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영역변천과 지방통치(地方統治)
金 英 心 (서울대학교 강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들어가는 말
지방통치체제란 기본적으로 국가가 지배영역 및 그 영역 내의 민(民)을 편제·지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지배영역의 변화를 밝히는 것은 지방통치체제를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백제의 지배영역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에는 문헌자료와
고고학 자료가 있다. 그러나 백제의 경우 문헌자료의 부족, 특히 가장 중심되는 자료인
{삼국사기(三國史記)} 초기기록의 신빙 여부가 크게 문제된다. 백제의 남방영역 확대에 가
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마한(馬韓)의 멸망기사가 온조왕 27년조에 나오는 등 온조왕대부
터 백제가 영역국가로서 출발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삼국사기} 기록만으로는
백제의 영역변천이나 전반적인 발전과정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백제의 영역을 밝히기 위해서는 고고학자료의 활용이 불가피한데 여기에도 문제
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고고학자료가 문화권(文化圈) 설정에는 유의미하나, 정치적 지
배영역 추정의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둘째, 현재 경기도·충청도·전
라도 등 백제지역에서 백제 관련 고고학자료들이 무수히 발굴·조사되고 있고, 앞으로도
조사될 예정이며,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조차도 일관된 시각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정합
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문화권과 정치적 지배영역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권 간에
중앙의 문화요소를 수용하는 양상이나 시기에 있어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면, 중앙의 지배
력의 침투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연구자간에 용어나 개념, 연대비정, 유
적의 성격 규정에 있어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 못하는 자료들이 허다한 상황에서 임의적으
로 몇몇 자료를 선택하여 정치사를 설명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을 피하고 가능한 한 공통분모를 추출하여 부족한 문헌사료를 보완한다면
백제의 영역 문제를 규명하는 데 있어 고고학자료가 기여하는 측면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문헌자료와 고고학자료를 결부시켜 각 단계별로 백제의 지배영역을 설정하
고, 지배영역의 변화에 따라 지방통치방식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고고
학자료의 이용에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기하고자 하지만, 자의적이고 무리한 해
석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제현들의 많은 질정을 바란다.

1. 3세기 중·후반 마한사회의 주도권 장악
백제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백제의 국가형성과 관련된 문제이
다. 국가 단계의 특징적 요소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국가 형성 시점에 대한 견해차
가 크게 마련인데 현재까지의 연구에서는 3세기 중·후반을 고대국가의 기점으로 보는 것
이 일반적이다. 이는 종래 '초기백제' 내지는 '백제초기사'라 불리우는 시기의 하한과 일치
한다. 기원 전후부터 3세기 중반, 즉 고이왕 이전까지의 백제사는 고대국가 백제가 아니라
백제국(伯濟國)의 성장·발달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3세기 중반 단계까지 백제국의 지역적 범위를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동북계를 알 수 있
는 자료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에 나오는 말갈(靺鞨)과의 전투 기사이다. 말갈,
즉 예(濊)와의 교전지역은 강원도·경기도 동북부지역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이 백제의 동
북계를 형성했으리라 생각된다. 동계는 1세기경 신라와의 교전지역으로 나오는 낭자곡성
(娘子谷城, 청주), 와산성(蛙山城, 보은), 구양성(狗壤城, 옥천?) 등이 지목된다. 그러나 청주
송절동(松節洞)이나 청원 송대리(松垈里), 청주 신봉동(新鳳洞) 유적의 예에서 보이듯이 당
시 백제국이 소백산맥 이북지역까지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는 3세기 중반까지의 정황을 기록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이나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백제국은 마한 50여국 내지 삼한 78국의 하나이고, 마한사회의
맹주국은 목지국(目支國)으로 나와 있는 것에서도 입증된다. 목지국의 위치 비정에도 많은
논란이 있지만, 지리적 여건·문헌자료·고고학자료에 근거할 때 천안 일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천안지역에 중심을 둔 목지국이 3세기 중반 단계까지 마한사회의 주도권을 장
악하고 있기 때문에 3세기 단계까지의 백제국의 범위는 경기도 일대를 그리 벗어나지 못
했다고 생각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자료를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이와 관련하여 최근 중서부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조사되는 주구묘(周溝墓)가 주목된다.
미호천 유역권에 해당하는 천안 청당동(淸堂洞), 청주 송절동, 청원 송대리유적과 금강
중하류유역의 대전 궁동(宮洞), 공주 하봉리(下鳳里), 서천 오석리(烏石里)·당정리(堂丁
里), 보령 관창리(寬倉里), 군산 조촌동(助村洞), 익산 영등동(永登洞)·율촌리(栗村里) 유적
등 많은 유적이 조사되었다. 3세기대 백제국의 범위와 관련하여서는 미호천 유역권의 유적
이 큰 의미를 갖는다. 토광묘 중 주구묘가 확인되는 이들 유적에서는 원저단경호(圓底短頸
壺)와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가 조합을 이루어 출토되고, 청당동과 송대리유적에서는 청
동마형대구(靑銅馬形帶鉤)·환두대도(環頭大刀) 등이 출토되었다. 분묘의 조영 시기는 대
체로 3세기가 주를 이루는데 하한이 3세기 후반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주구묘의
조영주체는 바로 토착집단인 마한세력이며, 마한세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목지국의
중심지는 천안일대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처럼 천안 일대에 마한의 맹주국인 목지국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은 백제가 3세기 중반까지는 충남북 일원을 장악하지 못했음을 의미
한다.
3세기 중반 단계까지 경기도 일원에 한정되었된 백제의 영역이 이후 크게 확대될 수
있었던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이는 3세기 중반 한 군현 공격의 주체로 백제 고이왕이 대
두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방군(帶方郡) 기리영(崎離營) 공략의 주체인 신지(臣智)에
대해서는 목지국 진왕(辰王)설과 백제 고이왕설이 대립되고 있으나, 여기서의 신지는 {삼
국사기} 고이왕 13년조(246)에 나온 바와 같이 백제의 고이왕이다. 당시의 정황에 따르면
242년 고구려의 서안평(西安平) 공격에 대응하여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 丘儉)이 정
시 5∼7년(244∼246) 2회에 걸쳐 고구려를 공격하는데 낙랑태수와 대방태수 휘하의 군대
까지 동원되었다. 이 틈을 타 고이왕이 군현민을 잡아왔다가 되돌려준 사건이 있었던 것인
데, {삼국지} 위서에는 한(韓)이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하여 대방태수 궁준(弓遵)이 전사하
고 마침내 한이 2군에 의해 멸해진 것만이 기록되었던 것이다. 마한사회의 주도권이 백
제국으로 옮겨지게 되었음은 {진서(晉書)}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진서}에는 3세기 후반 동이제국의 내헌·내부기사가 나오고 있다. 마한주(馬韓主)·진
한왕(辰韓王)·동이십일국(東夷十一國)이 견사의 주체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마한주'의 실체에 대해 여러 견해가 제기된 바 있다. 백제국이 주체가 되었다는 견해, 시
기에 따른 견사 주체의 변화를 상정하는 견해, 마한지역에 있던 복수의 연맹체가 독자적으
로 교섭을 했다는 견해 등 실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문헌상으로는 거의 한계에 봉
착한 마한주의 실체를 밝혀줄 수 있는 고고학자료도 그리 많지 않다. 서진(西晉)과의 교역
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자료는 몽촌토성(夢村土城)과 홍성 신금성(神衿城) 유적에서 출토된
서진의 회유전문도기편(灰釉錢文陶器片)이다. 그런데 백제국의 중심지인 몽촌토성은 물론
이거니와, 홍성 신금성유적 또한 출토토기로 보아 3세기 말∼4세기 초 비교적 이른 시기부
터 백제 영역 내에 포함된 생활유적이라는 점이다. 서진대에 유행한 문양이나 기종의 영
향을 받은 토기상과 과대금구( 帶金具) 등이 한강유역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당시 서진
에 견사한 주체가 백제국이었음을 입증하는 하나의 방증자료가 된다. 따라서 3세기 후반
서진 견사의 주체는 백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4세기 중반 단계에는 백제가 고
구려나 우문부(宇文部)·단부(段部)와 병칭될 정도의 세력으로 성장했음이 {진서} 모용황
전(慕容 傳)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3세기 단계까지 백제의 영역은 경기도 일원에 국한되었으나,
3세기 중반 한군현에 대한 대규모의 공격으로 마한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이후 중국과
의 교섭에 있어 주체가 됨으로써 대내외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다. 4세기 초 한반도에
서 중국 군현이 축출된 이후에는 백제의 마한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확대되어 나갈
수 있었다.

2. 4∼5세기 금강유역권 및 해안지역의 교역거점 확보
{삼국사기} 기록에는 고이왕부터 근초고왕대에 이르기까지 축성이나 전투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4세기 단계의 영역 확대 과정을 추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온조왕
13년의 기사가 3세기 단계 백제의 영역과 대체로 일치하고, {삼국사기} 기사 자체가 백제
성장·발전과정의 개략적인 순차는 반영한다고 생각되므로 온조왕 13년 이후의 일련의 축
성기사를 통해 백제의 남방영역 확대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온조왕 24년 마한과의 분쟁을 일으켰던 웅천책(熊川柵), 온조왕 27년 마한을 멸하고 축
조한 대두산성(大豆山城), 온조왕 36년 축조한 탕정성(湯井城) 등의 지명은 아산, 온양일대
로 비정된다. 성곽에 대한 연구가 좀더 활발히 진행된다면 좀더 확실한 근거를 밝힐 수 있
을 것이나 현재까지의 연구성과로 보았을 때도 이 지명비정 자체는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4세기 단계부터 전쟁을 통한 영역확대의 거점으로 성곽의 축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온양·아산일대에 대한 영역의 확보 또한 4세기대로 생각되는데, 이는 천
안지역에서 조사된 토광묘유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천안 성남면 화성리(花城里)유적과 천안 성남면 용원리(龍院里)유적
을 들 수 있다. 화성리유적에서는 서울지역 백제고분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심발형토기·
직구단경호(直口短頸壺)·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등이 출토되어 천안지역이 서울지역
과 동일한 문화권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토기류와 함께 출토된 동진제(東晋製) 청자
반구호(靑磁盤口壺)나 철제 은상감 환두대도가 모두 4세기 중·후반으로 편년되기 때문에
이 유적의 연대 또한 4세기 중반∼후반으로 볼 수 있다. 4세기 중반∼후반 단계에 서울지
역과 동일한 문화적 양상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4세기 전반 단계에는 백제의 세력권 하에
편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성리유적보다 시기적으로는 늦지만, 토광묘 137기와 수혈식석실(곽)분 13기가 조사된
용원리유적도 주목된다. 토광묘에서 흑색마연토기 등의 토기류와 은상감환두대도·삼엽형
(三葉形) 환두대도 등 무기류, 등자·재갈 등 마구류, 금제 이식 및 옥제품 등의 장신구류
등이, 석실분에서는 금동제 단봉문(單鳳文) 환두대도와 중국제 흑갈유천계호(黑褐釉天鷄
壺), 흑색마연토기 등의 토기류, 철모 등의 무기류, 등자 등의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흑색마연토기는 가락동 2호분 출토 흑색마연토기와 동일하고, 중국제 흑갈유천계호는 4세
기 후반∼5세기 전반의 것으로 편년되며, 단봉문 환두대도도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이다
청주 신봉동유적에서는 토광묘 228기와 횡혈식석실분 3기가 조사되었다. 중국제의 청자
류는 없었지만 4세기 중·후반∼5세기 중·후반으로 비정되는 이 유적에서도 철제삼엽환
두대도, 전(傳) 신봉동출토 은상감환두대도 등 위신재(威信財)가 출토되어 수장급의 무덤
이라 할 수 있다.
천안·청주 일대의 이들 유적은 약간의 시기적 편차가 있고 위세품의 등급에 있어서도
차이가 보이지만, 토광목관묘가 중심 묘제를 이루고 타날된 심발형토기나 광구장경호·직
구단경호·난형호·유견호 등 한강유역의 백제토기와 동일한 양상이 나타나므로, 백제
의 세력권 하에 편제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 유적에서 발견된 중국제 물품은 중국
과의 직접적인 교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백제 중앙에서 각 지역의 유력 수장층에게 사여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위신재의 사여를 통해 중앙과 일정한 관계를 맺게 한 것
이며, 지방관을 파견하여 통치한 근거는 아직 찾을 수 없다.
중국제 물품의 존재와 관련하여서는 원주 법천리(法泉里)유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
천리유적은 1973년 청자양형기(靑磁洋形器), 청동초두(靑銅 斗) 등의 매장문화재가 신고
되어 학계의 관심을 끈 이래 1999년에 들어 정식발굴조사가 행해졌다. 토광묘 1기, 횡구
식석실분 1기, 횡혈식석실분 2기, 횡구식석곽묘 2기, 파괴분 2기가 조사되었으며, 시기는 4
세기∼6세기말에 걸친다. 새로 발굴된 유물은 주로 1호분 출토품들로 금제세환이식(金製細
環耳飾) 1쌍, 등자( 子), 행엽(杏葉), 운주(雲珠) 등이다. 1호분과 3호분이 우편도 횡혈식석
실분으로 추정되는데 궁륭상(穹?狀) 천정부는 파괴되었으나, 벽석과 바닥의 상태는 양호
한 편으로 5세기 중반 정도로 편년된다. 남한강과 섬강이 교차되는 교역의 중심지로서 예
계지역 진출의 교두보 내지 신라 견제의 요충지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중
앙으로부터의 위신재의 사여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사실이 있다. 토광묘가 중심 묘제를 이루기는 하지만
용원리유적에서는 수혈식석실분이, 신봉동유적에서는 횡혈식석실분이 등장한다는 점과 법
천리유적에서도 5세기 중반 단계의 횡혈식석실분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5세기 중반 단계로
추정되는 횡혈식석실분은 금강 이남인 익산 입점리(笠店里)고분에서도 확인된다. 5세기
중엽 단계에 백제 중앙에는 보이지 않는 횡혈식석실분이 청주 신봉동이나 원주 법천리, 익
산 입점리 등지에서 축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백제 횡혈식석실분의 전개 양상에 새로운 시
사점을 제공한다. 횡혈식석실분의 출현 자체는 더욱 많은 자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리적
인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횡혈식석실분이 웅진도읍기 이후 백제 중앙의 묘제로 대
두되게 된 데는 웅진천도를 계기로 한강이라는 지역적 기반을 상실한 백제 왕실이 백제
영역 내에 있는 유력 수장층을 적극적으로 포섭하여 지배층으로 삼는 등 지방세력을 중앙
정계에 적극 등용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한다. 적어도 횡혈식석실분의 초기단계에는
웅진을 중심으로 한 백제 중앙의 묘제가 이들 지역에 확산된 것이 아니라, 웅진 천도 이후
주요 지역의 수장층이 영위하고 있던 고분문화가 중앙의 묘제로 수렴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중심묘제로서 횡혈식석실분이 정착된 것이 아닐까 억측해 볼 뿐이다.
한성함락 후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게 된 사실은 웅진지역을 포함한 금강유역권에 대
해 백제의 지배력이 이미 행사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고 하겠는데 금강유역, 엄밀히는 금
강중하류지역에 대해 백제가 지배력을 행사한 시기는 언제이며, 금강유역권의 하한은 어디
까지로 설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금강유역권의 확보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년간(神功年間) 기사의 의
미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공년간 기사를 종래 문헌사학계의 통설대로 근초
고왕대 마한잔여세력 정복의 근거로 본다면, 금강유역권의 확보 시기나 금강유역권의 하한
또는 영산강유역권의 상한을 따져볼 필요도 없으나, 최근 영산강유역 일대의 고고학자료는
종래의 통설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게 되었다.
소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과도 맞물려 해석에 많은 논란이 있는 왜(倭)의 가야
7국 평정 기사는 근초고왕대의 전라도방면과 가야지역 진출을 윤색한 것으로, 백제가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일본열도와의 교역거점을 확보하여 왜와 직접적인 교역을 하게 되
었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가야 7국 평정이 가야지역에 대한 영토적 복속을 의미하지 않
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해진(古奚津) 및 침미다례( 彌多禮)의 점령도 영산강유역의 세력집
단에 대한 영토적 복속이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또한 황전별(荒田別)·목라근자(木羅斤
資) 등이 이끄는 왜군과 근초고왕·태자 귀수(貴首)의 합전으로 항복했다는 '비리(比利)'
이하 4읍 내지 5읍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고사산(古沙山)'이란 지
명을 미루어볼 때 이들 지명은 전북 일대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삼국사기} 온조왕 36년
조에도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을 축조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신공기의 고사읍, 고사산
과 연결시켜 본다면 고사부리성, 즉 고부지역이 당시 백제의 영역 확대과정에서 대단히 중
요한 위치에 있었고, 그 지역을 근초고왕대에 지배영역화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신공기 기사에서는 백제의 영역확대방식 자체가 내륙지역을 통한 점진적인 지배영역의
확보 방식 뿐만 아니라 해안을 통한 교두보적인 거점 확보의 방식으로도 행해졌음을 시사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갖는 유적으로 앞에서 살펴본 홍성 신금성유적과 부안 죽막
동(竹幕洞) 제사유적을 들 수 있다. 홍성 신금성유적은 천수만(淺水灣)으로 통하는 포구에
인접해 있다는 중요성으로 인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해안을 통한 마한지역 진출의 교두
보 역할을 했을 것이다.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의 출토유물은 3세기 후반∼7세기 전반의 시
기적 분포를 보이지만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이 중심연대를 이루는 유적이다. 토기류
에 있어서는 백제계가 주축을 이루나, 대가야 계통의 철제무기·마구류, 왜계의 석제모조
품 등 왜, 가야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백제지역에서는 해남 월송리(月
松里) 조산고분을 제외하고는 출토지가 불명인 검릉형 행엽(劍菱形 杏葉)이 죽막동유적에
서 발견되어 부안지역이 항해상의 요지로서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가
야계의 마구류 등이 많이 보이는 해남 월송리유적 또한 항해상의 요충지에 해당하는 유적
인데 신공기 기사의 고해진이 강진 또는 해남으로 비정되고 있는 것과 관련시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공기 기사를 백제가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에 전북의 일부 지역까지는 지배영역으로
확보했으나, 영산강유역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독자성이 강조되는 영산
강유역권의 상한선은 어디일까?
전라북도가 노령산맥을 경계로 서쪽의 평야지대와 동쪽의 산간지대로 나뉘고, 정읍-장
성간의 노령(蘆嶺)이 전남북을 잇는 중요 통로였다는 점에서 일단 노령산맥이라는 지형적
장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청동기시대 이래 백제지역에서도 계속 조영되고 있는 옹
관묘의 분포양상에서도 전북지역은 영산강유역에 비해 고창 송룡리(松龍里)·신월리(新月
里) 등을 제외하고는 전용옹관묘가 많지 않고 대형분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차이를 보인
다. 최근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구간인 군산-고창 구간에서 대형옹관편이 수습되기도 하였
으나, 4세기 후반 이후는 영산강유역과 같은 대형 옹관고분의 밀집 현상을 상정하기는 곤
란하다.
전북지방에서 조사된 석실분의 분포 양상도 참고가 된다. 금강 최상류수계인 장수나 섬
진강수계인 임실과 남원일대의 석실분은 백제의 가야지역 진출과 관련된 것이므로, 노령산
맥 이서에 국한을 시켜본다면 비교적 이른 시기의 횡혈식석실분은 금강 하류유역에 분포
한다. 익산 웅포리(熊浦里) 고분군은 5세기 중·후반의 수혈식석실분이 중심이 되나, 6세기
전반의 횡혈식석실분이 출현하기 때문에 웅진천도 이후 백제 중앙의 묘제가 침투해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전북 북부지역인 익산·군산·옥구·김제·완주·전주 일대에 횡
혈식석실분이 주로 분포하고 시기적으로도 6세기 전반∼7세기에 걸치는 데 반해, 전북 남
부지역에서는 정읍 은선리(隱仙里)에서만 백제말의 횡혈식석실분이 조사되었을 뿐이어
서 백제 중앙문화의 침투 시기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지형
적인 여건이나 고고학자료로 볼 때 전북 남부의 일부 지방은 영산강유역권과 연결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백제는 4∼5세기 단계에 천안-청주일대에서 비롯하여 금강중·하류유역, 더 나
아가 노령산맥 이북까지 지배영역으로 확보하는 한편 한반도 서남해안의 항해상의 요충지
에 교역의 거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5∼6세기 단계까지 대형 옹관고분을 축조한 영산강유
역권에 대한 본격적인 영역화작업은 웅진천도 이후에야 가능했다.

3. 5∼6세기 영산강유역의 영역화
웅진천도 이후 금강유역일대가 백제사의 중심무대가 되면서, 백제 중앙정부는 한강유역
의 상실에 따른 인적·물적 자원의 손실을 영산강유역에 대한 지배력의 행사로 보완하고
자 했다. 영산강유역권으로 대표되는 전남지역의 토착사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있지만, 영산강유역이 가장 늦게 백제의 지배영역으로 편입된 지역인 것만은 사실
이다.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력이 행사되기 전의 영산강유역 토착사회의 성격을 먼저 정리해보
기로 하자. 영산강유역의 중심 묘제는 대형 옹관고분이다. 영산강유역의 옹관고분은 성인
매장용의 전용옹관 사용, 하나의 분구 속에 몇 기의 옹관을 매장한 다장묘(多葬墓) 형식을
띠는 점, 분구 상층부에 매장시설을 위치시킨 지상식(地上式)을 취한 점, 다양한 분구 형태
의 채택, 분구 둘레에 주구(周溝)를 파돌린 점 등이 특징적이다. 지역별 분포현황을 보
면, 영암군에서는 대략 22개, 나주에서는 12개, 함평에서는 11개 정도의 옹관고분군이 조
사될 정도로 옹관고분이 집중분포하고 있다. 영광·광주·무안·해남·강진지역에서도 옹
관묘군이 조사되었으나, 봉분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고, 군집 현상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20∼30기씩 밀집되어 있는 영암 시종면, 나주 반남면, 함평 월야면·학교면 등지가 옹관
고분의 중심지역이다. 영암 시종면(始終面)의 내동리(內洞里)·와우리(臥牛里)·옥야리(沃
野里)·신연리(新燕里)·금지리(金枝里)·만수리(萬樹里) 일대의 옹관고분은 넓게는 3세기
후반∼6세기 전반, 중심시기는 4세기대가 된다. 나주 반남면(潘南面) 고분군은 신촌리(新村
里)와 덕산리(德山里)는 옹관고분만이, 대안리(大安里)는 석실분과 혼재하고 있는데 시기적
으로는 5∼6세기에 해당한다. 신촌리 9호분 을관에서 출토된 금동제 관모(冠帽)와 금동신
발, 금동이식, 용봉문(龍鳳文) 환두대도 등은 피장자의 성격, 더 나아가 영산강유역 옹관고
분 축조세력의 성격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영산강유역에 5세기∼6세기 전반까지 거대한 봉분을 가진 대형의 전용옹관이 분묘로서
사용되고, 금동관 등의 위신재가 옹관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는 점을 근거로 백제 중앙의 왕
과 비견될만한 강력한 토착수장층의 존재는 상정할 수 있으나, 이것이 독자적인 정치체가
상정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금동관·금동신발 등은 문양상에서
미미한 차이는 있지만, 무녕왕릉·익산 입점리 등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것으로서 백
제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비록 옹관고분이라는 독자적인 묘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백제와
의 관계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문헌상에 이 지역 정치세력의 실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진서} 장화전(張華傳)의 '신미제국(新彌諸國)'이 영산강유역 옹관고
분사회를 지칭한다고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이 사료는 어디까지나 3세기
후반(282년)의 사실이라는 점이다.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의 중심 시기인 4세기∼5, 6세기 단
계까지의 정치세력을 포괄하는 용어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백제의 대대적인 정복활동이
이루어진 4세기 근초고왕단계 이후 5세기 후반·6세기 전반까지의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
회는 백제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정치체라기보다는, 역시 대외적으로는 백제의 영향권 내
지 세력권 내에 포함된 것이고, 다만 백제의 이들에 대한 지배력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
다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력이 행사되기 이전, 즉 지방관이 파견되
기 이전의 영산강유역세력을 '지방 후국(侯國)'으로 규정한 견해는 참고할 만하다. 삼국
의 세력 하에 있는 지역과 인민을 모두 포함한 개념의 국가를 상정할 때 영산강유역의 옹
관고분 축조세력은 백제 국가의 틀 속에서 운위될 수 있는 집단인 것이다. 물론 문제제기
형식으로 제시된 의견이라서 좀더 정치한 개념규정과 사례연구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고구
려나 신라의 예로 미루어볼 때 영산강유역과 같은 경우는 의례적인 공납 등의 형식으로
신속(臣屬)을 표현하는 대가로 거의 완전한 자치를 인정받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
인다.
그러면 이러한 영산강유역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단 5세기 후반·6세기 전반까지 강인하게 유지되던 옹관고분이 중앙
의 묘제인 횡혈식석실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남지역 석실분을 권
역별로 분류한 바에 따르면,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전남 서부지역에 120여개, 탐진강유
역인 전남 남부지역에 35개 내외, 섬진강유역인 전남 동부지역에 8개 내외 등 160∼170개
의 유적이 분포한다. 전체 석실분 중 영산강유역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내부구조를
알 수 있는 횡혈식석실분 또한 영산강유역에 집중분포하기 때문에 영산강유역의 횡혈식석
실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을 해보도록 하자.
<지도 1>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영산강유역 횡혈식석실분은 대형의 옹관고분이 밀
집분포된 영암·나주지방보다는 함평·무안·해남 등 서해안지역과 장성·담양·광주 등
내륙지방에 산재하고 있다. 1∼3, 4기 정도가 기본단위를 이루고 있으며, 입지상 지하 내지
반지하식 이외에 이 지역 옹관고분의 축조기법을 원용한 지상식이 보이는 점이 특징적이
다. 천정형식은 대체로 맞조림식과 사벽수직식이다. 연대는 넓게는 5세기 후반∼7세기 중
반이나, 핵심적인 시기는 6세기 초∼7세기 초·중반이다. 피장주체에 대해서는 부장품과
연대에 편차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가 없다.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 이 지
역 출신의 중앙관료 내지 지방관과 토착세력 등 이 지역과 관계있는 지배자, 영암·나주지
역은 옹관고분 축조집단과 관련된 백제 지배층이되 내륙·해안지역은 중앙에서 파견된 지
방관, 토착세력집단으로 보는 것까지 견해가 다양하다. 부장유물의 차이는 지역차나 피장
주체의 신분·계층적 차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면, 옹관고분과 횡혈식석실분이라
는 묘제의 차이는 조영집단의 성격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을 일단 지적하고 싶다.
피장주체를 어떻게 규정하든 옹관고분의 횡혈식석실분으로의 대체는 백제 중앙문화의
침투임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1996년부터 1998년에 걸쳐 조사된 나주 다시면(多侍面)
복암리(伏岩里) 3호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복암리 3호분은 옹관묘 22기, 횡혈식석실분
11기 등 총 41기의 매장시설이 확인된 다장묘(多葬墓)·복합묘이다. 석실 내에 대형의
합구식 옹관이 안치된 96석실의 경우 석실분수용기의 무덤으로서 금동신발이 출토되었다.
5호 석실과 가장 늦은 시기의 16호 석실에서는 은화관식(銀花冠飾)이 출토되었으며, 5호·
7호 석실에서는 규두대도·금은장규두대도(金銀裝圭頭大刀) 등이 출토되었다. 석실의 유형
과 출토유물을 통해 피장주체의 성격도 규정할 수 있는데, 96석실의 경우 토착묘제와 새로
운 묘제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착세력이 백제 중앙문화를 흡수하고, 또한 무녕왕릉
출토 금동신발과 동일한 귀갑문(龜甲文)의 신발을 사여받음으로써 지방지배의 역할을 담
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가 백제의 관등제·신분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인 은화
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이 지역이 백제 중앙의 통치체계에 편입되었음을 의미한
다.
현재까지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은화관식은 모두 8개이다. 은화관식의 제작과 사용이
6∼7세기 단계에 행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비교적 시기가 늦은 6∼7세기
의 횡혈식석실분에서만 출토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중앙의 지배력이 미치는 시기의 지역
적 편차를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나주 복암리 3호분의 5호·16호 석실과 흥덕리 석실분
에서 제6 관등인 나솔(奈率) 이상만이 착용할 수 있는 은화관식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토착적 기반을 가진 자가 이미 중앙의 관등을 수여받고 지방관의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영산강유역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것이다.
복암리 3호분에서 일본 고분시대 후기 자료에서 보이는 규두대도가 출토된 사실과도 관
련이 있지만, 최근 영산강유역에서 조사된 장고분(長鼓墳), 소위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의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5기와 실측조사된 4기의 분포상황은 <
지도 1>과 같다. 일본 전방후원분의 중심시기가 3세기 말∼4세기 전반경인데 반해 영산강
유역은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으로 편년되고, 매장주체부 또한 석실, 주로 횡혈식석실이
라는 점에서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 축조세력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상당한 논란이 있었
다. 전방후원분이 분구 주변에 주구를 갖추고 있는 것을 서해안지역의 주구묘와 연결시키
면서 전방후원분을 자체적인 발전과정으로 파악하려는 견해도 있지만, 이 문제는 전향적으
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4세기 단계에 이미 백제와 왜의 직접적인 교역루트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부 문화 요소의 유입은 언제든지 가능했다. 더 나아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일계[왜계] 백제관료(日系[倭系]百濟官僚)', 즉 대화정권(大和政權)의 씨(氏)·성(姓)을 가지
면서도 백제의 관등 내지 관직을 가지고 왜와 백제를 자주 왕래하면서 백제를 위해 활동
하고 있는 백제사신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이들이 전방후원분의 피장자일 가능성도 있
다. 그러나 이렇게 볼 때도 이들은 어디까지나 백제 관료, 즉 백제 중앙정부의 틀 내에
있는 존재이다. 왜의 직접적인 영향 또는 왜계의 집단이 이주·정착한 증거로 보기는 힘들
며, 영산강유역 대형옹관고분 축조세력이 별개의 정치체가 아닌 것처럼 이들도 백제와는
별개의 '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세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백제의 영역 내에서 지역적으
로 보이는 독특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6세기 전반 내지 중반 단계에는 토착적 기반이 강하게 유지
되던 영산강유역에까지 백제 지방관을 두고 적극적 통제책에 나섬으로써 백제 전역에 걸
쳐 5방제가 시행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백제 지배영
역의 동방 한계선과 관련하여 백제의 가야지역으로의 진출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
자.
4세기 단계에 가야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해안에 왜와의 교역루트를 확보한 바 있
던 백제가 다시 가야지역에 대한 진출을 꾀한 것은 천도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다시 강
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인 무녕왕대였다. 6세기 초반 백제가 가야지역에 대한 공격을 통해
확보한 지역은 {일본서기} 계체 6년(512)조에 왜가 할양해준 것으로 나오는 상다리(上
唎)·하다리(下 唎)·사타(娑陀)·모루(牟婁) 등 임나 4현과, 계체 7년조에 왜가 사여해준
것으로 나오는 기문(己汶, 남원)·대사(帶沙, 하동) 등의 지역이다. 임나 4현의 위치는 정확
히 알 수 없으나, 임나 4현이 기문·대사 공격의 일종의 교두보 역할을 했고, 당시 가야지
역과 연결되는 교통로로서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이 금강과 섬진강을 연결하여 진안-임실-
남원-곡성-구례-하동을 거쳐 남해안에 이르는 경로이므로, 섬진강유역 일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전남 동부지역과 지리적 요충지인 기문·대사지역을 확보
함으로써 가야 서남부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고고학자료를 통해서는 좀더 구체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소백산맥·섬진강을 기준으로
저평한 서부지역인 남원 초촌리(草村里) 고분에서는 6세기 전반∼7세기 전반으로 편년되
는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이 조사되었고, 척문리 횡혈식석실분에서도 은화관식이 출토되어
6세기 전반 단계에 이 지역이 백제 영역화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동부산간지대인 운봉고
원에 소재하는 월산리(月山里)나 두락리(斗洛里) 고분에서는 5세기 중반이나 6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세장방형 평면의 수혈식석실묘와 석곽묘 등 가야계고분이 조사되었다. 또한 임실
및 함양, 무주·진안·장수 등지에서도 가야계 고분이 조사되었다. 따라서 운봉고원을 중
심으로 한 남원 동북부지역은 가야 영역권으로, 지리적 요충지인 남원지역에 백제와 가야
의 지역적 경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하겠다.
이후 백제는 왜와의 교역을 위해서 가야내륙지역보다는 남해안으로의 진출에 관심을 집
중시키고 있다. 특히 가야제국의 주도권이 대가야에서 안라국(安羅國)으로 변화된 틈을 이
용하여 백제는 가야지역에 대한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일본서기} 흠명 4(543)·
5년조에 나오는 백제의 군령(郡令)·성주(城主)는 이를 말해준다. 군령·성주가 설치된
지역은 임나의 하한(下韓), 남한(南韓)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야의 서남부지역,
즉 하동-함안에 이르는 지역으로 생각된다. 백제가 군령·성주를 설치한 것은 섬진강유역
으로 진출한 백제가 고구려·신라에 대비하여 임나의 방위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처음에는 군사적 목적을 띠고 진출했다가 지방관적 성격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비
록 후대의 자료이긴 하지만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진주지역이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
列城)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력이 행사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가야지역이 곧바로 신라에 병합되었기 때문에(562년) 장기간에 걸친 영
역지배는 곤란하였다. 한편 문헌기록을 뒷받침해주는 고고학자료로는 6세기 중엽 진주·함
안 등 대가야문화권에서 발견된 백제계 횡혈식석실과 백제적 요소가 보이는 묘제나 토기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백제 문화의 요소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그
것은 백제 지배력의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백제는 6세기 전반 단계에는 섬진강유역을 둘러싸고 가야와 쟁탈을 계속하다가
지리적 요충지인 기문과 대사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점차 가야 서남부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하동, 진주, 함안에 이르는 가야 남부지역에 두어진 백제 군령·성주의 통치력
은 제한되어 있었으나, 백제가 당시 새로 점령한 지역에까지 지방관을 파견할 정도의 통치
질서를 구축하였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4. 지배영역에 대한 통치방식의 변화
백제의 지방통치와 관련하여서는 종래 담로제( 魯制) 및 5부제(五部制)·5방제(五方制)
등이 주로 거론되어 왔다. 담로 기사가 6세기 전반의 사실을 반영하는 {양서(梁書)}에 수
록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담로제는 무녕왕대에 실시되었고, 사비시대에 들어와 왕도 5부제
와 전국에 걸친 5방제가 실시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지
방통치체제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담로제 및 5부·5방제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고
찰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담로의 개념 및 성격에 대한 규정을 바탕으로
담로제 실시의 상한을 올려보려는 움직임이 기조를 이루면서 그 상한이 근초고왕대까지
소급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면 담로제 실시 이전의 통치방식은 어떠했는지, 과연 근
초고왕 단계에 백제의 전 영역에 걸쳐 담로제가 실시될 수 있었는지, 담로제 이후의 지방
통치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검토해보기로 하자.

1) 담로( 魯) 설정 이전의 통치방식
중심 소국이 주변 소국을 정복하여 영역국가로 성장한 이후, 즉 중앙과 지방의 개념이
생긴 이후 지방통치조직이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영역국가 성립 이전인 3세기 고이왕대
단계까지는 지방통치체제 차원에서 언급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 다만 {삼국사기} 백제
본기 초기기록에 다수 등장하는 '부(部)'라는 용어가 지배체제와 관련하여 실마리를 제공한
다. 고이왕 이전까지는 부명(部名)이 관칭된 인명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아
마도 이 시기까지는 온조세력과 각 세력집단이 연맹체적으로 규합되어 있던 단계로 각 부
가 가진 독자성이 컸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고구려나 신라와 달리 백제에서는 지
방통치 차원에서 부가 거론되면서 이 시기의 부에 대해서도 전국을 방위별로 지역구분한
지방통치구획의 단위라 보기도 하나, 아직은 중앙과 지방의 구도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이
기 때문에 취하기 어렵다. 고이왕 이전의 부는 단위정치체적인 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고이왕대부터 전지왕 13년 이전까지는 {삼국사기}에 부명 관칭의 인명은 물론 '부'에 관
한 기사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고이왕대는 백제가 마한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해가는 시기이며, 백제국 형성의 중심세력이던 진씨·해씨·왕족을 좌평(佐平)으로 임
명하고, 주변 소국의 수장층에게 좌평·솔(率)·덕(德)의 관등을 사여함으로써 백제 중앙
에 편입시키는 조처를 취한 시기이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국왕 중심의 지배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이왕대부터 100여년에 이르는 내적인 체제정비기간을 거
쳐 근초고왕대는 국왕 중심의 일원적인 통치체제가 확립되었다. 방위명에 따른 5부체제(五
部體制)가 성립된 시기 자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이왕대부터 근초고왕대까지는 일
종의 과도기로 부체제와 국왕 중심의 일원화된 통치체제의 두 가지 속성이 병존한 시기인
것이다.
근초고왕대 국왕 중심의 일원적인 통치체제가 확립됨으로써 비로소 중앙과 지방의 구도
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영역의 변천에서 살펴본 것처럼 근초고왕대는 전북 북부
지역까지 이르는 영역을 확보했지만, 과연 이들 지역에 대해 통치구획의 분정과 각 통치구
획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작업을 시행할 수 있었을까?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에 보
이는 성(城)·촌(村)이 이 시기 백제의 지방통치단위라는 점은 인정되나, 곧바로 이어진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말미암아 백제 중앙정부가 성·촌이란 개별 분산적인 통치단
위를 묶어줄 만한 통치단위는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몇몇 논자가 주장하듯이 성 단위 위
의 광역의 행정단위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지왕 13년(417) '동북이부(東北二部)',
비유왕 2년(428) '4부'의 부는 백제의 전 영역을 대상으로 한 표현이지만 이 부는 전국을
방위별로 단순히 지역구분한 데 불과하므로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성·촌과는 어떠한 통속
관계도 상정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시기의 지방통치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근초고왕 28년(373) 300인을 거느리고 신라에 투항한 독산성주(禿山城主)의 성격이 우선
문제시된다.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을
가진 재지세력으로 보아야 할지 판단하기 곤란하다. 일개 지역의 성주가 신라에 내투하자
곧바로 백제왕이 송환을 요청하는 국서(國書)을 보내고 신라는 이를 거절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독산성주가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
었다는 것과 독산성이 요충지였다는 것만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천안 화성리, 천안 용원리, 원주 법천리 등 중국제 청자 출토 지역과 같
은 경우는 백제 세력권에 포함되거나 변경지역에 위치하여 재지적 성격이 강한 수장층에
게 중국제 물품을 사여함으로써 백제 중앙세력이 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자 한 것이
라 한다. 정비된 지방제도나 지방관의 파견이 이루어지지 못한 과도기적 현상일 것이다.
독산성주도 변경지역의 재지 수장층으로서, 중앙과의 일정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재지세력
기반을 바탕으로 그 지역의 군사적·행정적 책임을 맡고 있었던 존재로 생각된다. 그런데
근초고왕대 국왕 중심의 통치질서가 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독자성을 잠식당하게 됨에 따
라 신라로 투항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독산성주는 중앙 파견의 지방관이 아니었고, 접
경지대나 전략상 중요한 지역에 먼저 중앙 파견의 지방관을 두려고 했던 백제 중앙의 시
도는 재지세력의 커다란 반발과 저항에 부딪쳤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4세기, 5세기 전반까지의 백제의 지방통치와 관련하여서는 부(部)와 성(城)·
촌(村)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만, 부는 단순한 지역구분이며 부와 성 단위의 관계는 상
하·영속관계는 아니었다. 성 단위를 아우르는 상급의 통치단위는 성립되지 않았으며, 성
단위가 지방통치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각 지역에 미치는 중앙의 지배력의 강도가 달라
전략상의 요충지에는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되기도 했겠지만 아직은 각 성마다 중앙 파
견의 지방관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앙과 지방의 일정한 관계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취를 원활히 하거나 인민의 동정 파악, 지방 수장을 감찰하기 위
해 관리를 파견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이러한 성격의 관리들이 점차 지방관의
성격을 강화시켜 나갔으리라 생각되지만, 이 시기까지는 역시 파견된 지방관을 통한 지방
통치보다는 중앙과 일정한 관계를 갖는 지방 수장층의 지위를 인정한 채로 그들의 재지적
기반에 의존하여 지방통치를 이루어간 측면이 상당했으리라고 본다.

2) 담로의 설정
'담로'에 관한 기록은 {양서} <양직공도(梁職貢圖)> 등 중국측 사료에만 수록되어 있
다. 특히 <양직공도>는 520∼530년대에 작성되었기 때문에 6세기 전반 백제에 22담로가
존재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담로제 실시의 상한은 언제로 볼 수 있
을까?
비록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성이 함락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개로왕의 적극적인 체제
정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로왕은 대외적으로는 남북조(南北朝)에 대해 양면외교를 펴
면서 고구려에 대한 견제라는 실리를 취하고, 대내적으로는 대규모의 역사를 통해 왕권의
권위를 강화하고 친위체제를 구축하였다. 그 중 주목되는 것이 개로왕 21년 [나라 사람들
을 모두 징발하여] 쌓은 왕성(王城)의 수리 조치이다. 이는 국가의 관할 하에 전 인민을
동원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근초고왕대 이래 별다
른 지방통치의 진전을 못하다가 개로왕대 왕권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체제정비의 결과 지
방통치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위서(魏書)} 동이전의 백제의 외교기사
에 나오는 지명 + 왕·후호(王·侯號)와 담로제의 관련성에 주목한 바 있다. 472·490·
495년 중국에 봉작(封爵)을 요청한 사례를 보면 후에서 왕으로 승진하거나, 봉지(封地)가
변경된 경우, 동일 지명에 임명된 인물이 바뀐 경우, 동일 지명에 왕호와 후호가 같이 나
오는 경우 등 다양한 면모가 드러난다. 왕·후호가 지역명을 관칭하고 있고, 이처럼 역동
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왕·후제를 단순히 의례적이라거나 대중국관계상의 필
요에서 나온 조치로만 한정시킬 수 없게 한다. 중국 남북조나 흉노(匈奴) 등 주변 제국에
서도 종실(宗室)을 지방장관으로 삼음으로써 황제의 지배력을 강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백제에서도 왕족을 지방관으로 파견하여 국왕의 지배력을 강화시키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왕·후호를 제수받은 사람을 분석해보면 458년(개로왕 4) 단계에는 전체 11인 중 왕족
8인이 장군호(將軍號)를 받고 있고, 490년에는 왕·후호를 받은 4인 중 3인이 왕족인 여씨
(余氏)이며, 495년에는 4인 중에 사씨(沙氏)·해씨(解氏)·목씨(木氏) 등 유력 귀족이 3인
을 차지하고 왕족은 1인도 보이지 않는다. 왕족의 비중이 점차 줄어든 것은 웅진천도 후
새로 왕권의 기틀을 잡기 위해서 지배세력을 재편한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웅진·사비시
대에 중앙정계에 신진세력을 적극 등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세력의 향촌 장악력을 이
용하여 지방지배를 원활히 하려는 목적에서 신진세력을 본적지의 지방관으로 임명하는 사
례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신진세력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자제종족(子
弟宗族)을 파견해서 다스리게 했다는 기사와 상치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양서}에 나
온 자제종족에 왕족만이 아니라 고위관료, 신진세력 등 의제적인 관계까지 포함된 것으로
확대해석함으로써 오히려 담로제를 지방통치체제로서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
이다.
왕·후호 소지자를 지방관으로 볼 수 있다면 왕·후에 관칭된 지명의 지역적 범위도 '매
로[라](邁盧[羅])'의 예에서 보듯이 새로 영역화한 전라도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왕도
에 가까운 지역도 포함되기 때문에 백제의 전 영역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
왕·후호에 관칭된 지명이 실제의 봉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봉지의 규모는 바로 담로의 규
모로 연결된다. 소국-담로-군으로 이어지는 통치단위의 변화가 상정되므로 대체로 후대의
군(郡) 정도의 규모로 볼 수 있다. 담로는 지방관이 파견된 하나의 거점으로서의 성의 의
미보다는 일정 범위의 관할구역을 갖는 행정구역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몇 개의 촌이 모
여 하나의 성을 이루고, 이 성이 몇 개 모여 하나의 통치단위를 이루는데 그 성 중 중심이
되는 성에 지방관이 파견된 체제로서, 성·촌의 분산성을 극복하기 의해 국가적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설정한 통치단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담로는 6조시기 변용된 중국의 군현제를 하나의 모식으로 받아들였던 백제에서
왕족 및 고위 관료를 각 지방의 왕·후로 분봉(分封)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원활히
하고자 한 것으로 봉건제적인 외형을 차용했으나, 중앙권력의 강화라는 군현제적(郡縣制
的) 지배원리가 작용한 것이다. 성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의 독자성이 인정되고, 실제적으
로 각 지역에 미치는 중앙정부의 통제력에는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단일한 통치체제
를 구현코자 한 것이 담로에 의한 지역지배의 특징이다. 따라서 후대의 군에 해당하는 지
역단위의 설정, 중앙권력의 통제를 받는 지방관의 임명이라는 차원에서 담로의 설정을 5방
제의 성립과정으로서 파악할 수 있다.

3) 5방제(五方制)의 성립
담로제에서 5방제로의 계기적인 발전이 아니라 5방제의 성립과정으로서 담로 설정의 의
미를 규정한다면,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방(方)·군(郡)·성(城)이라는 통치단위를 가진
5방제가 확립되었을까? 중국 군현제의 정비과정 및 이후 군현제의 전개 양상에서도 확인
되듯이 군현제의 모습 자체는 시기적으로 차이를 보이지만 최하위단위가 현(縣)이라는 것
은 불변이다. 마찬가지로 백제에서도 '성(城)'이 최하위 단위이다. 5방제 하에서는 성주(城
主) 또는 도사(道使)라 칭해지는 중앙 파견 지방관에 의해 관할되는 군사·행정의 기본단
위라는 점에서 근초고왕대의 성 단위에 비해 발전적인 면모를 보인다. 당시 현제(縣制)의
실시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이 성이 현급(縣級)의 성인 것만은 틀림없다.
성 단위의 지방관이 민에 대한 수취를 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지방 유력세력자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재지세력의 활약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시기에건 존재했던 것으로 촌
(村) 단위에서의 재지세력의 자치력을 인정해주는 것이 백제 지방통치의 특징적인 면 중
의 하나였다. 신라에서는 촌 단위에도 지방관을 파견하고 촌주제(村主制)와 같이 재지세력
을 중앙의 통치체계 내에 편입시키는 조처를 취함으로써 철저한 지방통치를 행했던 것이
다.
담로의 연결선상에 있는 군(郡) 단위는 사비천도 이후 체제정비과정에서 빠른 시일 내
에 백제 전역에 정착되었다. {일본서기} 흠명 4(543)·5년조에 '군령·성주'라는 표현이 나
오므로 530∼540년대에는 담로가 '군'으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군은 지방통치의 핵심으로서
각 군마다 군장(郡將) 3인이 있는데 이는 방 단위의 지방관인 방령(方領)·방좌(方佐)와
같이 서열상의 차이가 있는 군 단위 지방관에 대한 합칭일 가능성이 높다.
5방(五方)은 영역 내의 방위를 고려한 위에서 왕도(王都)를 중심으로 전국을 지역구분한
것으로 수도권 보위를 위한 군관구적(軍管區的) 성격이 강한 통치단위이다. 방 단위의 장
관인 방령은 달솔 이상의 관등 소지자가 담당하였으며, 직속군대로서 상비군 700∼1200인
을 거느렸다. 5방의 중심치소인 5방성(方城)은 {한원(翰苑)} {주서(周書)} 등에 왕도로부터
의 거리, 구체적인 지명, 규모 등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북방성(北方城, 웅진), 동방성(東
方城, 은진), 중방성(中方城, 고부)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나, 서방성(西方城)·남방
성(南方城)의 위치 비정과 관련하여 논란이 많다. 서방성은 서산 또는 보령, 남방성은 남원
이 아닐까 한다. 각 방에는 6, 7 내지 10군이 소속되어 있고 군 아래에는 성이라는 통치단
위가 있기 때문에, 5방제는 군·성 위에 군관구로서의 방을 설정해서 군사적 지배를 꾀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국의 읍락(邑落)을 재편한 기본적인 통치단위인 성을 몇
개 아울러 5세기 중반 담로가 설정되고, 담로가 군으로 개편되기 이전 담로의 상위 통치단
위로서 방이 갖춰짐으로써 5방제의 통치단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방, 군, 성이라는 명칭을
가진 완비된 지방통치체제로서의 5방제가 확립된 것은 군의 실체가 확인되는 6세기 중반
단계이다. 5방제가 확립된 6세기 중반 단계는 백제가 영산강유역까지 직접적인 지배영역화
를 꾀했던 시기와 바로 일치하는 것이다. 백제 5방제의 확립과정도 중국 군현제의 정비과
정과 마찬가지로 상급의 통치단위가 갖춰진 후 하위의 통치단위가 분화된 것이 아니라, 하
위의 통치단위가 먼저 형성된 후 그 위에 상급의 통치단위가 점차 갖춰지게 되면서 가장
하위의 단위인 성, 중간단위적인 성격을 띠는 군, 그 위에 가장 광역의 통치단위로서 방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나오는 말
이상에서 개략적으로나마 문헌자료와 고고학자료를 접목시켜 백제 지배영역의 변천과
그에 따른 백제 지방통치체제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3세기 중반 고이왕대 단계에 한 군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면서 점차 마한사
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백제의 영역은 경기도 일원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 시기까지는
온조로 대표되는 백제 건국의 주도세력이 여타 세력집단과 연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지
방통치체제 차원에서 언급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고이왕부터 근초고왕 단계의 체제정비기
또는 과도기를 거쳐서 근초고왕대에 백제는 국왕 중심의 일원화된 통치체계를 갖춘다.
4세기 초반 백제의 성장에 있어 일종의 장애요인이던 한 군현이 한반도에서 축출되고,
천안지역에 중심을 둔 목지국세력이 퇴축됨에 따라 더욱 더 남방영역을 확대해간다. 근초
고왕단계에는 금강유역권, 즉 금강중하류유역은 물론 영산강유역권의 상한선이라 할 수 있
는 노령산맥 이북의 전북 북부지역까지 영역을 확대해가고, 서남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왜와
의 교역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영산강유역권에 대해서는 일정한 영향력만이 행사되었을
뿐 대체로 그 지역의 독자성이 유지되는 후국(侯國) 정도의 관계가 유지되었다. 이 시기
백제의 지방통치단위는 <광개토왕비문>에서도 확인되듯이 성(城)·촌(村)이었다. 비록 지
배영역의 대대적인 확대는 가져왔으나, 근초고왕 말기부터 계속된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
해 더 이상의 지방통치의 진전을 가져오기는 힘들었다. 개별적인 성 단위로 중앙정부와 관
계를 맺고 있을 뿐 몇 개의 성을 아우르는 상위의 행정단위인 담로( 魯)는 설치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확대된 지배영역에 대한 통치체제의 정비는 대내외적으로 적극적인 왕권강화책을 추진
했던 개로왕대에 와서야 가능했다. 개로왕의 왕권강화책은 장수왕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한
성의 함락과 웅진으로의 천도를 초래했지만, 중앙정부와 개별 성 단위를 잇는 중간단위적
인 성격을 띠는 담로가 설정된 것은 지방통치상의 일대 진전이었다. 담로는 후대의 군(郡)
으로 연결되는 중간통치단위이고 중앙에서 임명된 지방관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담
로 내부의 독자성도 여전히 유지되었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성, 담로로 이어지는 통치단위 위에 광역의 지방통치단위로 두어진 것이 방(方)이다. 다
시 담로가 '군'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된 것은 백제 지방통치체제가 명실상부하게 군현제적
인 체제로 정비됨을 의미한다. 방·군·성이라는 통치단위를 가진 5방제가 백제 사회에 정
착하게 된 것은 독자성이 강하게 유지되던 영산강유역을 직접적인 지배영역으로 확보하게
된 6세기 중반이었다.
최근에 들어서 많이 조사된 고고학자료까지 정리하고 좀더 체계화시켰다면 백제 지배영
역의 변화가 더욱 역동적으로 드러났을 터인데, 이들 자료들에 대한 발굴 조사 정리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므로 이는 후일을 기약한다.
일본(日本) 속의 백제(百濟)
吉井秀夫(日本 立命館大學 敎授)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 있어서 백제와 일본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특히 백제로부터 많
은 사람들이 일본에 와서 최신의 문화와 기술을 전한 사실은 여러 가지 문헌이나 금석문
자료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불교미술을 비롯해서 일본에 남아 있는 물질문화
속에도 백제의 영향이 많음이 지적되어 왔으며, 고고학 분야에서도 횡혈식석실분이나 기와
연구를 중심으로 일본 속의 백제 문화를 찾으려는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다만 신라나 가
야에 비해서 백제의 고고자료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에 일본속에서의 백제계 자료
를 찾으려고 해도 비교 자료가 없어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백제지역의 발굴조사가 늘어나면서 일본 속의 백제를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또 백제문화의 명품들이 한곳에 모이는 기회가 될 이번 특별전을
통해서 일본 연구자가 백제문화에 대한 인식을 쇄신하고, 일본과 백제와의 관계를 새로 발
견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상과 같은 한· 일 양국의 새로운
조사,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고고학적인 입장에서 일본 속의 백제에 관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개관해보고자 한다.

1. 4세기 이전의 백제와 일본
　문헌기록에 의하면 백제와 일본 대화(大和)정권 간의 정식적인 교섭관계는 근초고왕대
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설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이 시기는 백제의 세력이 크게 신장된 시
기이며, 고구려와의 대립관계를 생각해 볼 때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외교상
유익한 것이었다. 또 일본 쪽도 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자원과 기술을 입수하는 데에 있
어서 백제와 교섭의 성립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 단계에도 백제지역과 일본열도 사이에는 교섭관계가 완전히 없었던 것
은 아니다. 이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발굴성과, 특히 토기류의 출토를 통해서 어느 정도
엿볼수 있다. 즉 대마도(對馬島)에 있는 長崎縣 塔ノ首石棺群의 3호 석관에서는 와질양이
직구호(瓦質兩耳直口壺 : 圖1-1)가 출토되었다(小田외 1974). 조사자는 같이 출토된 야요
이토기를 통해서 그 연대를 1세기 후반 내지 2세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小田1978).
또 福岡縣 博多遺蹟群의 17차 조사의 SD159에서는 포류식토기(布留式土器)와 함께 어깨
부분에 거치문이 시문된 와질직구호(瓦質直口壺 : 圖1-3)가 나왔다(福岡市敎委1985). 이와
같은 귀가 달리거나 거치문이 시문된 와질직구호는 주로 3·4세기대 전라도의 옹관묘에서
나온 예가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서천 오석리유적(圖1-2)(李南奭1996)이나 분강·
저석리고분군(李南奭1997)의 토광묘에서도 그 부장예가 발견됨으로써 이러한 토기들은 적
어도 충남 서해안지역에까지 분포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부산 동래패총에서는 어깨부
분에 거치문이 있고 돌대(突帶)가 부가된 직구호(圖1-4)가 출토되어 주목된다(釜山廣域市
立博物館福泉分館1997). 이 직구호도 양이호 등과 같은 시기에 백제지역에서 만들어진 토
기라고 생각된다(圖1-5). 이상과 같이 아직까지는 자료가 극히 한정되어 있지만, 이러한
토기의 출토상황을 통해 한반도의 서남부에서 남해안, 대마도를 거쳐 북구주(北九州)까지
연결되는 유물의 이동 경로를 복원할 수 있고, 백제 혹은 마한 제국과 북구주 세력 사이에
어떤 교섭이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다음으로 북구주 보다 동쪽 지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兵庫縣 出合遺蹟에서 발견된 4세
기경의 요지가 주목된다(龜田1989). 이 요지는 잔존 길이 2m, 너비 1.2m, 바닥의 경사도
가 약 10도이며, 바닥부분만이 남아 있다. 이 가마는 소성부와 연소부 사이에 단이 있고,
연소부 자체가 수직으로 지하로 들어가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이와 같은 구조의 가마
는 진천 삼룡리, 산수리요지군에서 발견된 바가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지는 가마가 시공
적(時空的)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한반도의 요지 조사를 통
해서 해명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로서는 出合遺蹟 요지를 만든 사람들의 원향(原鄕)의
후보지로 백제지역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의 다른 자료로서는 岡山縣 神山古墳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마형대구(馬形帶鉤)를
들 수 있다(和田1919). 이 유물은 출토상황이 불분명하고, 다른 유물을 통해서 고분의 연대
가 5세기까지 내려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유물이 진품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東潮1992). 하지만 만약 이 유물이 진품이라고 하면, 요즈음 천안 청당
동유적과 같은 주구묘에서 많이 발견된 마형대구와의 관계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현재로서는 미비한 자료밖에 없는 상태이지만, 3·4세기의 백제계 혹은 마
한계로 볼 수 있는 고고자료가 한반도 남해안을 거쳐서 북구주 지방, 그리고 근기(近畿)지
방까지 전파되었음은 인정할 수 있겠다. 특히 지금까지는 자료가 매우 적었던 백제지역의
3·4세기대 유적 조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 시기의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 새로운 자료의 발견이 기대된다.

2. 5·6세기의 백제와 일본
5·6세기의 일본열도는 한반도로부터 철기제작기술, 제도(製陶)기술, 금공기술, 토목기술
등 여러가지 새로운 기술이 전파되어 문화적·사회적으로 크게 변화했던 시기이다. 이 변
화의 정도는 명치(明治)시대에 서구문화를 받아들였을 때와 대비될 정도로 큰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여러가지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온
사람들(渡來人)이었다. 이들 중에는 "금래재기(今來才伎)"라는 기술자집단이나 "오경박사
(五經博士)" 같은 학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백제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적으
로 보아도 이 시기는 백제문화의 영향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시기이다. 여기에서는 이들
가운데 특징적인 몇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개관해 보고자 한다.

1) 스에키(須惠器) 생산의 개시와 백제
터널형 가마에서 소성한 와질토기나 도질토기가 한반도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후에도 일
본열도에서는 선술한 出合窯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오랫 동안 가마를 사용한
토기는 제작되지 않았다. 한반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건너 온 5세기가 되어야 일본제의
도질토기인 스에키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초기의 스에키 생산은 福岡, 香川, 岡山 등에서
도 산발적으로 확인되지만, 중심적인 생산지는 大阪府의 陶邑古窯址群이었다. 택지개발에
따른 발굴조사를 통해 이 고요지군(古窯址群)이 5·6세기 일본에 있어서 중심적인 스에키
생산지였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스에키 연구의 큰 과제 중 하나가 최고의 스에키의 발견과 그 기원지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명에 큰 도움이 된 것이 陶邑古窯址群에 속한 大庭寺유적의 조사였다. 이 유
적에서는 2기의 요지(TG231號窯, TG232號窯)와 스에키를 제작한 사람들이 생활했다고 추
정되는 취락이 발견되었다(大阪府敎委외1995). 이들 요지에서 생산된 토기는 고배, 발형기
대, 옹 등이며, 부산, 김해, 마산, 함안 등 경상남도 남해안지역의 도질토기와 유사하다.
반면 일부의 고배류 등에는 일본의 전통적 토기인 하지키(土師器)의 제작기술도 엿보인다.
이상을 통해 볼 때 경상남도 남해안지역에서 온 토기 공인들이 大庭寺에서 가마를 만들고,
하지키를 만들었던 일본인 공인들을 지도하면서 스에키 생산이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스에키의 대표적인 기종인 개배(蓋杯 : 圖2-1)와 유공광구소호(有孔廣口小壺 :
圖2-2)는 大庭寺窯址나 경상남도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기종이 많이 있
는 지역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한 백제지역이다. 또 초기 스에키에만 보이는 유공 장군
(圖2-3)도 역시 영암 만수리 1호분 출토예와 같이 전라남도에서만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종은 大庭寺窯址보다 늦은 시기의 TK73요지, 혹은 TK216요지 단
계가 되어야 스에키에 일반적으로 채용된다. 이와 같은 양상으로 보아 백제지역에서 일본
으로 온 토기 공인들은 경상남도 남해안지역에서 온 공인들보다 조금 늦게 스에키 생산에
참가한 것 같다.
일본측에서는 개배나 유공소호를 일본에 전해 준 공인들이 구체적으로 백제의 어느 지
방에서 왔는지가 궁금한데, 현단계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그 하나의 실마리는 개배 외면 저
부의 조정방법의 검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직접 관찰한 바에 의하면 백
제토기 개배 외면 저부의 조정방법에는 회전깎기나 손에 들고 하는 깎기, 그리고 깎기 조
정한 다음에 다시 물손질한 것 등 다양한 수법이 보인다. 그런데 일본 스에키 개배의 경
우 대부분이 회전깎기 조정된 것이다. 백제토기 개배에 보이는 외면 저부 조정방법의 다
양성이 시간차를 나타내는 것인지, 지역차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앞으로 회
전깎기 조정이 주류인 지역을 찾을 수 있다면, 백제토기 공인들의 원향찾기는 좀 더 구체
화될 수 있을 것이다.

2) 조족문(鳥足文)이 타날된 토기로 본 백제인의 일본 이주
5세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새로운 문화요소 가운데 조리방법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4세기까지 일본에서는 적갈색 연질의 옹형토기와 노(爐)를 이용해서 밥을
지었다. 그런데 5세기에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옴에 따라 시루와 장동옹 등을
조합하여 부뚜막으로 조리하는 방법이 전파되어 일본에 정착되었다. 조리에 쓰인 토기의
대부분은 종래의 일본 토기 제작기술로 새로운 기형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토
기제작 기술인 타날기술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연질토기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일본 연구자
들은 이들을 한식계토기(韓式系土器)라고 부르고 있다. 도질토기와는 달리 연질토기는 일
상생활에서 사용된 토기이기 때문에 한식계토기에는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들어 온 것도
있겠지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온 사람들이 일본에서 그때까지 만들어 온 기법으로 만든
예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한식계토기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온 사람들의 생
활을 나타내는 유력한 자료로써 일본 고고학자들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한식계토기 가운데 확실히 백제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조족문(鳥足文)이 타날된 토기
들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북구주지방과 긴키지방에서 조족문이 타날된 토기가 발견된
바 있다. 이들 가운데 출토예가 가장 집중되고 있는 곳은 大阪府의 長原遺蹟 주변이다.
특히 NG95-36차 조사에서는 같은 조족문 타날판을 써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시루,
평저발, 장동옹 등 모두 6개의 연질토기가 한꺼번에 출토되었다(圖3-1,3,4,6,7,8)(櫻井1998).
토기의 색깔이나 흙도 같은 것이어서, 보고자는 이들 토기가 長原遺蹟 주변에서 제작되었
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같은 조사구에서는 평행선문이나 격자문이 타날된 연질토기(圖
3-2,5)와 죽막동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파수부완(圖3-9)이 출토되었으므로 백제에서
온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생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한식계토기는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의 실생활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
다. 앞으로 백제계 연질토기의 특징이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되면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도
백제인의 거주를 추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정지산유적과 대벽건물(大壁建物)
1996년에 발견된 공주 정지산유적(국립공주박물관외1999)은 무령왕의 빈(殯)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백제의 국가적인 제사유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 유적의 발견은 도래
계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본 연구자 사이에서는 다른 의미로 큰 화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유적에서 일본 연구자들이 도래계 건물로 추정해 온 대벽건물(大壁建物)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집중적으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대벽건물이란 방형의 구를 파고 구내에 크고 작은 기둥을 세운 후, 기둥 사이에 흙을 발
라서 벽을 만든 건물이다. 일본에서는 1982년에 滋賀縣 大津市 북부에 있는 太遺蹟에서
7세기대의 예가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太遺蹟의 주변에는 도래인들이 집중해서 살았다
고 문헌에 기록되고 있다. 또 고고자료를 보아도 이 지역에는 현실 평면이 정방형이며 궁
륭상 천정을 가지는 독특한 구조의 석실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토제 부뚜막의 모형품 등
이 집중해서 발견됨으로, 6세기 이후 이 지역에 도래인들이 생활한 것을 문헌과 고고자료
의 양면에서 검증할 수 있다. 그 후에도 太遺蹟주변에서는 대벽건물이 많이 발견되어서
이 건물도 역시 도래인과 관계가 깊은 건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花田1993). 太遺蹟
이외에서는 滋賀, 奈良, 大阪, 兵庫 등에서 大壁建物의 발견 예가 있고, 축조시기는 5세기
부터 7세기까지이다. 奈良縣 南鄕遺蹟群이나 大阪府 大縣遺蹟에서는 한식계토기가 나오
고, 인접해서 철 제작지를 비롯한 대형 공방지가 있어서, 대벽건물과 도래인과의 관계가
깊음은 더욱 더 명확히 해 준다.
한국의 대벽건물은 정지산유적 이외에 공산성에서 발굴된 적이 있다. 또 정식보고는 없
지만 서울 풍납동토성과 경주 월성 해자에서도 비숫한 건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취락유
적의 조사가 많지 않는 현상을 생각할 때, 앞으로 백제지역 이외에서도 대벽건물이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현상적으로는 백제지역에 발견 예가 집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
다. 이렇기 때문에 대벽건물이 발견된 일본유적에서 백제계 요소가 없는지를 앞으로 주의
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한국의 대벽건물은 제사유적이나 성곽과 같은 일반취락과
는 다른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어서, 건물 자체가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도 南鄕遺蹟群에서는 돌담(石垣)을 가지는 예가 있으므로, 대벽건물의 기능
에 대해서는 앞으로 한일 양국의 출토 예를 상호 비교하면서 검토해야 될 것이다.

4) 금공품의 전파에 관해서
철기생산기술이나 제도기술과 함께 금공품과 그 제작기술의 전파도 5·6세기의 일본에
있어서 큰 변화　중의 하나였다. 일본의 고분에서 나온 금공품의 기원을 찾는 연구는 한
반도 각지에서 나온 유물들과의 비교를 통해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 송산리
고분군, 특히 무령왕릉 출토유물과의 비교를 통해서 귀면문(鬼面文) 허리띠, 금제 귀걸이,
금동제 신발, 용봉문(龍鳳文) 환두대도, 동완 등의 일부 유물에 대해서 백제와의 관계가 지
적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가야지역의 발굴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지금까지는 백제계로 생
각되어온 유물들이 가야지역에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백제, 가야, 일본에서 공통된 요소
를 가지는 금공품을 넓은 의미에서 백제계 유물로 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열도에서 나온 유물의 경우, 이들이 백제에서 직접 왔는지, 가야를 경유해서
왔는지, 아니면 백제계 기술을 가진 공인들이 일본 열도 내에서 만들었는지를 구별할 필요
가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앞으로의 연구 진전을 기다려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여기서는 필자가 검토한 바가 있는 금동제 신발의 경우(吉井1996) 를
예로 들어 검토해보고자 한다.
한반도의 금동제 신발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바닥판만이 금동제인 신발과, 신라
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발등쪽과 발뒤꿈치쪽을 다른 판으로 만들고 이들을 발측면에서 고
정시켜서 만든 신발, 그리고 백제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두 장의 측판을 발등쪽과 발뒤꿈
치쪽에서 고정시켜서 만든 신발로 나눌 수 있다. 일본에서 나온 금동제신발은 하나의 예
를 제외하고는 모두 두 장의 측판이 발등쪽과 발뒤꿈치쪽에서 고정시켜서 만든 신발이므
로, 이들은 백제계 신발로 보아도 무난하다. 그런데 제작기술을 상세히 검토한 결과, 측판
의 전개형과 결합방법 등을 기준으로 이들을 두 계통으로 세분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주로 한반도에서 보이는 것들(圖4-2)은 무령왕릉 출토예를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반면 일본열도에서만 보이는 것들(圖4-3)은 오히려 그 후에 제작이 본격화되어 7세기초까
지 제작되었다. 후자는 일본에 온 백제계 공인들이 일본에 와서 제작한 것이라고 추정된
다. 반면 백제에 분포의 중심을 가지는 것들은 모두 백제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데,
단순히 그렇게만 판단하기는 힘든 예도 있다. 예를 들면 熊本縣 江田船山古墳에서 나온
신발(圖4-2)은 구조적·제작기술적으로 백제제(百濟製)로 볼 만한 유물이다. 그런데 같은
기술로 제작된 관(圖4-1)은 6세기대에 일본에서 유행한 이산광대식관(二山廣帶式冠)이다.
기술적으로는 "백제제"로 판단해도 되지만, 형태적으로는 일본의 독자적인 요소를 가지는
관이 신발과 함께 제작된 현상의 배경으로 어떠한 제작, 공급과정이 상정되는지는 쉽게 해
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의 일단을 십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5) 횡혈식석실분의 전파 양상
일본열도에 전방후원분이 나타났을 때에 피장자를 매장하는 시설은 가늘고 긴 목관을
안치한 다음 그 주위에 할석(割石)을 쌓아 개석을 덮는 수혈식 석곽이었다. 나중에는 목
관 대신에 석관을 쓴 경우나, 석곽 대신에 진흙으로 목관을 덮은 점토곽(粘土槨)이라는 구
조가 나타났지만, 어느 예도 한번만 매장하는 구조상의 공통점을 가진다. 이에비해 석실
의 한쪽 벽에 외부와 석실 내부를 연결시키는 통로를 만든 횡혈식(혹은 횡구식) 석실은
석실 내에 여러 번 매장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이러한 구조의 횡혈식석실이 일본열도에
출현한 것은 백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일찍부터 지적되어 왔다. 또 최근의 연구성과를
통해 북구주 지방과 긴키지방의 횡혈식석실의 전파 시기와 전파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 밝
혀지게 되었다.
먼저 북구주 지방에서 최고의 횡혈계석실을 가지는 고분은 4세기 후반에 축조된 佐賀縣
谷口古墳(圖5)이다. 전방후원분인 이 고분의 후원부에는 나란히 2기의 석실이 설치되어
있다. 석실 안에는 석관이 안치되어 있으며, 출토유물로 보아도 전통적인 수혈식 석곽이
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런데 보존정비를 위해서 재발굴한 결과 단벽의 윗부분을 입구로
해서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가 발견되어 수혈계 횡구식석실임이 밝혀졌다(佐賀縣濱玉町敎
委1991). 谷口古墳 축조 후 福岡縣 鋤崎古墳과 老司古墳에서 현실 평면이 후광전협(後廣
前狹)의 장방형이며 연도가 중앙에 붙은 본격적인 횡혈식석실과 수혈계횡구식석실이 축조
되었다. 또 熊本縣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평면이 정방형이며 궁륭상천정을 가지는 비
후형(肥後型) 석실이 나타났다. 그 후 5세기대 북구주 지방에서는 횡혈식석실이 많이 축조
되었다. 같은 시기 일본열도의 다른 지방에서는 아직 수혈식석곽이 축조되고 있어서 매장
시설의 구조상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북구주 지방 횡혈식석실의 기원지에 대해서는 아직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지금
까지 일본 연구자의 대부분은 鋤崎古墳 및 老司古墳의 석실 구조가 서울 가락동·방이동
고분군의 횡혈식석실과 유사함으로써 한성시대 백제에서 횡혈식석실의 구조가 전파되었다
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가락동·방이동고분군의 횡혈식석실분에서 출토된 토기는 6세기
후반 이후의 신라계 토기라는 사실을 통해, 이 고분들을 6세기 후반 이후의 신라고분으로
보는 견해가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유력하게 대두되는 등 따라서 양국 연구자간의 견해가
상이한 실정이다. 다만 최근 발굴조사의 진전에 따라 백제지역에서도 분강·저석리
12,13,14호분(李南奭1997)과 같이 한성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횡혈계석실이 새로 발견되
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분강·저석리고분군 석실의 경우 바닥보다 한단 높은 부분에 횡
구가 있는 점에서 북구주지방의 초기 수혈계횡구식석실과 공통되는 부분도 보인다. 이러
한 구조를 가지는 고분이 백제지역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해명되면, 북구주지방 횡혈식
석실의 출현과 전개에 백제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북구주
지방은 횡혈식석실의 구조는 받아들이지만, 부장품의 구성이나 장송의례에 관해서는 전통
적인 요소가 유지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양상은 다음에 설명할
긴키지방에 있어서의 횡혈식석실분의 출현양상과는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긴키지방에서는 5세기 후엽경에 북구주 지방과는 다른 계통의 횡혈식석실이 나타났다.
초기 석실 가운데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大阪府 高井田山 古墳이다(圖6)(柏原市
敎委1996). 지름 22m로 추정되는 원형 분구의 중심부에는 너비 2.34m, 길이 3.73m인 평
면 장방형의 현실에 우편(右偏) 연도가 붙은 횡혈식석실이 축조되어 있다. 상반부는 유실
되어 있었는데, 궁륭상천정 혹은 이것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도굴
을 당하면서도 석실 내에는 많은 유물이 남아 있었다. 이들 가운데 다리미( 斗)는 일본
에서는 거의 출토예가 없는데, 무령왕릉에 이와 유사한 것이 있다. 또 금박유리제옥(金箔
琉璃製玉)도 무령왕릉에서 많이 출토된 유물이다.
高井田山고분 석실은 판석상의 얇은 석재를 사용하고 있는 점, 우편연도인 점, 천장 구
조가 궁륭상천정일 가능성이 높은 점, 그리고 연도를 돌로 쌓아 폐쇄한 점 등에서 송산리
형횡혈식석실과의 유사성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평면형은 송산리형석실이 정
방형임에 비해 高井田山고분은 장방형임이 다른 점이다. 평면형의 차이를 중시해서 高井
田山고분의 장방형으로 된 석실의 출현시기는 무령왕릉 축조 이후로 보고, 高井田山고분의
연대도 늦게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현실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석실 가운데 표정리
1981-6호분과 같이 5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석실도 존재하므로 구체적인 조형(祖形)에
대해서는 5세기대의 횡혈식석실분 조사예의 증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高井田山고분에서는 석실의 구조와 부장품의 공통성 뿐만 아니라 장송의례에 관한 요소
에 있어서도 백제의 영향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물의 출토상황으로 보아 이
고분의 피장자는 2명이며, 석실의 주축에 평행하도록 안치되었으며, 아마 피장자의 머리는
후벽쪽을 향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피장자의 주위에서 출토된 관못으로 보아
피장자는 못으로 조립된 목관안에 안치되었다고 생각된다. 종래 일본열도 고분에서 사용
된 목관은 통나무를 그대로 이용해서 만든 것과 두꺼운 나무 판자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못을 쓰지 않았다. 5세기대 수혈식석곽 가운데 예외적으로 못이나 꺾
쇠가 출토된 예가 있는데, 이들은 가야의 수혈식석곽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러한 예에 비해서 高井田山고분에 사용된 목관은 단측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