게 되었다. 자기시장에서 중국제 카라크자기와의 무익한 경합을 피하기 위해, 델프트 도공의 대부분은 그들의 제품에 중국풍이 아닌 유럽풍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1645년 경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한 중국과의 자기무역은 중국남부에서 발발한 동란으로 인해 정체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자기를 소성하는 가마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중국 남해안 출하항에서의 자기의 수송은 자주 무산되곤 하였다. 동란이 격심해지면서 네덜란드의 자기무역은 완전히 정지상태에 이르렀고, 마침내 1650년대 중반에는 한 점의 자기도 네덜란드로 출하되지 않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상황은 네덜란드의 도공에게는 두 번 다시없을 호기가 되었다. 뜻하지 않게 격심한 경쟁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시장에서 중국자기가 점하고 있던 부분은 제품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델프트도기의 도공에 의해 차차 독점될 수 있었다. 1650년 이후, 네덜란드 델프트도기에서 중국풍의 그림의 모방이 시작되었고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럽에서의 자기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 극동지역에서 중국을 대신할 만한 자기의 공급지를 조사하다가 1650년 경, 일본으로 발을 넓혔다. 일본과는 이미 수십년 간 교역관계를 맺고 있었고, 1640년대 이후에는 일본의 쇄국정책에 따라 독점교역을 진행해오던 실적이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일본에서의 교역거점․나가사키(長崎)를 포함한 히젠(肥前)의 아리타（在田）에는 유망한 자기요가 있었다. 17세기 초기부터, 일본에서는 이 아리타에서 소량의 조질자기를, 주로 주변지역 및 국내용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당초 일본에서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중국에서 조달해 가던 만큼의 방대한 양의 자기를 생산할 수 없었다. 당시 아리타에는 충분한 양의 재료가 없었고, 생산을 꾸려갈 만한 조직도 없었지만 네덜란드의 주문에 맞추어야 한다는 필연성이 이러한 상황의 개선을 촉구하였다. 1659년에는 60,000개의 자기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발주되어 인도 및 아라비아에 수출되었다. 한편, 그 다음 해인 1660년에는 17,000개의 다양한 자기가 네덜란드에 수출되었다. 이러한 초기 일본제수출자기는 중국제수출자기를 가능한 한 모방하고 있었으나, 아직 발전도상에 있던 일본의 그림직공(繪付師)에 의한 채색은 선진국이었던 중국의 것과 비교하면, 어떻게 봐도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면하기 어렵다. 중국자기의 다양한 장식문양도 아리타의 그림직공들은 극히 제한된 것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특주품이라고 생각되는 몇 점을 제외하고, 그림 스타일은 오히려 소묘에 가까웠다.
  중국자기의 무역체제 붕괴 후, 10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새로운 양식의 동양의 자기가 네덜란드에 유입되었던 일은 네덜란드 도공에게는 그다지 환영할 수 없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중국제 카라크자기와의 험난한 경쟁을 겪고, 겨우 설자리를 찾기 시작하던 네덜란드의 도공은 또다시 바다 건너에서 온 일본자기와 대치하게 되었다. 도공 중에는 일본자기를 모방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동양적인 디자인을 모방하는 일에 숙달되어 있었고 중국의 문양을 간소화한 것 같은 일본풍 그림에 곧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일본풍 그림은 오히려 모방하기 쉬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델프트도기 중에서도 1660-1680년대에 편년되어 있는 걸출한 한 무리는 아리타제의 초기수출자기의 주요한 특징(간소한 그림에 의한 동양인의 좌상, 깃털모양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소나무의 묘사, 풍경의 간략화 된 처리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고도의 기술력과 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을 가진 동양자기를 모방한 제품이 1650년대 이후 델프트도기의 성공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168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국과의 자기무역을 재개하였으나, 그 때에는 네덜란드 도공들이 중국과의 경쟁이 가능할 만큼의 우위의 상황에 있었다. 그들은 델프트도기 창시 이래 ꡒ잇달아 신제품을 명확하게 내세운다ꡓ라는 것을 모토로 네덜란드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해 갔다. 네덜란드에 수입된 동양의 참신한 기형이나 문양을 델프트의 도공은 급속히 유용하였다.
  델프트에서 지도적 역할을 달성했던 공방은 「그리스 A공방」(De Grieksche A)이었고, 사뮤엘 판 엔 포른, 아드리안 코크스 및 코크스의 아들인 피터 아드리안 코크스의 지도 아래, 많은 신기술이 도입되었다. 그들의 신기술 중에서도 특필할 만큼 중요했던 것은 금채를 포함한 다채색을 했던 작풍을 다시 채용했던 것이었다.
  소메츠케-역주: 산화코발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물감을 사용하여 초벌 위에 도안을 표현하고 투명유를 시유하여 소성하는 기법-와 소위 저화도소성법(Petit feu)에 의한 다채로운 에나멜을 사용한 상회를 구성함으로써, 네덜란드의 도공들은 일본자기의 카키에몽양식이나 고이마리양식 및 동시대 중국자기에 있던 녹유의 색회자기의 모방제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리스 A공방」은 일본의 고이마리양식의 색회자기를 모방하는 것에 성공하였고, 당시 유럽 사람들이 이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피터 코크스가 죽은 후, 그의 미망인은 매우 숙달된 금은채 화공을 여러 명 채용하였는데, 유럽에서 도자문화의 발전을 회고할 때, 「그리스 A공방」이 유럽에서 지도적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한 데에는 그들의 공적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성공한 예로서는 성찬용식기류 일식에 고이마리양식의 배색으로 소유자의 가문의 문장을 넣은 제품을 들 수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문은 1710년대에 제작된 프로시아제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대관식을 위한 것이었다.
  저화도소성법으로 제작된 제품과는 별개로, 중요하면서도 이제까지 간과되었던 제품으로 동양의 자기에 델프트의 도공이 상회를 한 것이 있다. 이 이른바 아토에츠케자기(surdecoree porcelain)는 대부분이 일본 또는 중국자기의 불량품으로, 소성 중 손상되거나 그 외 약간의 품질불량 때문에 수출에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된 자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여, 델프트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 아토에츠케자기의 생산량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델프트의 제품 중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도공에 의한 시노와즈리문양-역주: 유럽미술에 표현된 중국취향의 작품의 총칭-이 그려진 동양의 자기라는 하이브리드한 형태의 자기를 싼 가격에 매매한 시장이 존재했을 것이고, 아토에츠케 자기는 네덜란드 시장에서 추구되어오던 것에 멋지게 합치했을 것이다.
  18세기 후반 동양의 자기와 델프트도기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고급자기 시장은 마이센, 세브르 등의 보다 고가의 유럽자기로 이행해 갔다. 유럽도자의 수도로서의 델프트의 전성기는 끝나고, 1755년에는 23개의 공방이 활동했던 것에 비해, 1798년에는 11개의 공방만이 계속해서 활동하였다. 1840년 이후는 「포슬린 프레스 공방」(Porceleyne Fles)만이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고 활동을 이어갔다. 이것은 사람들의 도자기에 대한 기호가 동양적인 것에서 서양적인 것으로 변화해 간 것과도 일치하고 있다. 18세기 말 동양자기의 유럽자기로의 영향력이 저하한 시대에, 중국, 일본, 네덜란드의 도공들 사이에 큰 결실을 남긴 조우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