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도예: 흙의 자유로운 조형실험과 비판적 시각

유 재 길(미술평론가.홍익대교수)

I.
1994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도예30년전' 특별전시를 마련하면서 도록에 한국현대도예에 관한 비중 있는 세편의 논문이 실렸다. 도예가 임무근 교수의 '한국현대도예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논문과 신상호 교수의
논문 '전통도예;회고와 전망', 조정현 교수의 '한국 현대도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논문이다. 이상 세편 논문은 한국 현대도예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함께 현대도예의 여러 유형분류와 전통도예와의 관계, 도예교육,
기타 한국 현대도예의 제반 문제점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비록 이들의 논문이 작가연구나 작품 분석에 있어서 비평적 시각이 뒤따르지 못하였다고 해도 연구자가 평론가나 미술사학자가 아닌 작업을 하는 도예가들로 직접적인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호소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들
은 자신의 경험과 주관적 예술관을 바탕으로 한국도예의 어제와 오늘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위의 논문에서 강조된 한국 현대도예의 제반 상황과 문제점 등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세편 논문을 서두에서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한국 현대도예의 자유로운 조형적 실험에 관한 문제점이 바로
위의 논문과 같이 한국현대도예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며, 현재 도예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밝히면서 도예의 미래를 살펴보는 일이기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현대도예 30년을 맞이
하면서 도예의 성격 규정과 도기, 자기와의 관계, 현대의 전승도자 문제, 자유로운 표현의 흙 작업과 조형성 추구, 그리고 도예교육을 비롯하여 내일을 향한 현대도예의 향방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고 한국 현대도예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

II.

한국 현대도예의 태동은 일반적으로 1950년대 이후부터 논하게 되며, '60년대 청자나 백자 등 전통도예의 부활로 서서히 현대도예가 탄생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한국 현대도예의 시작은 70년대 이후이다.
즉, 1979년 이후 서울에 있는 미술대학에 도예과가 신설되고, 실험적 도예작품이 제작된다. 이는 서구 현대도예의 수용을 생각하게 되며, 실용성이나 기(器)의 형태에서 탈피된 흙작업의 시작을 말하게 된다. 동시에 도예 개인
전과 그룹전시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이다. 이같은 시점을 생각해 볼 때, 한국현대도예는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구축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80년대로 넘어오면서 개인전이나 그룹전, 공모전 등이 더욱 활발해지고 외국의 유명 현대도예가들의 국내전 뿐만 아니라 국내 도예가들 역시 해외 유학과 전시가 빈번해지면서 독자적 자신의 작업이 등장하게 된다.
1980년 이후 도예의 경향은 기(器)에서 벗어난 순수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업이 일반화되기 시작한다. 현대 모더니즘 미술 영향을 바탕으로 기하학적 추상이나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도예 속으로 끌어드린 것이다. 유약
과 소성작업에 따른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 도예가들은 현대적 조형미의 추구를 우선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80년대 후반과 90년대 현재까지 한국 현대도예가들은 '공예'라는 기존의 개념을 벗어던지고 대부분이 순수 조형미와 탈장르를 추구하는 미술가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점에 관하여 임무근 교수의 논문에서는 한국현
대도예의 다양한 표현을 인정하면서도 현대도예에 관한 우리의 독자적 철학과 운동의 부재를 지적한다. 서구의 미술사조나 미술운동과 같은 한국 현대도예는 철학적, 양식적 발전없이 외형적 모방과 형식적 조형작업이 이루어
졌다는 비판이다.
신상호 교수의 논문에서 역시 동일한 지적과 비판으로, '60년대 이후 한국 전통도예의 현황을 파악하고 전통도예의 수용과 거부라는 흑백의 소모적인 논쟁보다 이 시점에서는 한국 현대도예를 위하여 무엇보다 1)도예제작의
과학적 기법 연구와 뒷받침, 2)합리적 도예 교육, 3)현대도예에 있어서 전통의 새로운 해석과 재창조로 새롭게 태어나야한다는 주장에 절대적 공감을 갖게 된다.
한편 조정현 교수의 논문에서는 <한국현대도예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을 조명하면서 도기의 발전사와 도기의 다양한 기법, 양식의 특성을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구체적 증거를 제시한다. 그는 우리의 전통 도예가 기형
(器形)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형 작품도 활발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현대도예의 발전을 위하여 1)산업도자 육성과 2)환경, 건축도예로의 모색 등 현대 도예의 도기 제작의 활성화와 역할증대, 그리고 영
역의 확장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III.

이와 같은 한국현대도예의 향방에 관한 연구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도예 모습은 어떻게 분류되는가?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가지로 분류가 될 수 있으나 먼저 임무근 교수의 연구논문에서 분류된 다음과 같은 8
가지를 기본으로 생각해 본다. 1)전통도예의 계승 작업, 2)전승도예에서 변형된 도자기 작업, 3)기(器)를 중심으로 유약, 문양의 새로운 실험과 형태변형 작업, 4)순수 조형 도조(陶彫)작업 5)흙에 의한 오브제 작업 6)주제가 있는
구상적 조형 작업, 7)설치 작업, 8)도예기법에 의한 환경, 건축 공예작업 등이다.
이것은 작품의 미적 개념에 다른 분류라기 보다 현재 보여지고 있는 포괄적인 현대도예의 양식적 구분이다. 필자 역시, 이같은 분류에 동의하면서 양식과 기법에 따른 세부적 구분보다 한국 현대도예의 성격을 크게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현대도예의 다양한 기법을 바탕으로 형태와 유약, 소성방법에 따른 세부적 분류가 우선되나, 본고에서는 한국현대도예의 양식과 성격을 3가지 유형으로 크게 구분하여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도예의 전반
적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첫 번째 유형은 역시, 전통도자와 같이 기(器)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것과 이를 변형시켜 현대적 성격과 작가 개성을 담고자하는 도예이다. '60년대 이후 우리의 도예는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의 재현이 이루어지면서 전승도
자의 틀을 잡아 나가게 된다. 이후 많은 도예가들은 과거에 이루어졌던 도자기의 무조건의 모방과 흉내가 아닌 시대적 성격과 개성을 담아내는 도예를 추구한다. 비록 이같은 경향을 추구하는 한국의 도예가들의 수가 점점 줄
어들고 있으나, 이제 이들에게 있어서 전통은 멍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뿌리와 기본 바탕이 되어야한다는 확신 있는 우리의 현대도예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도자의 기본인 물레성형과 유약, 소성 작업에서 만들어진 도예 역시, 실용성이나 장식성, 상품성보다는 도예가의 개성적 미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경향은 비록 기형과 그 변형된 모습으로 한정시키고 있으나, 다양한 형
태와 색채의 변화로 대칭과 비대칭, 균형과 불균형, 조화와 부조화 등 대립적 조형 개념과 기형에서 나오는 시대적 조형미를 탐구하고있다. 흙의 근원성 모색으로 장작 가마를 통해 소성한다거나 원시적 표현으로 원초적 힘을
기형에 담고자 하는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이같은 전통적 미의 양식에 새로운 기법 실험이 이루어지고 산업도자의 조용한 혁명을 불러일으키면서 현대적 미의 개념을 창조적으로 기형에 삽입시키고자 하는 몇몇 도예가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기(器)를 바탕으로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수가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이 가슴아픈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다시 반복되지만 비록 물레성형과 유약, 소성에
의한 도자 작업이 여러 가지 제약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해도 어떠한 변형이든 도예인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다시 부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경향이 현재 10%-20%밖에 안된다고 하나 어느 순수 예술보다 더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보여주었던 기(器) 중심의 도예작업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 맥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물레성형을 떠나 흙과 유약, 소성에 의한 추상적, 구상적 형태 탐구와 오브제 도예라고 말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의 조형성 탐구이다. 소위 도조(陶彫)나 조형작업이라고 불리는 이같은 경향은
한국 현대도예의 양식분류에 있어서 '70년대 말 30% 밖에 안되었던 것이 '80년대 후반 이후 현재에는 80% 이상이며 점점더 증가한다는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세계적 추세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우리의 경우는 너무 지
나친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도예가들은 도예라는 말 대신 도조(陶彫)나 혹은 도(陶)를 생략한 흙작업, 또는 조형작업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미국의 현대도예 경우, 이러한 경향은 이미 '5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60년초부터 피터 볼커스에 의한 추상표현주의 도조(陶彫)나 미국 현대도예가들에 의한 팝아트 경향의 '흙 오브제'(Clay Object) 작품들, 그리고 도자
기법에 의한 극사실주의 표현양식 등이 오늘날 한국 현대도예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추상조각에 가까운 이같은 경향의 도예작업은 우리의 도예교육 내용과 도예의 개념을 바꾸어 놓는다. 이제 이런한 경향의 도예가
들은 흙에 의한 견고한 볼륨의 입체적 조형성에 몰두하게 되며, 때로는 유약이나 소성 과정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개성적 조형언어 창조에 매달리는 현대 모더니즘 미술가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현대미술사조와 연결된 자발적인 도예운동이나 조형작업에 있어서 독창적 개념의 부족이다. 즉, 미국의 경우 액션 페인팅과 연결된 '60년대 추상표현주의 도예가들은 표현의 자유로
움 획득과 함께 흙, 유약, 불에의한 독특한 모더니즘 도예작품이 제작되면서 나름대로 당위성을 갖고 현대미술사조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이에반해 우리에게는 모더니즘 미학이나 독창적 미술양식의 자생적 활동도 없이 서
구에 비해 20여년이나 늦게 외형적 으로만 비숫한 조형의 재현 작업이 한국현대도예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도예의 조형성 추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절대적 미(美)의 탐구와 작가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일 것이다. 모더니즘 미술에서와 같이 조형작업의 도예가들은 작가자신의 자아(自我)를 확인(確認)하고 비판(批判)하면서
실존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사물의 근원성과 함께 인간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예술가들도 모더니즘 미학의 탐구는 시대적 당위성을 가지며, 우리를 찾는 정체성(identity)의 모색과 일치된다.
서구에서 탄생되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추상적, 구상적 조형의 재현이 아닌 우리 자신의 독자적 예술성 추구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순수 조형성 탐구는 모더니즘 미술 이후에 전개되는 새로운 사고(思考)와 미의식 확
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난해한 논리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을 모색하는 시대적 작업에 누구나 쉽게 호감을 갖고 빠지게된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조형작업의 도예가들은 이제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서구 표현
양식의 모방이나 무비판적 시대조류 수용은 우리에게는 사치와 같은 비생산적 유희이며,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는 것과 같다. 여기서는 도예의 기능성 추구냐, 또는 예술성 추구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왜 이
와 같은 거대한 흐름이 30년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이제 도예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사람이 전통적 도자나 실용적 도자의 제작, 생산, 판매에 있어서 산업적 기
능공과 경쟁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기능공과 같은 작업이냐, 아니면 창조적 예술가로 작품을 만드느냐하는 선택이다. 결론은 너무 쉽게 내려진다. 그 결과가 한국 현대도예는 80% 이상이 조형
작업에 몰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두 번째와 같은 성격으로 '자유로운 표현'의 개념과 설치작업이다. 이는 흙이나 유약, 소성이라는 도예의 기본 개념에서 완전히 떠난다. 이러한 작업에 도예라거나 공예라는 기존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다만 작가의 사회적 활동을 위해 도예가라는 명칭을 사용되기도 하나 작품에 있어서는 뚜렷한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 도예개념과 거리가 멀어지고, 완전히 기(器)에서 벗어난 세 번째 경향의 작가들은 이제 필요하다
면 흙뿐만 아니라 나무나 돌, 청동, 플라스틱까지도 작품 제작에 혼합, 설치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분명 이들은 조형성을 추구하였던 도조(陶彫)나 오브제, 흙작업 등과 같은 표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그 영역
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들이 작품 속에는 흙의 자유로운 표현과 확장된 공간작업으로 미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식과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도예, 역시 회화나 조각 등 소위 순수미술의 영역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확신과 자유로운 사고(思考)를
창조적으로 펼쳐 보이고자 한다. 흙에 의한 확장된 조형작업으로 현대도예는 도예의 틀을 부셔버리면서 공간이 새롭게 창조되고 관객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새로운 환경미술로, 또는 시각예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방법이기 때문에 기존의 도예가 가졌던 표현의 제약이나 한계를 뛰어넘어 많은 현대 도예가들이 선호하게 된다. 더 나아가 세계가 하나로 묶어지는 인터넷과 인공두뇌라는 컴
퓨터, 비디오, 영상 이미지 활용 등, 과학기술과 예술의 접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 시대에 도예가라는 고정된 의식을 파괴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작업 역시, 우리에게는 흙의 오브제나 조형작업처럼 자생적 미학과 독창적 개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단지 그럴듯한 형식의 작업으로 아이디어처럼 한번 해보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특히
전시를 위한 전시나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사로 그칠 뿐이다.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작업이나 순간적인 아이디어 작업은 이제 그만 두어야한다. 한국 현대도예는 그럴듯한 논리나 양식의 다양화보다 도예만이 갖
는 독특한 예술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IV.
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도예 전시는 3-40대 도예가들이 중심이 되면서 개인전과 소규모 그룹전, 또는 비엔날레전등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 경향은 위에서 구분하였던 제2의 유형과 제3의 유형이다. 본고는
현대 진행중인 작가들의 작품 주제보다 외적인 양식과 전반적 전시 성격을 유형별로 분류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논하고자 하였다. 즉, 한국 현대도예를 이끌어 나갈 젊은 도예가들의 작품 하나하나에 각자의 의미를 찾기보
다 무비판적 모방에 가까운 유형의 모방과 왜 이러한 흐름에 뛰어들어 가야만 하는가하는 비판적 생각을 기술하고자 한다.
젊은 우리의 도예가들이 서구 현대미술에 나타난 추상적 조형이나 개념미술, 그리고 성격없는 설치작업 흉내를 내면서 '자유'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즉, 필연성과 자신의 작업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작업을 자유라고 말할 수
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 그룹전에 나타난 추상표현이나 개념작업을 비롯하여 새로운 표현주의 영향이 강한 작업일수록 모호하며, 복합적 차용으로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작가 스스로도 깨닫고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아쉬운 점은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서구 현대미술사조의 양식들이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하여 젊은 도예가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한국 현대도예를 대변하는 듯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작품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냉철한 자세로 한국 현대도예의 흐름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독창적 미학이 부족하더라도 솔직한 자신의 체험과 미적 경험을 바탕으로 도예의 틀이 형성되어야 한다.
현대미술이 순간적 아이디어 히트 상품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에 한국현대도예 역시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들은 평론가에게 방향제시나 비판을 바라고 있으나 도예의 정의와 기본 개념을 떠나면서 조형적 해석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현대도예가 도(陶)를 떠난 예(藝)만을 추구할 땐, 자연스럽게 서구의 모더니즘 조형과 유사한 이론에 맞추어 설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 현대도예는 도예가 자신의 자생적 힘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조형적 모험보다는 도예의 정체성과 기본적인 정의(定義)에 충실한 구체적이고 개성 있는 작업이 요구된
다. 이제라도 많은 도예가들은 조형이나 개념작업보다 도예 고유의 특성을 살리면서 우리시대의 새로운 가치관이 담긴 창조적 도예를 생각해야 한다. 지나친 조형의 유희는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흙과 유약, 또는 불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자신의 독자적 모습을 탄생시킬 때, 한국 현대도예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