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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지난 20년간의 한국 공예 다시보기
2019-03-05 (화) 15:59 조회 : 9303

글 박중원 서울여자대학교 초빙교수

IMF 시대의 도래

1997년 긴박했던 당시를 조명한 최근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는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호황기를 믿어 의심치 않던 떄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교역규모 11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선직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한창 고무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후 1년도 채 안 되어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구제금융 체제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중략)

환율 상승, 금융 혼란, 기업 부도를 몰고 온 IMF 한파의 충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넘어 공예 분야에까지 미쳤다. 먹고사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시되던 당시에 공예라는 문화산업이 뒷전으로 밀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예 생산자나 유통업계 그리고 공예 소비자 모두 취약해진 경제 사정 떄문에 고통받았으며 공예가 실종 위기에 직면한 듯 보였다. 그러나 절망적으로 느껴지던 IMF시대에 한국 공예는 고통과 동시에 교훈을 얻었다. 위기 속에서 자신을 동이켜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IMF외환위기 초기의 태풍이 휩쓸고간 잔해를 치우면서 공예계는 그동안의 비합리적 관행과 의식을 반성과 자숙을 통해 즉각적이고도 실질적인 변화를 시도하게 했다. 동시에 문화적 논리로 한국 공예의 질을 한층 높이는 노력도 하게 됐다.


공예계에 불어닥친 IMF 한파, 위기이자 기회

 IMF사태 이후부터 한국사회는 지속돼오던 고도성장을 멈추고 저성장이 확연해졌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 공예의 위기이지 기회였다. 사회 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위기'이지만,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주요 가치로 삼는 공예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기회'였다. 그런 점에서 IMF경제위기는 공예계에 양적 회복과 질적 성장으 이루게 하는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IMF 사태에 의해 촉발된 원화의 가치 하락은 재료비, 연료비 폭등을 유발해 공예 작품 및 상품 제작을 위축시켰다. 국산 대체가 어려운 수입재료의 경우 199712월 한 달 사이에 세 번의 가격 변동을 보이며 공예인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겼다. 수요가 격감하고 매출이 감소하면서 많은 공방이 인원 감축 및 생산 감산, ·페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해 공예인들은 재료 재활용, 작업 공간의 공동 사용 등 제작 및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또한 대학에서도 IMF경제위기의 한파가 들이닥친 탓에 대부분의 공예 관련학과 예산이 동결되거나 약 30이상 삭감되었다. 제작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대형 작품보다 재료비 상승 등의 이유로 '작게'만드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는 실기 교육의 방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갤러리의 불황은 어느 분야보다 심각했다. 국내 유명 갤러리조차 기획전을 포기하고 대관에 나설 정도로 경제적 시련이 극심했고, 순수 미술 전시회는 재정 위기로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답보 상태를 보이는 미술 시장과는 달이 공예 전시는 오히려 IMF체제 이전보다 활발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공예 전문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통인화랑''크래프트 스페이스 목금토' 등의 경우 예년과 다름없는 실적을 보여주었다. 사회 불안이 가중된 1997년에 전년보다 다소 감소했을 뿐 1998년에는 공예 전시회가 오히려 크게 늘어 문화적 관성이 생겼음을 반영했다. 판매에서도 회화와 조각 등 고가의 순수 미술품에 비해 공예품은 실용성과 장싱석을 갖추면서 가격 또한 상대적으로 저렴해 꾸준한 수요를 보였다

IMF구제금융 직후, 미술과 공예 시장의 작품 가격이 폭락하고, 미술 행사와 기획전 수도 대폭 줄었다. 환율이 급등한 상황에서 최소한 5~6만 달러의 경비가 소요되는 해외 행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급증했다. 그러나 IMF체제에서 거의 쇼크 상태에 빠져 있던 국내 공예계는 불황의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으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내수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공예는 환율 상승에 따른 해외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고, 이는 한국 공예의 해외 수충 증대로 이어졌다. 또한 환차손에 따른 상대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있어 거래 전망을 밝게 바라본 갤러리와 작가들은 고비용의 해외 행사임에도 참가를 추진했다.

시대의 경기 불황으로 정부 및 기업들도 앞다투어 문화 사업비를 줄였다. 이는 후원 및 협찬에 의존해오던 공예 관련 행사, 공모전 규모가 축소되거나 중단, 폐지로 이어지며 공예계를 크게 위축시켰다. 19957월 전통 공예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교육을 목적으로 경복궁 경내에 설림되었던 한국전통공예미술관 폐쇄가 고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을 삭감하던 1997년 당시, TV모니터와 LCD용 유리를 생산하는 삼성토닝은 메세나Mecenat 운동의 일환으로 IMF체제하의 1997년 유리공예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특히 격년제로 주최하는 '한국유리조형공모전'은 유리공예의 저변확대와 신예 작가 발굴이라는 차원을 넘어 국내 최대의 유리조형전으로 발전해 향상도니 모습을 보였다.

IMF경제위기의 영향으로 공예 인프라의 붕괴 위기까지 느낀 한국 공예는 이전까지의 태도를 반성하고 자숙하며 내실의 전환기를 맞이하게된 것이다. 공예계는 IMF 한파에 의해 결빙된 경제·문화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적극적인 자구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한국 공예계의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켰다.

 

변화하는 공예

IMF사태는 한국 공예계에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먼저 IMF 이전까지 성황을 이루던 미술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1990년대 중방까지 한국 공예 분야를 이끌어오던 순수 미술 성향의 분위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0년대 말부터 생활환경과 일상 사물에 관심을 높이며 사회·문화적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가던 '디자인'개념이 확산하면서 공예 분야의 방향성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이 생활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공예는 순수 미술을 넘어 일상 사물의 생산이라는 공예의 원초적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또한 1990년대 국가 정책으로 문화산업이 진흥되었고, 그 결과인 문화상품이 주목을 받았다. 문화산업 중 특히 공예문화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IMF체제와 같은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산업이다. 문화를 산업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발상은 커다란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공예품을 문화상품으로 인식한다는 발상 또한 문제의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공예를 산업경제 측면에서 보자면 공예산업은 고부가가치산업이다. IMF체제를 경험한 공예계 내부에서는 정부의 잘려와 지원책을 통해 문화산업으로서 공예를 활성화하고 공예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실용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일명 생활공예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체계적인 준비 없이 진행된 공예의 산업화는 사업성과 수익성을 제고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예의 질과 가격을 하락시켰으며, 오히려 성장하기는커녕 생산자들을 출혈 경쟁의 위기로 내몰았다. 이 상황에서 IMF 체제 이후 일본 시장을 잃은 전통 도예가들까지 생활공예 분야로 진출하면서 공예가들 간의 경쟁이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공예가들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을 시도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공예의 특성인 수작업의 의미가 퇴색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는 IMF외환위기 이후 공예의 정체성 논람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다시 공예가 주목받고 있다. 인공지능 등을 필두로 하이테크 사회로 진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감성 매개체로서 공예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이테크 사회와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디자인의 유행과 그에 따른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는 대학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국내의 많은 공예과의 폐과와 공예라는 명칭에서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첨부된 학과명으로 개명되기도 했다.

20018, 민족 최대의 금융 위기였던 IMF체제는 극복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경제 위기가 남긴 아픔과 상처는 다른 양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IMF경제위기는 한국 문화 구조를 자본과 시장의 경제 논리로 재편시키면서 공예라는 분야의 근본적인 변화를 종용했고, 이에 한국 공예는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공예의 창출을 시도해왔다. 디지털 생태계가 일반화될 것이라 예상되는 오늘날에도 공예는 하이테크 사회에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문화적 대안으로 그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공예+디자인 NO.035  p.032 ~ 033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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