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토우 

출처: 토우정보통신

★ 신라의 토우 ★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한 신라의 토우

6세기 무렵부터 신라는 중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저 흘러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서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많은 사신(使臣)들과 승려들이 다녀오면서 차츰 중국의 문물제도를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부처·보살·사천왕 등 불교의 인체조각은 중국인의 얼굴과 복장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 추세였고,조선시대의 그림도 예외는 아니어서 중국의 산수(山水)와 인물(人物)이 그려졌다.그림에 우리의 모습과 산천·풍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였다.이러한 현상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매우 늦은 것이어서 우리의 미술이 유럽인들에게는 중국의 한 아류로 보여졌던 것이다.말하자면 가장 한국적인 인물표현이 오랫동안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올라가면, 우리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신라의 진흙인형(土偶)에서 우리의 자화상(自畵像)을 감격스럽게 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절해(絶海)의 고도(孤島)와 같다. 고구려의 벽화에 고구려인의 풍속과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을 때, 신라에서는 신라인의 풍속과 모습이 진흙조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5∼6세기 때의 것으로 고구려에서는 무덤의 벽면에 그려졌고 신라에서는 무덤 안에 넣어졌다.신라인들은 죽은 자의 행복을 염원하며 머나먼 저승길의 동반자로 진흙인형을 딸려보낸 것이다.

특히 신라인들은 5cm 내외의 작은 인형을 진흙으로 자유자재로 빚어 만들었는데, 특징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되살려서익살스럽기 짝이 없다.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여 자세히 보노라면 즐거운 나머지 동심(童心)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신라인들은 손가락으로 몇번 주물러 순식간에 추상적(抽象的)인 말탄 모습을 만들어냈다.물론 얼굴의 자세한 표현은 없지만 말안장과 고삐는 빠지지 않는다. 사냥하는 모습도 있다.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를 향해 활시위를 힘껏 당기고 있다. 배를 타고 노를 젓는 모습도 있는데 고기잡이 광경을 상징한 것이다.5∼6세기의 신라인들은 물론 쌀농사도 했겠지만 사냥과 고기잡이가 주된 생계수단이었다. 가장 익살스러운 것은 성교하는 장면이다.그들은 거침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해 생의 기쁨을 노래했다.

남녀가 전신을 밀착하여 두팔을 힘껏 껴안고 누워 있는 모습,여자가 눕고 남자가 올라타고 있는 모습, 여자는 엎드려 있고 남자가 성기를 내밀고 엉덩이로 다가가는 모습 등 자세가 다양하다.즉흥적으로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잘 보이지 않는데도 음부에 성기를 삽입하는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거기에다 눈과 입만을 단숨에 찍었는데 히죽히죽 웃는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도 적지 않다.놀랍게도 오늘날에 사용하는 가얏고와 똑같은 형태, 오직 우리나라 현악기에만 있는, 꼬리에 양이두(羊耳頭)가 부착된 현악기를 오늘날처럼 무릎에 걸쳐 바닥에 뉘지 않고 배에 안고 뜯고 있다. 어떤 것에는 줄을 고정시키는 현침(絃枕)도 표현되었다.모두 남자들이 가얏고를 뜯고 있다. 성기를 크게 과장해 그 위에 가얏고를 올려놓은 익살스러운 것도 있다. 가얏고를 뜯는 인형이 일곱개나 확인돼 그 당시 얼마나 신라인들이 가얏고 소리를 즐겼는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비파를 뜯는 모습도 있고 피리를 부는 자세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서서 연주하고 있다. 여자가 출산을 위해 누운 채두 팔과 두 다리를 세워 몸체를 들어올린 자세도 눈길을 끈다. 가슴에 유방을 강조하고 음부를 크게 벌렸는데,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둥글고 크게 벌리고 있다. 눈과 입을 둥글게 찍었을 뿐이지만 출산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그리 생생할 수 없다. 이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신라의 피에타. 누워있는 주검의 머리에 보자기가 덮여 있고 한 여인이 무릎을꿇고 주검을 감싸안으며 머리를 숙여 슬퍼하고 있다. 유방이 크게 강조되었으니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리라. 지게 위에 항아리를 올리고 등에 멘 사람의 모습이 있는데 지게의 구조가 너무도 자세해 실제 복원이 가능할 정도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장면이 많다. 어떤 것은 사람이 뱀을 타고 앉아 있다. 그 앞에 한 사람이 피리를 불고 그 앞에 두 사람이팔을 벌린 채 춤을 추고 있다. 또 한 남자가 가얏고를 타고 있으며 그 앞에 누군가가 그를 향해 두 손으로 술잔(?)을 받들고 있으며 그 뒤에 한 남자가 두둥실 춤을 추고 있다. 이처럼 무덤 속에 넣는 토기에 여러 자세의 진흙인형 조각을 부착해 어떤 드라마를연출하고 있다. 소꼽장난감같이 작지만 1천5백년 전 신라인의 생활상을 유감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인간의 희로애락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한 인간의 삶의 이모저모를 진흙으로 빚어 만든 신라인의 손길이아직도 따스하다. 익살스럽고 천진무구하고 단순소박한 진흙인형은 이 세계에서 오직 신라에만 있다. 통일신라가 되자 우리의 풍속·모습은 사라지고 중국인을 그대로 나타낸 진흙인형이 등장하니 그 이후 우리에게지워진 어떤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게 된다.

■ 사진설명

① 익살스러운 노인의 얼굴. 5cm 내외의 작은 토우를 자유자재로 빚을 줄 알았던 신라인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② 신라 토우 중 가장 익살스러운 것은 성교장면을 담은 것들이다. 거침없으면서도 적나라하게 갖가지 체위를 보여주지만 천진난만·순진무구의 동심을 잃지 않고 있다.

③ 1천5백년 전 신라인 부부의 모습이 생생하다.

④ 기마인물상.

월간중앙 5월호 강우방 국립박물관장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