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齊家가 바라본 "우리나라 자기" 

천종업

자기 項 (朴齊家 著 <北學議> '내편' 중에서 : 을유문화사 발행)

중국 자기는 정(精)하지 않은 것이 없다. 비록 쓸쓸한 마을 가운데,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라도 금벽(金碧)으로 채색한 항아리, 술잔, 물동이, 주발 등속을 볼 수 있다.

이는 그 사람들이 꼭 사치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토공(土工)의 일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자기는 매우 거칠다.

모래알이 그릇 밑에 붙은 것을 그냥 구워 만들기 때문에 더덕더덕 밥알이 말라 붙은 것 같다. 끌어당기면 반과 탁자 등속을 할퀴게 되고 씻어도 더러운 것이 그냥 끼어 있으며, 바닥에 놓아도 항상 간들간들하여 자주 넘어진다.

주둥이가 비뚤어진 것, 빛깔이 깨끗하지 못한 것 등 일일이 형용할 수 없다. 나라의 본데 없음도 이 정도에 이르면 너무 심하다 하겠다.

순(舜)임금이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만들 적에 모양이 추하거나 흠이 있는 그릇은 하나도 내지 않았다 한다.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의 그릇은 오래된 것일수록 더욱 정교했던 것이다.

요즘 운종가(雲從街)에 자기 수천 개를 진열해 놓았지만 만약 삼대 시절이었다면 하나도 팔릴 물건이 없다. 깨뜨려 버려도 아깝지 않을 것들이다. 깨뜨려도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형편이니 아낄 만한 그릇이 있다 해도 또한 완전하게 취급될 수가 없게 된다.

지금 사옹원에 있는 번기(燔器)를 극히 정묘한 것이라고들 하나 너무 투박하고 무겁다. 이와 같이 만들지 않으면 반드시 상한다면서 도리어 중국 그릇을 흠잡는다.

대개 물건이 오랫동안 완전하거나 금새 부서지는 것은 사람이 만지기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 그릇의 투박하고 엷음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릇의 투박함을 믿고서 방심(放心)하기보다는 조심하는 마음을 가져서 그릇을 아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무릇 민가(民家)의 혼례 잔치나 나라에서 사신(使臣)을 접대할 때나 제향(祭享)하는 날에는 종들의 손에서 부서지는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인데 이것이 어찌 그릇의 탓이겠는가?

당초에 공예가 거칠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버릇이 되어서 백성들도 따라서 거칠어졌고 그릇이 거치니 따라서 마음조차 거칠어졌다. 여기에 젖어 풍습이 아주 그렇게 되어버렸다.

한 개 자기의 품질이 나쁜데서 나라의 온갖 일이 거기에 닮게 됨을 볼때 그것이 하나의 기물(器物)이라 하여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님이 이와 같다.

토공들에게 단단히 경고해서 그릇이 제도에 맞지 않은 것은 시장에 내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 만드는 기술을 익혀 마음과 힘을 다하여 그릇을 만들어도 나라에서 그 값어치를 알아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값을 크게 깎는다면 기술 배운 것을 오히려 후회하고 그 기술을 버리지 않을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일본 풍속은 어떤 공장(工匠)이라도 기예(技藝)가 천하 제일이라는 이름을 얻기만 하면 비록 그 사람의 재주가 자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에게 가서 배우고 그 사람으로부터 잘잘못을 평가받아 자기 기예의 경중(輕重)을 알아보도록 한다고 한다. 이것이 기예를 권장하고 민속(民俗)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길이 아니겠는지?

* 해제(解題) *

·<북학의(北學議)>의 구성 :

<북학의>는 내편, 외편, 진북학의편의 삼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에는 차(車), 선(船), 성(城), 벽(壁), 궁실(宮室), 도로(道路), 교량(橋梁), 목축(牧畜) 등 39항을 기록하였는데 인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선하여야 할 점을 설명하였다.

외편에는 전(田), 분(糞), 농잠총론, 과거론(科擧論), 재부론(財富論), 병론(兵論) 등 16항의 논설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진북학의편은 영평현령으로 있을 때 1799년 11월 30일에 반포된 왕지(王旨)에 응하여 내·외편에서 농사와 관련이 있는 몇 항목을 초출하고 다시 수리(水利),지리(地利), 주앙(注秧), 농기구 등 몇 항을 첨가하여 상소문과 함께 왕에게 바쳤던 것이다.

<북학>이란 것은 맹자가
"진량은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북쪽으로 중국에 유학하여(北學於中國) 북방의 학자들도 그보다 나은 사람이 별로 없다"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박제가(朴齊家) :

<북학의(北學議)>를 지은이인 박제가는 밀양 박씨로서 자(字)는 차수(次修)요, 호(號)는 초정(楚亭)·정유 또는 위항도인이다.

우부승지 박평의 서자로 1750년 11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열한살 때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1779년에 정조의 특별한 배려로 세 사람의 서얼출신 학자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으로 출사(出仕)하였다. 그리고 가끔은 가승지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1792년에는 외직인 부여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799년에는 춘당대 무과 별시에 장원으로 뽑혀 오위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영평현령으로 부임하였으나 1801년에 있었던 신유사옥의 주모자 임시발의 무고때문에 함경도 경성부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2년 반을 지내다가 1805년 3월에 대비의 특명으로 귀양살이에서 풀려 서울로 돌아왔고 그 해 4월 20일에 45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