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예와 도조

우관호

아직도 일반인은 물론 미술인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도조’는 세라믹 스컬프쳐(Ceramic Sculpture)를 번역한 도자조각(陶磁彫刻)의 준말이다. 이 말은 또 현대도예의 조형화 현상을 지칭하는 오브제 도예, 전위 도예, 도자조형, 클레이 워크(Claywork)등과 함께 쓰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하나도 현대도예의 다양한 예술적 방법론을 명확하게 대변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도조라는 좁은 의미의 개념을 설정하기보다는 「현대도예」의 총체적인 범위와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곧 도조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인류가 창조한 가장 오랜 기술적 예술적 산물인 도예의 근원과 변천 과정을 간략하게살펴 가면서 오늘날의 ‘도조’의 실체에 대한 가장 가까운 기준에 접근하고자 한다.
토기와 토우
토기와 토우(土偶)는 더불어 흙을 재료로 한 일상의 실용품인 동시에 조형물이었다. 농경정착생활을 시작한 선사인들은 그들이 수확한 곡식들을 운반하고 저장하기 위해 처음에는 주변에 널려 있는 나무들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속이 빈 고목의 공간을 발견하고 그안에 일상의 물건들을 담아쓰다가 점차 나무보다 가공이 용이하고 가벼우며 채취가 쉬운 흙이라는 재료를 다루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던 것이다.
젖었을 때는 어떤 모양이라도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며 또 건조되면 일정한 견고성을 가지고 불에 구우면 무엇보다 단단해지는 토기는 당시의 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물건의 하나였음에 틀림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토기는 일상적인 물건인 동시에 일종의 의기(儀器)와 같은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빗살무늬토기로 불리우는 것들의 표면에는 간단하지만 상당히 정교한 수법의 음각선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선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종의 주술적 표현-얼핏보기에는 단순한 형식에 의해 그려진 것 같으나 실제로 토기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선들을 그어 나가면 그것들이 간단한 이루어지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이 논리적인 교리의 종교가 없던 원시사회에서의 신앙은 다산과 풍요라는 지극히 본능적인 것에서 출발하였다.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을 두려워하고 다른 부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힘을 길러야만 했던 그 시대에는 토기의 표면에 그들의 염원을 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토기의 표면에 그려진 선문(線文)은 당연히 기원적이며 또 의식적인 추상적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는 토기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토우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선문과 같이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도 있다.
루마니아의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흙으로 구워 만든 ‘비너스’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빌렌도로프의 비너스’와 흡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큰 젖가슴과 임신한 듯한 배 등이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대모지신사상(大母地神思想-Mother Goddess)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토기와 토우는 인간들의 지식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전자는 도자기로 후자는 조각으로 각각 발전하였다. 도자기의 경우에는 정선된 흙과 물레의 발명, 그리고 가마의 개선 등으로 생활용기는 물론 파인 세라믹스(Fine Ceramics)라는 첨단소재의 개발로까지 비약되었으나 조각에 있어서는 오히려 보조재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도자재보다 견고한 돌과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흙은 주물을 위한 원형을 제작하는 데 그치거나 에스키스를 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의 조형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과 열저은 도자기를 언제나 공예라는 소예술(Minor Art)의 범주에 머무르게 하지는 않았다.

현대도예와 조형
토기와 토우로 시작된 도예의 역사는 최소한 10,000여 년의 연륜을 가지고 있으며 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무기재료공학의 발달은 도예가가 원하는 양질의 재료들을 얼마든지 제공하였고 그로 인해 도예의 가장 큰 난제인 번조(燔造-소성)의 문제도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의 도예가들은 전통적인 작업장과 제작방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를 최대한으로 구가하는 자율적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전이 있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으며 심각한 정신적 고비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또한 이것은 근현대 도예사에서 지칭하는 두 가지 혁명적 단계를 직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는 현대미술의 방법론과 가치질서를 직간접으로 수용한 것이고 둘째는 전통에 대한 적극적인 반발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었다.

전자는 1950년대 초반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활약하던 일군의 도예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세계화단을 휩쓸던 추상표현주의(Abstract __EXPRESSION__ism)와 동양도예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받은 ‘오티스 그룹(Otis Art Institute)’의 활약이다. 추상표현주의도자로 명명된 이들의 활약은 미국 현대도예의 대부라 할 수 있는 피터 볼커스(Peter Voulkos)라는 거장을 탄생시켰고 미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까지 조형적인 도예의 바람을 불러일으켰으며 급기야 모든 공모전을 석권하기까지 하였다. 오티스 그룹의 활약 이후 미국의 현대도예는 급속한 조형논리의 확산과 함께 다양한 방법론을 제창하여 도예를 대예술(Major Art)이라는 순수미술과 동등한 위상에서 인정받게 하였다.
후자는 미국과 거의 같은 연대의 일본에서 시작된 도예운동이다. 50년대의 일본도예계는 전통적인 민예(民藝) 양식에 모든 작가들이 안주하던 시기였다. 일부 도예가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작가들은 장작을 연료로 하는 가마에서 생기는 불과 나무재의 변화인 요변(窯變)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이른바 질곡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교토(京都)에서 활약하던 젊은 도예가들이 과감히 반발하고 나섬으로써 새로운 도예운동이 시작되었다. 야기 가즈오(八木一夫), 야마다 히카루(山田 光), 스즈키 오사무(銘木 治) 등 세 사람에 의해 결성된 ‘쇼데샤(走泥社)그룹’은 기존 도예계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바탕으로 일본 도예계에 새로운 변혁을 시도하였다.
이와 같은 미국과 일본의 자발적 현상외에도 특기할 것은 피카소와 미로 등을 비롯한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그들의 표현재료로 부분적이나마 흙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피카소의 도예작품은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호안 미로와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등은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흙으로 나타낸 좋은 예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로댕이나 마티스, 달리, 헨리 무어, 에두아르도 칠리다, 라우센버그, 리히텐슈타인 등도 각각 자신들의 창작력을 도예를 통해 투사하기도 하였다.

도예조형에 대한 인식의 전환
현대도예의 조형화, 그 가운데서도 극단적인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도예계에서 신중하게 다루어지는 문제이다. 특히 도자기의 고유성인 실용성의 문제는 도예의 위상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어서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조각이나 회화에 비해 쟁점의 범위가 좁고 전문적인 이론가들도 적기 때문에 괄목할 논리 역시 극소수이다. 그러나 현대도예를 근본에서부터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도자기의 실용에 대한 옹호론은 일본의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그는 철저하게 도자기는 본연의 의무를 고수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만약 도자기가 실용을 버린다면 또 그렇게 하고자 원한다면 공예를 할 것이 아니라 미술을 해야 하고 도예가라는 호칭 대신 미술가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반면에 야나기보다는 조금 시대적으로 현대적인 도예평론가 이누이 요시아키(乾由明)는 도자기의 실용성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다. “찻잔이나 과자접시를 보았을 때 통념적으로 그것들은 일상의 용기이다. 그러나 찻잔과 과자그릇의 기능을 생각하지 않고 형태가 색채 그리고 질감에 관심을 기울이면 이미 그것들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조형물이 되는 것이다.”여기에 대해서는 문예이론가 허버트 리드의 견해와 일치되는 점이 있다. 리드는 그의 책「예술인란 무엇인가」의 ‘내용 없는 예술’편에서 도자기는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정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누이와 리드는 도자기를 관습적 인식에서 벗어나 가장 본질적인 각도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논리들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 있는 그릇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릇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이 반드시 진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이누이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나 추상적이고 또 실용성이 없는 현대 도예작품들이 반드시 비실용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오히려 시각적으로 보는 이에게 만족을 주는 효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조형적 도예작품이 제시하는 정신적 실용성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야나기나 이누이 그리고 리드의 견해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정연한 진리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의 도예 즉, 현대도예가 안고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공예와 미술 양쪽에서 스스로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된 실정임을 감안하면 도예의 조형화는 실질적인 추세이며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현대도예의 양상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현대도예의 역사는 불과 40여 년에 지나지 않으며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약1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대도예의 세계적 추세와 양상을 객관적으로 분류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은유적 실용성의 용기(Vessel as Methaphor)
가장 전형적인 현대도예의 양상이다. 물레에서 나오는 형태들에 작가 고유의 드로잉을 하거나 또는 용기 자체를 찌그러뜨려 실용성은 있지만 조형성에 비중을 두는 경향을 말한다. 특히 석고를 이용하여 복잡하고 현란한 형태미를 강조하는 것들은 오히려 조형적 측면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주전자에 많은 조형실험을 하기도 하는데 차를 마시기 위한 주전자의 본성은 간직한 채 몸체와 손잡이 그리고 물대 등을 임의로 변조하여 새로운 형태미를 모색하기도 한다. 이러한 데포르메는 용기의 전통성을 전면 부정하거나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기를 바라는 시도인 동시에 도예가들의 예술적 자유의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접시의 표면을 회화의 캔버스로 인정하고 그 위에 다양한 평면성을 추구하는 경향도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 항아리나 병과는 달리 표면이 넓고 평평한 접시의 내면은 여러 가지 기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또 자연스러운 흙의 성질을 이용한 물질적 회화성을 추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도예가들이 관심을 갖는 소재의 하나이다. 따라서 용기의 은유적 실용성은 가장 실용적이면서 가장 조형적인 것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양면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장식성의 강조(Decorative Object)
약간 소극적인 의미의 도조적 양상을 가리킨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우선 크기에서 보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 얼핏 보면 용기의 변형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을 담는 기능은 없다. 흙이라는 재료를 이용한 소형의 오브제라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기능적 실용성이 없이 구조와 형식은 매우 조각적이지만 형태와 표면처리는 오히려 정교하고 장식적인 성향이 돋보인다. 작지만 정연한 문양의 반복과 회화적인 듯한 그림들은 다분히 서정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추상적이다. 유약을 이용하거나 고화도 안료 또는 전사지 기법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며 간혹 완전 번조(燔造) 후에 도예전용 아크릴 등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도 한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작품의 크기에 관계없이 보는 이의 추상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3. 조각적 조형성(Sculptural Formative)
소위 도조하고 일컬어지는 부류의 총칭이다. 조각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추상적인 형식을 띠고 있으며 현대도예의 초기적 양상인 추상표현주의 도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성향의 특징은 우선 크기에 있으서 도예작품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대규모이다. 작게는 40∼50㎝부터 크게는 200㎝를 넘어가는 것들도 허다하다. 흙의 물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거기에 작업자의 다이내믹한 몸동작이 함께 연출되기도 한다.
특히 50년대와 60년대의 작품들은 흙의 느낌들을 강조하기 위해 철과 나무 등을 동시에 사용하고 작품의 표면에는 손과 몸의 흔적 그리고 도구의 자리들이 거칠게 남아 있기도 하였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표면처리에 화려한 색상들이 가미되었다.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강한 붓터치와 안료들의 마티에르가 그대로 남겨지기도 하였다.

반면에 흙의 성질을 무시하고 재료로서만 사용된 즉,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하게 하는 기하학적인 모뉴먼트들도 함께 제작되었다.

이외에도 인체를 소재로 한 조형작품들도 상당수 나타났으나 인체미에 대한 탐구보다는 메시지가 강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실정이 많으므로 별도로 다루기로 하겠다.

4. 극사실성과 환상성(Hyperrealism & Illusionism)
도예에서 극사실성은 미술에서의 하이퍼리얼리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경향과 전사지기법을 이용하여 표면을 장식하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미국의 한 작가는 흙을 가죽의 질감처럼 표현하여 가방이나 점퍼 등을 제작한다.
그 외에도 일상의 모든 물건들을 마치 가죽으로 만든 것처럼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사물 그대로를 제시하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작품의 내용보다 재료의 이질감에 충격을 받게 된다.
전사지 기법은 주로 산업도자기에서 쓰는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우선 만들고자 하는 원형을 제작하고 유약까지 발라 구운 다음 다시 그 위에 저온에서 융착되는 전사지를 붙이고 한 번 더 굽게 되면 전사지의 내용이 작품의 표면에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내용을 전시하느냐 하는 사실이다.

신문지나 성경 또는 만화와 같은 활자매체들을 전사하게 되면 그 내용들은 보다 확연한 사실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서로 관계가 없는 물체에다 전혀 다른 이미지의 전사를 교차시키면 매우 역설적인 조형의 변화가 일어나며 새로운 시각효과를 연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건축 및 환경성(Architectural & Environment)
흙을 재료로 하는 관점에서 보면 건축적인 양상은 무엇보다 타일이 먼저이다. 그러나 현대도예에서의 건축성은 타일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보다 조형성이 강한 쪽으로 발전된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게 되는 타일은 모두 정방형이거나 패턴화된 것들이다. 색채 또한 획일적이거나 때문에 단순한 타일의 역할 외에는 특별한 감동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도벽(陶壁-Ceramic Wall)이 되면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도예가들에 의해 제작된 도벽은 기존은 타일이 안고 있는 크기와 평면성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대규모의 자유로운 표현도 가능하다. 이것은 또 건축물의 안과 밖에 관계없이 적용될 수 있다. 고온에서 구워진 도벽들은 기존의 타일보다 내구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건축적인 문제에서 환경예술로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평면적인 타일의 크기를 확대시켜 공간적인 구성을 하게 되면 훌륭한 외부 조형물이 되고, 또 노천에서 제작하여 직접 번조하는 작품들은 환경예술으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6. 물질성과 개념성(Exploration of the Material &Concept)
이 성향의 작품들은 다소 복잡한 사고력을 요구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조각적이라기보다는 회화적이고 회화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예적이다. 그리고 도예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비논리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도예의 필수적 요소인 흙과 불 양자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을 보는 시점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한 작가는 현대도예의 본격적 출발을 1945년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비유하였다. 원폭이 폭발하는 순간 그 열이 대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물체들도 함께 구워 버렸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현대도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흙과 불은 필연의 관계에 놓여 있지만 다른 사물들이 개입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흙과 불, 양자중 어느 한쪽만 수용하더라도 도예의 개념은 성립한다는 견해인 것이다.
이른바 Unclay와 Unfire라는 새로운 개념들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Unclay는 흙이 아닌 다른 물질들 즉, 유리나 금속 그리고 일상의 사물들을 불로 굽는 것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도예의 번조온도의 범위가 적용되지 않으며 저온에서도 불이 지나가기만 하면 도예의 한 방법론이 성립된다는 주장이다. 만약에 유리를 가마를 넣고 굽는다면 유리가 불에서 변화되는 순간의 온도가 적정온도가 되는 것이며 알루미늄제 도구들을 굽는다면 알루미늄이 작가의 의도에 부합할 때까지 나타나는 과정이 곧 그 물질에 대한 허용온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주장은 무엇을 구워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어떻게 굽느냐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는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Unfire는 Unclay와 달리 불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불을 사용하더라도 극히 낮은 온도를 부분적으로 제한하여 작품에 도입하는 것을 말한다. 불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흙의 물리적 속성이 상황에 따라 변해 가는 일조의 시간성을 표현하거나, 흙 위로 지나가는 모든 사물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여 주고, 심지어는 완전히 건조한 흙덩어리에 습기를 가하여 형체와 질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들이 있다. 또는 흙덩어리를 냉동실에서 완전히 얼린 후 순간적인 고온으로 녹였을 때 보이는 파괴된 형상들을 작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철망이나 유리나 표면에 흙을 발라 마르는 과정에서 갈라지는 틈으로 빛의 미묘한 변화와 크랙의 단면들을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도예라기보다는 차라리 실험예술에 가까운 것이지만 오늘날의 도예가들은 당연한 방법론의 하나로 수용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이해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7. 비평적 형상(Critical Figuration)
현실참여적 경향으로 대변되는 비평적 형상성은 현대도예에서 각광받는 부류 중의 하나이다. 다른 어떤 양상보다도 조각적인 기술과 인체의 해석력이 요구되는 비평적 형상은 도예가들의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펑크 세라믹(Funk Ceramic)이라고도 지칭되는 현대도예의 형상성은 다시 우의적인 것과 풍자적인 것, 비판적인 것 등으로 세분된다. 우의적인 양식들은 인간의 삶에 대한 작가의 직관력과 상상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매우 상징적인 형식으로 나타난다. 풍자적인 것들은 기계문명과 현대사회의 아이러니를 냉소적으로 보는 작가의 눈이고 마음을 의미한다. 이 두 양식들은 모두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직접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간접적이고 상징적인 성경이 강한다.
그러나 비판적인 양식들은 보다 진보적이고 직접적이다. 주제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모두 적나라하게 표현되며 또 그것들은 현실적으로 당면한 위기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전쟁과 핵문제 그리고 정치적 이슈 및 인종차별 등에 대해 작가들은 보다 강력한 주장을 제기하며 각성을 요구하여 왔다. 그래서 이러한 성향의 작가들은 비단 흙뿐만 아니라 드로잉과 판화 등 표현가능한 모든 매체들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시키는 노력도 서슴치 않고 있다.

이상과 같이 간략하게 살펴본 현대도예의 의의와 분류는 사실 기정화된 논리는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도예적인 문제만은 더욱 아닌 것이다. 현대미술 장르의 다양한 분화현상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당연한 사실의 하나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재론의 여지는 있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현대도예가들의 작업영역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부분들에까지 확산되어 있으므로 어느 것이 다가올 세기의 도예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공예라는 오랜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어법으로 발언되고 있는 사실이 주목될 따름이다. 따라서 글의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도조’라는 용어는 현대도예의 다양한 방법론의 일부를 지칭할 수는 있으나 전체를 가늠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